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조 비리의 기막힌 반전

● 칼럼 2016. 7. 13. 08:18 Posted by SisaHan

그가 소록도를 찾은 것은 2004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 섬에 강제수용돼 인권을 유린당한 한센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일본 정부는 2001년 5월 구마모토 지방법원에서 ‘나병예방법’(1996년 폐지)에 따른 강제격리 규정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한센병 보상법을 제정해 보상금을 지급했다. 일본 구마모토의 변호사단체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이 사실을 알려왔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한센인들도 똑같은 정책으로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변협이 일본 후생성을 상대로 보상금 청구 소송을 추진한다면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변협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주저없이 소송을 맡겠다고 나섰다. 수임료가 없는 공익소송인데다 승소 가능성도 희박해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고참 변호사와 함께 단둘이서 소송에 착수했다. 주중엔 ‘생업’을 처리하고, 주말엔 한센인들을 만나는 ‘이중 생활’이 시작됐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이와 동행할 때도 많았다. 혹시라도 한센병에 감염될까 걱정해주는 지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록도를 찾을 때마다 오히려 힐링이 되는 걸 느꼈다고 한다. “할머니들께서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손으로 박수치면서 ‘우리 변호사님 오셨다’고 좋아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소록도 주민들이 끓여준 된장찌개는 일류 호텔의 뷔페보다 맛이 좋았다.
이들의 소송은 일본 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일본 정부의 2006년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내 한국의 한센인들도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일본의 양심적인 변호사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은 일본 법정에서 벌어질 심문 내용을 일본어로 번역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그와 고참 변호사의 도전이 없었다면 특별법은 결코 불가능했다. 동료 변호사들의 가세로 한센인 소송 지원단을 만든 그들은 2011년부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고, 지금 대법원과 서울고법 등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역사적인 소록도 현장 재판은 이들의 땀과 눈물로 빚어진 것이다.


변호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보다 따가운 때가 또 있었을까. 일부 전관 변호사들의 일탈로 변호사 집단이 탐욕의 화신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숫자는 ‘0’이 한두 개 더 붙는다. 서민들은 평생 구경도 못하는 액수다.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전화 한 통화로 사건을 처리하는 ‘신공’을 부리는 대가다. 그 신공을 가능하게 만든 건, 그들과 똑같은 전관예우를 꿈꾸는 후배 판검사들이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공생 관계는 ‘정의를 추구한다’는 법조인의 직업적 소명과 거리가 멀다.
그래도 나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변호사들이 더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한센인 변호인들처럼 말이다. 전관 변호사들의 ‘전화 한 통 값’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임료조차 받지 않는 공익소송 전담 변호사들도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운호 법조비리’ 수사를 계기로 상대적으로 이들이 주목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조짐이 영 좋지 않다. 정운호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 여파로 사건이 대형 로펌에 몰린다는 소식이다. 홍만표·최유정 변호사가 받았다는 어마어마한 수임료 탓에 로펌의 수임료 단가가 올랐다는 말도 들린다. 최근의 롯데그룹 수사는 대형 로펌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대형 로펌이야말로 변호사 시장을 교란한 주범으로 꼽히는데 ‘법조로비’ 수사의 수혜자라니 기막힌 반전이다.
< 이춘재 - 한겨레신문 법조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