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주목하는 미국 대선레이스에서 초반 돌풍의 주역 가운데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가 단연 돋보인다. 지지율 0%의 무명인사에서 단숨에 50% 이상까지 뛰어 올라 거물 힐러리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놀라운 파워맨이 됐다.
샌더스 후보가 얼마나 부러웠으면 한국의 야권에서도 다투어 ‘샌더스 마케팅’에 나설까. 더불어민주당은 새로 영입된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경제민주화 소신을 들어 샌더스 같다고 비유했다. 이에 질세라, 당을 뛰쳐나가 국민의당을 만든 안철수 대표도 샌더스처럼 주먹 쥔 팔을 뻗으며 자신이 바로 ‘한국의 샌더스’라고 연설했다. 이에 한 정치평론 교수는 “언제 샌더스가 힐러리 물러나라고 외치다 민주당을 탈당했는가. 우클릭해 새누리당과 발을 맞추면서 진보적인 샌더스와 같을 수 있는가. 지지율 0%에서 50%로 올라가는 샌더스와 50%에서 0%로 내려가는 상황이 같은가”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개그’라고 비아냥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수준 낮은 한국정치의 희극들이다.
유력 주자인 힐러리 여사를 위협하며 일약 세계적 인물이 된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고 마침내 백악관의 주인으로까지 승승장구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세계최강국 미국의 정치권을 뒤흔든 것 만으로도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거부감을 가져 온 미국사회에서 당당한 사회주의자로 인기를 얻고있는 것 또한 기적같은 일이다.
그는 ‘가진 자들만의 세상’으로 질주하는 기성 정치와 사회·경제적 폐해들을 낱낱이 들춰내 혁신적인 비전으로 고단하고 지친 미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동시에 그는 국제사회에도 ‘미국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맹목적인 추종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샌더스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인권운동가였던 그는 1986년 버몬트 주의 벌링턴시장 선거에 도전해 겨우 10표 차로 힘겹게 당선되며 정치인이 됐다. 그리고 4선 시장을 역임하면서 폐촌이 되어가던 벌렁턴시를 협동조합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유명한 자연친화적 모델도시로 만들어 전국각지 공무원들의 견학이 끊이지않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버몬트 주의원으로 2006년 상원에 진출, 본격적인 ‘사회 민주주의자’로서의 활약을 벌인다.
그를 널리 알린 것은 2012년 12월10일 의회단상에 올라 무려 8시간37분에 걸친 필리버스터 연설이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감세 연장’법안을 공화당과 합의하자 이에 대한 반대논리를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반박하는 연설을 장장 8시간이 넘게 계속한 것이다.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세금혜택을 주어 이미 심각한 지경인 국가부채를 악화시키는 일이 제게는 비양심적인, 너무도 비양심적인 일”이라고 시작한 그의 연설은 모두 자리를 떠 텅빈 의사당에서 홀로 외친 절규였다. 가난한 서민들의 편지 열 두 사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쓸쓸히 마친 그의 연설은 그러나 2년 뒤 부자감세법 폐지의 결실을 맺었고, 수많은 지지자를 불러 모으며 오늘의 대선후보 반열에 올려놓은 일대 전기가 됐다.
미국이 역시 선진국인 것은,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선거 시스템과 검증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진짜 보석같은 인물을 배출한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포장술에 능한 보좌진과 어용 친위언론에 가리워 위선적인 불량지도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현실과는 다르다. 오죽하면 써준 원고가 없으면 버벅거리고, 기자회견 한번 제대로 못하는 지도자를 뽑을까. 미국 정치에 신선하고 파격적인 바람을 몰고 온 샌더스가 부상한 것도 훌륭한 시스템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샌더스는 사실 그만한 내공을 쌓아 온 인물이었다.
우선 샌더스는 시골의 시장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녀 온 서민과 빈민층 위주의 정책소신, 즉 1%가 아닌 99%를 위해 일한다는 초심과 열정을 잃지않은 정치인이다. 그 것은 부유한 자와 가진 자들의 반대편에서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긍휼과 측은지심을 지닌 따뜻한 사람임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가식이 없이 솔직하다. 그 자신 서민으로 살며 어울려 살아왔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애용하는 그의 사진들은 그가 외양만을 내세우는 ‘바리새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살아온 삶과 이력을 통해 소신과 철학을 입증해 주었고,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사회의 온갖 추하고 그늘진 현상에 메스를 가하며 변혁을 선도할 지도자로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샌더스의 도전은 한낱 도전으로 멈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국면의 미국 정치 한복판에 몰아친 75세 노정객 샌더스 돌풍은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지도자를 어떻게, 어떤 인물을 고르고 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타산지석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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