[한마당] 송년단상

● 칼럼 2015. 12. 25. 11:05 Posted by SisaHan

어김없이 또 한해가 간다. 초속 30Km로 달려가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원점’을 지나는 것이다. 사실은 우주공간에 원점을 그어 놓았을 리도 없고 지구는 그저 창조의 섭리에 따라 궤도를 달려갈 뿐이니, 올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사람들에게 나이 한 살 더 먹고, 년도를 표시하는 네 자리 숫자와 달력이 바뀌는 것 말고 다른 변화란 얼마나 되나. 일부 제도와 정책들이 바뀌기도 하겠지만, 해는 변함없이 동쪽에서 떠오를 테고, 밥먹고 일하고 잠자고… 우리의 일상과 삶의 수레바퀴는 여전히 삐걱대며 굴러갈 것이다.


우주의 무한한 시공에서 올해와 새해의 구획이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은하계로 확대해 본다면 끝없는 한 해의 연속일 수도 있고, 우리 기준에 매일이 한 해씩인 천체도 있을 테니까. 태양계는 은하계를 2억2천만년 주기로 돌고, 우리 은하계는 다시 우주의 중심을 2억3천만년의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고 한다. 태양계 내에서는 수성이 공전주기 즉 1년이 88일에 불과하며, 화성은 687일, 목성은 약12년이고, 토성은 30년에 가깝다. 우리가 1년으로 삼은 365일이나 지난해·새해라는 것은 사실 광대한 우주의 눈으로 볼 때는 지구인들만의 ‘천동설’적인, 극히 인간 중심적인 아전인수의 인식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어차피 지구촌에 사는 우리들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설레임을 갖는다. 또 다짐도 한다. 그 것은 짐승이나 식물들과 달리 인간이 사유(思惟)의 영적 존재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성장과 성숙의 인식이 생겨났고, 또한 생명의 유한성에 생각이 미쳐 죽음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는 불안과 초초감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내일은 좀 더 성숙하자, 인생의 종말이 오기 전에… 라는 동력(動力)을 스스로 만들고, 또 거기에 떠밀려서도 가는 것이다. 그렇게 구획을 정해 송구영신(送舊迎新)을 하며 지난 세월을 성찰하고 새로운 날들을 기대와 소망가운데 맞이하는 인간의 지혜이기도 하다.

어김없이 영겁으로 사라져 가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기쁨과 흡족함 보다는 아쉬움과 후회스런 일들이 많음을 본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더 힘껏 노력했어야 하는데, 엉뚱한 데 정신을 팔고 기력을 쏟아서…. 이런 저런 이유와 불만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서 막연하지만 새해에 더 기대를 품는 것이다. 올해 보다 달라질 뭐 특출난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련만, 새해에는 달라져야지, 달라지겠지 하고 결심과 여망 사이에서 자신을 추스린다.
하지만 가만 따져보면 인간 세상에 어디 만족이 있던가. 물론 완벽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늘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고, 이뤄질 수 없는 100%와 완벽을 노렸던 것은 아닐까. 혹시 기대치를 낮추고, 50%만 이뤄도 잘 하는 것이라는 목표를 세웠더리면 지금쯤 어떤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 보았을지 되돌아보면 어떨까.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빈둥대며 얼렁뚱땅 사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일부 철없는 유한족들도 그들 나름대로는 열심이었다. 그들의 가치와 그릇크기 만큼이었겠지만. 그렇게 우리들 대부분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남의 나라에 와서 마음고생하며 사는 이민가족들임에랴, 몸 고생 또한 충분히들 하고 잘도 지탱해왔다.


그러니 우리 이제 송구영신의 원점을 돌며,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해보면 어떨까. 힘든 여건 속에서 이만큼 성장했으니 참 대견하다. 고생했다. 고난을 잘도 견디며 이겨냈구나, 고맙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오게 하고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그러면 지난해의 고난이 축복의 담금질이 되어 새해는 더 성장하고 성숙하는 전진의 날들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지난 세월의 시름들을 훌훌 털고 흘려보내 홀가분해졌으면 좋겠다. 지구촌을 뒤흔든 암울한 소식들과 고향 한국 땅에서 들려온 속상하는 세태들, ‘혼용무도’(昏庸無道)라며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탄식들이 그치도록, 그리고 여기서까지 우물안 개구리처럼 서로 질시하며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다툼들 등은 모두 다 가는 세월의 강물에 묻혀 제발 함께 떠나가기를 기도하자.
지혜의 왕 솔로몬이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았던가. “헛되고 헛되도다…” 더불어 그는 “다 지나가리라” 는 삶의 철학을 주었다. 그렇게 너그러이 보듬고 마음을 추스려서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소망과 평안이 밀려드는 새 날들을 맞이하면 정말 좋겠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