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에서 구두수선점을 운영하는 김병양씨.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평생 모은 12억 대학장학금으로 선뜻 내놔
장성 출신 김병양씨 전남대에 기부
서울서 30여년간 ‘명동 스타사’ 운영
“중학교에 입학하라는 어머니의 말이 듣지 않은 것이 평생 한이었습니다. 저같은 학생들이 더는 없도록 좋은 곳에 써주시길 바랍니다.”
17일 광주 전남대에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 신사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명품 수선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병양(84·사진)씨였다. 그는 평생 모은 현금과 주택 등 재산 12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죽기 전에 고향에서 제일 좋은 학교인 전남대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아내와 자녀들이 동의해줘 뜻을 이루게 됐다.”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도 겨우 마쳤다. 학업 대신 직장을 택한 그는 광주 북구 신안동의 한 식용유 제조공장을 다니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그 시절 공장 인근에 있던 전남대는 그에게 선망과 추억의 대상이었다.
30대 초반이던 1969년 상경한 그는 남대문 시장, 명동 일대에서 식용유·얼음 등 배달일을 하며 돈도 벌었다. 1988년 배달일로 인연을 맺었던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앞 귀퉁이의 한 구두수선가게를 인수했다. 쉰살 넘어 구두수선공이 된 그는 ‘명동 스타사’라는 그럴듯한 간판도 내걸었다.
명동 스타사는 구두뿐 아니라 가방·핸드백도 고쳤다. 명품을 수선하려면 외국으로 보내야 했던 손님들이 찾아오며 수입명품 전문수리점으로 자리잡았다. 독한 가죽 염색약 냄새를 참아가며 일을 하다 보니 한때는 직원이 25명까지 늘었고 명품 판매점과 백화점, 대기업들도 단골이 됐다. 지금은 딸이 물려받아 성업 중이다.
김씨는 은퇴를 하고보니 학업을 중단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어머니 말씀을 거슬러 상처를 드렸다는 죄스런 마음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이제는 나이 탓에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아내 역시 건강이 좋지 못하다. 자녀들은 다 결혼해 더 해줄 것도 없다. 학생들이 그저 열심히 공부해 훌륭하게 성장하도록 미력이나마 돕고 싶다.”
전남대는 감사패를 전달과 함께 김씨의 기부 정신을 기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김용희 기자 >
'● C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미 방위비협상 장기화 예고- 트럼프 거부, 한국도 버텨 (0) | 2020.04.22 |
---|---|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피해 유가족 배상 소송 (0) | 2020.04.22 |
유시민 "신라젠 연루? 파도 없을 것" 알릴레오 종방 (0) | 2020.04.22 |
전두환 27일 법정출석 시민들 검정 마스크 시위 준비 (0) | 2020.04.21 |
남북철도 이을 동해선 공사 4월27일 시작 (0) | 2020.04.21 |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녹취록 내용 말했다" (0) | 2020.04.20 |
문 대통령 지지도 58.3%, 1년반 만에 최고치 (0) | 2020.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