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만난 지인이 내게 넌지시 권한다. ‘구자억 목사’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봐요. 재미있을 걸요.” 얼핏, 처음 듣는 이름이라 쇼맨십이 강한 설교로 유명한 목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 그는 뽕짝(트로트)가수 목사라 한다. 어떻게 평신도도 잘 부르지 않는 뽕짝을 목사가 대중 앞에서 부르며 교단에 설 수 있을까? 일단 인터넷에 올라온 그의 노래도 듣고, 목사로서 왜 뽕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도 알아보고, 설교도 여러 편 들어보았다. 확실히 날라리 목사는 아니다.
구자억 목사는 일반 뽕짝 가수와는 다르다. 곡명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뽕짝 노래지만 가사는 복음적으로 바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왜 목사로서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다는 오해와 거룩한 강단을 더럽힌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는 감리교신학대학을 거쳐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감리교 소속 목사로 안수도 받았다. 전도사 때, 청소년들의 열광적인 찬양예배를 문 밖에서 서성대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장년과 노년층을 목격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늘 날 교회 문화가 젊은 세대에 치중하여 어르신들이 소외된 것을 보고, 그들과 비신자들을 위한 사역으로 방향을 전환하기에 이른다.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교회 울타리 안에만 있지 말고 울타리 밖의 험난한 세상살이(고통 받고, 병들고, 위로가 필요한)에 지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회봉사 대부분이 자족적인 교회 안 사역에만 있기에 자신은 교회 밖의 사역을 만들어 예수그리스도와 사람 사이에 이음새가 되는 목회를 하겠다는 꿈을 펼치게 된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보수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45년째 서양문화 속에 살면서도 아직도 예배만큼은 보수적 정서를 선호하고 있다. 나름대로 목사에 대한 선입견도 철저하다. 그런 면에서 뽕짝 가수 목사는 큰 실망을 준다. 아무리 신앙 안에서 소신이 뚜렷하다고 해도 평신도인 나도 뽕짝을 멀리하고 있는데 어떻게 목사가? 경박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요즘 추세가 클래식보다 가요가 훨씬 대중화된 점을 고려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과거의 문화와 가치만을 고집하는 단단한 벽을 한번 허물어 보려고 한다.
한때 다른 교단에 속한 교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생활 중 나를 가장 낯설게 만든 것은 찬양이었다. 기존 찬송가 대신 복음성가를 주로 불렀고 가끔 율동도 했는데 내가 자라온 예배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찬송가를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그것도 조용한 반주로 들을 때 가장 감동을 받는 나였으니 교인 등록을 앞두고 망설일 수뿐이 없었다. 이 갈등에 대해 상담을 했는데 이런 설명을 들었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객은 모두 한 코스로만 올라가지 않는다. 여러 코스를 통해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데 자기와 다른 코스로 올라왔다고 잘못된 등산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잘못(Wrong doing)과 다름(difference)을 구별하라는 조언이었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다름을 받아들이는 훈련도 필요하다는 설득력에 낯선 예배에 익숙해지려 노력했으나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다만 바르게 살아가는 분별력의 잣대로 ‘잘못과 다름의 구별’이란 명제가 가슴에 남았을 뿐이다.
뽕짝 가수 구 목사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세상이 폄하하는 뽕짝이 경건한 예배와 강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가능하리라. 한때 내게 낯설었던 복음성가나 흑인교회의 열광적인 찬양과 춤을 곁들인 예배도 지금은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듯 말이다.
오늘도 많은 기독교인으로부터 이해 받지 못하고 혐오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아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구 목사에게 응원은 못해도 돌은 던지고 싶지 않다면, 내가 지나친 것일까?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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