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변화의 종교다. 성경에서 귀신들린 자나, 벙어린 귀신 들린 자, 문둥병자, 각색 병자 등 주님을 만나 치유됐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변화는 하나 같이 예수를 만났을 때 일어났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진실로 만나면 변화될 수밖에 없다. 부활의 예수님을 다시 만난 제자들을 보라. 그들은 하나 같이 예수의 십자가의 수난 앞에서는 모두가 배신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나서야 변화됐던 것이다. 또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잡아들이고 죽이려가다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을 보라. 그가 예수를 만나자, 예전에 좋던 것이 싫어지고, 예전에 좇던 가치관을 떠나며, 악을 떠나 선을 좇게 되고, 세상일이 아닌 하나님 일에 목숨을 걸게 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전2:2)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의 방향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곧 신앙생활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신앙의 맛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기도의 즐거움, 예배의 행복, 말씀을 통해 진리의 기쁨을 맛보며,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진실한 맛을 맛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들은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즐거움은 다른 것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사람을 좇고, 환경을 바라보며, 진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을 즐겁게 하는 환경을 따라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본다. 결국 성도의 본연의 자세를 떠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6)는 말씀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소욕을 좇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감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아야 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사생아가 되고 마는 것을 본다.


 변화는 신앙의 기본이다. 신앙의 축복은 끊임없이 변화에 있다. 변화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것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하나님께 매일 매일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 은혜는 성령이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다시 성령을 회복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돼야 한다.
사람이 만든 그 어떤 방법과 프로그램으로는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성령으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셨던 오직 성령의 권능을 입어 변화 받은 자들로 지금까지 세상은 변화되었다. 이제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으로 새롭게 바뀌고 변화돼야 할 때가 되었다. 주님 앞에 서는 날을 잊지 말고, 먼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변화되길 축원한다.

< 김석재 목사 - 순복음영성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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