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문서 조작 스캔들에 대한 국회 집중 심의가 열렸던 지난달 19일. 저녁 7시께가 되자 중의원회 회관 주변 인도를 시민들이 가득 메웠다. 인원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최소 1000명은 넘어 보이는 인파가 아베 신조 정부의 공문서 조작 스캔들에 대해서 항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모리토모학원이 소학교를 설립한다며 국유지를 정부 감정가(9억5600만엔)의 14%에 불과한 1억3400만엔에 사들인 곳인 오사카 도요나카시의 기무라 마코토 시의원이 “아베 총리는 지금 당장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시민들은 “그렇다”, “바로 그거다”라며 호응했다. 기무라 시의원은 2015년 아베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서 강행 처리한 안보법제 제·개정 이야기를 꺼내면서 “안보법제 통과 때도 헌법학자들이 (안보법제가) 모두 위헌이라고 했는데, 아베 총리는 ‘내가 괜찮다면 괜찮다’는 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무라 시의원의 발언에서 한때는 ‘아베 1강’이라 불릴 만큼 견고해 보였던 아베 정부가 위기를 맞은 이유는 공문서 조작 스캔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일 재무성이 모리토모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내부 공문서 14개에서 300곳 이상을 고쳤다고 보도하면서 아베 정권의 위기가 표면화됐지만,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이 공문서 조작을 계기로 분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공문서 조작 항의 시위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한국의 촛불시위를 언급하는 발언도 자주 들린다. 19일 시위에서도 “한국에서 촛불시위로 부정부패에 휩싸였던 정부가 무너졌다”, “옆나라 한국에선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갔다. 아베 총리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전부터 한국 촛불시위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심포지엄 등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 신문사 소속이라고 소개하면 촛불시위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일본에서 1960년대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가 추진한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 30만명이 운집한 적이 있지만, 80년대 이후 일본에서 대규모 시위는 드문 일인데다 촛불시위가 정권 퇴진까지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에서도 한국의 촛불시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아베 총리는 공문서 조작 스캔들로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야당인 자유당의 야마모토 다로 의원이 2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총리 언제 그만둘 겁니까?”라고 묻자,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신임을 얻었다. 약속한 것을 추진하는 게 나의 책임이다”라며 사임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자민당 파벌인 ‘누카가파’의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다케시타 와타루 의원은 “솔직히 말해서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라는 존재가 정권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의혹에 관여되어 있다는 것과 폐를 끼친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아베 총리 본인과 정권 차원의 문제와는 선을 그으려는 발언이다.
아베 총리가 공문서 조작 스캔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실각할지 아니면 돌파구를 찾아서 장기 정권을 이어갈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아베 정부가 국회 앞과 신주쿠역에서 모여 정권의 오만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시민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시민의 힘이 아닐까.
< 조기원 - 한겨레신문 일본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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