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변호사이자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였던 패트릭 헨리는 “나는 나의 길을 인도해 주는 유일한 램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경험이란 램프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론 이상의 경험을 요구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험은 인간에게 있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을 만큼 이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류를 따라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교회들은 신앙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패커는 자신의 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신앙적 경험에 대한 방향을 다음과 같이 잘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신성을 연구하는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교리들만이 아니라 그 속성을 지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적 경험의 바른 푯대입니다.
헬라어로 ‘알다’는 ‘기노스코ginwvskw,’인데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알기 위해 배운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깊이 사귀면서 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남녀 사이의 성교에 대한 유대적 표현법입니다. 제임스 패커의 말처럼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운데 그 분을 알기 위해 배우고, 그 분의 속성을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친밀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고 그 관계에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만약에 개인 경건의 시간에 위기가 찾아왔다면 속히 회복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경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말씀인지 아닌지 헛갈린다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면 양이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 듯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셋째는 조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우리 크기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크기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한 믿음의 갈등에 직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아무리 우리의 지성과 경험을 다 동원해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과 생각을 하나님께로 조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와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일에 동참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방법으로 살 수 있는 믿음의 지표가 됩니다.
< 지광이 목사 - 그레이스힐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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