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그냥 사세요

● 칼럼 2016. 12. 19. 21:23 Posted by SisaHan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이상한 병증이 보였다. 허리로부터 한쪽 다리로 전기가 흐르는 것같이 저려왔다. 그는 학창시절에 역기를 들다 다쳤던 부위가 다시 도진 줄만 알았으나, 정밀검사 결과는 퇴행성디스크라고 했다. 아직도 마음만은 청춘인 그인지라 섣불리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고 수소문하여 물리치료사, 한의사, 척추전문의를 찾아 다니며 상담을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는 허망하여 열심히 운동만 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불확실한 대답뿐이었다. 이제는 자녀들 모두 출가시켰으니 더 이상 우리 삶을 허비하지 말자고 은퇴를 종용했는데 은퇴초입에 이런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고 L박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비록 전공은 달라도 의학박사이니 내 나라말로 속 시원하게 그 허리 증상에 대해 문의를 하였다. 그간의 정황을 상세하게 들은 그 분은 간결한 답변을 주셨다. “그 상태라면 그냥 사세요.”했다. 무슨 기발한 치료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잔뜩 기대했던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잠시 그 의미를 되삭여보니 이해가 될 듯도 하였다. 노년에 이르러 생긴 병증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더 이상 완치할 수 없는 노인병이니, 이래저래 힘 빼고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 같았다. 평상시 가벼운 운동이나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언이 있을까 싶었다. 마침내 남편도 심각한 불안에서 벗어나 현실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통증 없이 마음껏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이민 초창기, 유난히 부부싸움이 잦았던 이웃이 있었다. 신혼을 캐나다에서 시작한 소포결혼이었으니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농도가 짙어져 심할 때는 서로 물건을 내던져 많지도 않은 살림살이가 박살이 나기 일쑤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감정이 격해지니 서로 할 소리 못 할 소리 다 쏟아놓아 서로 할퀴며 낸 상처의 골이 깊어만 갔다. 정녕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인지, 그런 와중에도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천사의 미소를 지닌 예쁜 아기였다. 그렇게 한때 잉꼬부부로 잘 살아가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다시 진한 부부싸움을 시작했다. 급기야 일이 심각하게 터졌다. 엄마 아빠의 험악한 격투전을 목격하고 놀란 아들이 911로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겨우 일곱 살이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결국 두 사람은 법정에 섰으나, 이혼만은 막아야 한다는 양측 부모님들의 뜻이 적용되어 결혼상담치료를 받는 합의로 끝났다. 아이를 위해서 퍽 다행스러운 결과여서 지인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은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역이민의 길을 택했다. 끝내 이곳 생활에 적음을 못했던 것이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근래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노년을 보낸다고 한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 옛 지인들에게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만약 당시 헤어졌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오늘과 생판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게 뻔하다. 물론 인격을 무시한 폭력적인 부부이거나 쌍방 결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없게 신뢰가 깨진 극단의 상황이라면 할 수 없겠다. 하지만 일순간의 감정으로 치달아 다시는 화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부부간의 일은, 주위 사람들이 쉽게 판단하고 조언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당시 나도 그들에게 헤어지라고 섣부른 조언을 하지 않은 것이 퍽 다행스러울 뿐이다.


우리 삶에는 숱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결을 잘 타려면 때로는 도전도 하고, 포기도 하고, 타협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해야 한다. 적절한 판단력과 삶의 지혜가 따라야 함은 필수조건이다. 가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해 갈등에 빠졌던 날들을 되짚으며 “그냥 사세요”를 단순하고 담담하게 생활에 적용해본다. 가고 싶지 않은 곳에도 ‘그냥 가보자’, 뻔히 알면서도 ‘그냥 속아주자’, 잔소리하고 싶어도 ‘그냥 참아내자’. 그렇게 생각을 다스렸더니 이상하게도 내 안이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해지고 평화로웠다. 결코 도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변화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자는 얘기다. “그냥 사세요”, 어느덧 내 삶에 친숙해지고 있는 말이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