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에 끌려간 박차순 할머니 등
22명 삶과 육성 담담히 담아내

작년 중국서 관객 550만명 대흥행
한국선 첫 국가 지정 기림일에 개봉

촬영 때 22명 생존자 이제 6명
“한·중 위안부 공동대응 계기 되길”

중국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인 박차순 할머니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말은 거의 다 잊었다. 어릴 땐 기억력이 좋아 어떤 노래든 들으면 바로 따라 불렀는데, 아흔이 넘자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 하지만 고향 노래 몇 소절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 발병 난다.”

중국 이름 마오인메이, 한국 이름 박차순(1922∼2017). 생계를 위해 중국에 왔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다섯살 딸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갔다. 할머니 손에 맡겨진 박차순은 18살이 되던 1941년 “큰 양말공장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꾐에 속아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았지만 고향에 돌아갈 길이 막막해져 중국에 남았다. 중국 총각과 결혼했지만, 위안부 시절 후유증으로 불임이 된 그는 동네 소녀를 양녀로 삼았다. 역사의 흔적이 깊게 팬 신산한 삶을 돌이키며 박차순은 말했다. “너무 오래 살까 걱정이야. 아무 쓸모가 없어.”

한·중 합작 다큐멘터리 <22>는 중국에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육성을 그저 담담히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제목 <22>는 2014년 촬영 당시 중국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숫자다. 궈쿼(郭柯) 감독은 어떤 인위적 개입도 배제하기 위해 배경 음악조차 쓰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입으로 ‘삶’을 증언할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4년이 걸려 완성한 <22>는 지난해 8월14일 중국에서 개봉해 5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제작비 대비 60배의 수익을 냈고, 역대 중국 다큐영화 흥행 1위에도 올랐다. 그리고 딱 1년 후인 오는 14일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한다. 8월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지난 1991년 방송을 통해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기림일’로, 국내에서는 올해 첫 국가 지정일로 정해졌다.

한중이 함께 위안부 문제를 담은 <22>를 만들게 된 사연에 대해 제작사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김원동 대표는 “운명”이라고 했다. 이미 위안부 영화 <소리굽쇠>(2014)와 방송 다큐 <소녀를 만나다>(2014) 등을 제작했던 김 대표는 박차순 할머니를 만나러 중국 후베이성을 찾았다가 궈쿼 감독 일행과 마주쳤다. “우리는 박 할머니를 고향으로 모시기 위해, 또 그 과정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찍기 위해 중국에 갔고, 궈쿼 감독은 영화 <22>를 촬영 중이었던 거죠.” <22>를 위해 살던 원룸까지 처분한 궈쿼 감독의 열정, 꼼꼼한 기획력과 사전 취재분에 김 대표는 감동을 받았고 곧 그와 의기투합했다. “궈쿼 감독 기획대로 영화를 제작하기로 하고 저희 쪽 제작비를 몰아줬어요. 딱 한 가지 조건은 박차순·이수단 할머니 사연을 비중 있게 다뤄달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열정만 가지고는 촬영 마무리도 개봉도 쉽지 않았다. 제작비는 곧 바닥났고, 양국의 어떤 배급사도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선 조정래 감독의 위안부 영화 <귀향>이 큰 흥행을 했는데, 궈쿼 감독이 <귀향>을 본 따 크라우드펀딩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하늘도 감동했는지 펑샤오강 감독을 비롯해 배우·제작자 등 의식 있는 셀럽들이 에스엔에스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홍보에 참여해줬어요.” 그렇게 3만2099명이 참여해 100만 위안(1억6천여만원)의 목표액을 모금했고, 영화도 기록적 흥행에 성공했다.

이런 인연으로 <귀향> 조정래 감독은 지난해 8월 궈커 감독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했다. 조 감독은 “도착하자마자 저를 후베이성에 있는 박차순 할머니 묘소로 데려가더라고요. 따님(양녀)이 할머니 영정 앞에서 ‘엄마가 그렇게 보고파 하던 고향에서 사람들이 왔다’고 했어요. 함께 붙들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라고 회상했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영화 <22>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위대한 중국’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위안부 문제처럼 아픈 역사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8월은 한한령(한류금지령)이 위세를 떨치던 때라 중국에선 한중 합작이라는 점을 드러내기도 힘들었어요. 한국 개봉을 계기로 이 문제는 국경을 넘어 한중이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2>는 장가이샹(1925~2014)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된다. 눈 덮인 무덤엔 어느새 초록색 잔디가 돋아나며 봄이 온다. 시간의 흐름은 눈 깜짝 할 사이다. 22명이던 중국 내 생존자 할머니 수는 4년 만에 6명(2018년)으로 줄었다.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흥행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영화계 극성수기인 8월14일 개봉을 고집한 것은 그 뜻을 기리자는 의미예요. ‘또 위안부 문제냐’는 비난이 제일 가슴 아파요. 위안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늘 끝내지 못한 숙제를 계속하는 기분이라고들 해요. 모두 함께 거들면 이 숙제도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요?”(김원동 대표)

<유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