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맨 왼쪽)할머니가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손배 소송에 '국가면제 이론' 반박 의견서
“일 사법절차에선 청구 사실상 봉쇄, 한국의 판단이 책임 물을 최후 수단”
일 정부의 ‘국가면제’ 주장에 반박 일본 법원 조직적 패소 판결 정황 짚어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우리 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변호사들이 ‘국내 소송만이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최후의 법적 수단’임을 호소하는 의견서를 제출해 힘을 보탰다. 이들은 “한국 법원이 다른 나라를 상대로 재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소송 각하를 주장하는 일본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일본 변호사연합회 소속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와 도쓰카 에쓰로 변호사는 최근 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유석동)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22일 <한겨레>가 입수한 의견서를 보면, 이들은 일본 법원과 정부가 피해자들이 일본 사법체계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을 원천 차단하고 있으므로, 한국 법원에서의 판단이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받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다른 나라 법원의 판결로 자국의 법적 책임을 강제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론’을 들어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소송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2016년 12월 처음 소송이 제기됐지만 일본 정부는 ‘소장 송달’부터 거부해 재판은 3년 가까이 멈췄고, 일본 외무성은 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소송을 각하해야 한다는 입장만 전했다. 법원행정처의 공시송달 결정으로 지난해 11월에야 첫 재판이 열렸고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 쪽에 “국가면제 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주장을 준비해달라”고 주문했다. 재판부가 주문한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일본 변호사들이 의견서를 통해 밝힌 것이다.
이들은 의견서를 통해 한국에서의 재판권을 부정하는 일본이 자국 내에서 제기된 전후 보상 재판에 대해서도 조직적으로 배상 책임을 피해온 점을 지적했다. 도츠카 변호사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독립된 두 재판부가 2007년 중국인 위안부 사건과 니시마츠건설의 중국인 강제징용 사건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판결문에 적시된 이유가 상당 부분 일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인 위안부 판결 전문 16개 항 중 니시마츠 사건과 문장이 같은 부분이 12개 항에 이른다”며 “(이는) 최고재판소의 방침이 어딘가에서 결정되고, 재판부는 그에 따른 사무처리를 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두 재판부는 전쟁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은 모두 연합국과 일본이 맺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의 틀’ 안에서 해결됐다며 피해자 개인이 재판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설시했다. 이런 판단은 그 뒤 피해자들의 배상받을 길을 막는 논리로 확립돼 모든 재판의 패소 근거로 사용됐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이를 두고 “최고재판소가 더 이상 전후보상재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판결을 끌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고재판소 조사관이었던 세기 히로시의 저서 <절망의 재판소>도 인용하며 “도쿄지법에서 이뤄진 중국인피해자 전후 보상재판에서 재판장들이 비밀리에 회합을 갖고, 각하 또는 기각을 전제하며 심리를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에서 똑같은 소송을 제기한다면 패소할 것이 확실하다. 일본의 현 사법절차에서 외국인의 전쟁·식민지 피해자의 청구가 인정될 여지가 없고, 피해자의 재판청구권도 박탈된 점은 한국의 법정에서 일본의 주권면제 주장을 인정할지 판단하는 데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최고재판소
2016년부터 피해자를 대리해 온 이상희 변호사는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금전적 배상을 넘어선 일본의 인정과 사과다. 일본 정부의 (전향적) 태도를 이끌기 위해 재판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법원이 일본의 국가면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면 위안부 피해자들은 우리나라에 있는 대사관 등 일본 재산을 강제집행할 권리를 갖게 된다. 5월20일 열리는 재판에서는 국가면제이론 관련 변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 뒤 증인신문과 피해자 법정진술 등을 거치면 9∼12월 중 판결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24일에는 이옥선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이 제기한 또 다른 일본 정부 대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열린다. < 장예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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