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훈련 중단과 비핵화

● 칼럼 2018. 7. 18. 10:54 Posted by SisaHan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돈이 많이 든다며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정당화한 건 좀 아귀가 잘 안 맞는다고 느꼈다. 안보 문제를 돈 문제로 단순 환원해 설명하는 방식에서 장사꾼 냄새가 짙게 풍겨 더 거북했던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에 드는 실제 비용이 얼마인지 언급하진 않았다. 미군 당국이 따로 공개한 적도 없으니 정확한 비용을 알긴 어렵다.
그러나 지난달 미국 방송 <CBS>의 보도를 보면 어림짐작할 대목은 있다. 방송은 미 공군 관계자를 인용해 ‘비행시간당 운용(작전)비용’(OCPEH)이 B-1B가 9만5758달러고, B-2A가 12만2311달러, B-52H가 4만8880달러라고 보도했다. 이들 폭격기가 괌과 한반도를 오가는 왕복비행을 13시간으로 적용하면, 전체 비용은 347만337달러(38억원)로, 2019 회계연도 국방예산 6811억달러(752조원)에 견주면 아주 적은 비용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이 비용마저 절약될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 폭격기는 비행이 취소되기보단 한반도 대신 다른 곳으로 비행 훈련을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미 간 연합연습 및 훈련 중단으로 군의 전력 약화와 대비태세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평상시 대비하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유비무환의 가치를 들먹이는 논리부터, 연합훈련 중단이 결국 한-미 동맹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까지 이어진다. 통상 2~3년씩 순환보직을 맡는 군 인사의 특성상 훈련 공백의 장기화는 군의 기본적인 전투력 유지에도 장애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군 내부 논리로는 한 치의 틀림이 없는 이야기 같다. 훈련은 당연히 평상시 군의 직분이다. 그러나 군의 존재 근거가 국가안보에 있는 한, 더 큰 틀의 안보 차원에서 좀 더 유연해질 필요도 있다. 연합연습 중단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지난달 28일 발언을 빌리면 “한반도 내 문제들이 가장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외교관들의 협상이 더 잘 이뤄질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고,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의 하루 앞선 연설에 따르면 “신뢰 구축이 중요한 시기에 불필요한 자극이나 도발적 면모를 보이는 연습을 중단하는 것”이다.


논리를 단순화해보자. 만약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잘 이뤄져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에게 그보다 더 큰 안보이익이 있겠는가. 핵이 없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우리 수준에서 충분히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예비역 해군 제독에게 최근 사석에서 이런 얘길 들었다.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 당시 이미 남북 함정 간 전력의 차이가 많이 났다. 우리 함포는 컴퓨터로 자동 통제돼 정확한 반면 북한군 함포는 수동으로 정확도가 떨어졌다. 이후 우리는 차기 고속정을 새로 개발해 배치하는 단계인데 북쪽은 아직도 당시 경비정이 주력이다. 그때보다도 남북 간 격차가 더 벌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이 어디 해군뿐이겠는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협상을 계기로 본격 막이 올랐다. 협상에 숨결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잠시 훈련을 유예하는 게 당장 큰 문제가 되겠는가. 군 당국에 따르면 모든 훈련을 중단한 것도 아니다. 브룩스 사령관은 “혁신적 방법으로 연합훈련을 추진해 대비태세를 유지할 것이다. 훈련 규모나 연습 시기, 연습 시나리오를 조정해 도발적이지 않은 훈련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 박병수 - 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