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월도 마지막 주간에 이르렀다. 사람도 자연도 바빠지는 계절이다. 어떤 사람은 4월은 자유의 달이라고도 한다. 독재로 부터 자유를 부르짖은 학생운동을 생각하면 4월의 마지막 주간에 자유의 뜻을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것 같다. 왜냐면 자유는 생명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의 치열한 열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부활주일이 이맘 때 쯤 있어서 새로운 생명의 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새로운 생명이라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우고 모두를 내어 주는 것을 새로운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한때 히피의 자유주의가 팽배할 때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이들의 뜻이 왜곡되어온 면이 많이 있다.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을 자유와 평화라고 생각했고 이의 종착역은 행복의 나라라고 부르짖었다. 그 시대에는 일요일 아침 TV에 심취되어 있는 어린 아이에게 TV를 볼 것인가 교회 주일학교에 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것을 바른 교육이라고 많은 부모가 착각했었고 여기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의 결과로 교회는 젊은이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는 도덕이 타락하고 범죄가 무성해지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현세의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는 사회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연의 끈이 떨어져서 방향 모르게 날아갈 때의 모습을 자유이고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자유와 평화는 조금 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관계성으로부터 자유를 바라볼 수가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길이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영원한 생명의 길 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탕자의 비유는 우리에게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욕망을 찾아 환락의 세상으로 나아갔다가 회개하고 다시 아버지께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우리는 바라본다. 한 사람이 욕망을 찾아가는 것과 회개하고 돌아오는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본다. 이것뿐 만이 아니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끔찍한 범죄를 범했으나 선지자의 직언에 회개하고 바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다윗왕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랑, 평화,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 생각해야 하고 이 셋은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자유를 생각할 때 누구와 그리고 무엇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 진리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자신을 비우고 스스로를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것이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찾는 길이다. 이것이 사랑 가운데에서 평화와 자유를 경험하는 삶이다.
< 이영정 목사 - 덴토니아파크연합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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