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 갈라먹기”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이번엔 ‘자발적 기부’에 트집을 잡는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관제 기부”라고 몰아간다. 기부할 마음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자발적 기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지는 마라.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지난 4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한 저소득층 280만 가구가 먼저 현금으로 받고 있다. 현금 지급 대상이 아닌 나머지 국민은 11일부터 신용·체크카드,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중 하나를 선택해 지급받는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청 단계에서 전액 또는 일부를 기부하거나 일단 받은 뒤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기부할 수 있다. 본인이 자유롭게 결정하는 ‘자발적 기부’다. 지급 개시일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다. 급격한 소비 위축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지원금 사용 시한을 3개월로 정한 것과 동일한 기준이다.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 갈라먹기”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이번엔 자발적 기부에 트집을 잡는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관제 기부”라고 몰아간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4일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는 코로나 대책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의 책임을 일부 고소득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이라며 “정치권에선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당일 “고소득자를 압박한 적이 없다”며 “기부는 고소득자만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진행된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이후에도 “대통령이 기부를 하더라도 조용히 동참할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고, 더불어민주당도 “기부 캠페인을 하지 않고 시민들의 자발적 의사에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귀를 닫았다. “재난지원금 ‘관제 기부로 환수’, 이건 국정도 아니다”(문화일보) “재계는 ‘사재를 내놓으라는 얘기’라고 우려한다”(중앙일보) “자발적 기부 유도는 강압적 준조세 협박”(조선일보) 등등. 기부 강요 사례를 단 한건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기업 관계자’ ‘또 다른 기업 관계자’ ‘일부 공무원’ ‘정치권’ 등 익명의 취재원에 기대 이런 주장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직접 “기부는 선의의 자발적 선택이다.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며 “형편이 되는 만큼, 뜻이 있는 만큼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실적 악화로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을 닦달해 추가 기부를 요구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때 케이(K)스포츠·미르재단 출연 요구를 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매일경제)는 주장까지 나온다. 재난지원금 기부를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동일 선상에 놓은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떻게든 정부 정책을 흔들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4·15 총선의 결과를 지켜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경제적으로 또는 심적으로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인지상정이다. 지금처럼 전대미문의 재난에 직면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정부는 국민들이 기부를 하면 고용 유지에 사용할 계획이다. 무급휴직에 들어간 가장, 정부 일자리 사업이 중단돼 생계가 막막해진 노인,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청년 등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자체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지방자치단체들에선 이미 자발적 기부 움직임이 활발하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고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이다. 지난달 25일 모 방송 뉴스에 수원에서 식당을 하는 임태선씨 인터뷰가 나왔다. “3월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근데 저희는 그래도 처지가 괜찮은 편이더라고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래서 기부를 결정하게 됐어요. 적은 금액이지만, 적은 금액이 모이면 큰 액수가 되잖아요. 큰 액수가 돼서 많은 분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수원시는 지난달 9일부터 기부를 받고 있는데 5일까지 1824명의 시민이 3억2천여만원을 모았다. 수원시는 기부금을 실직자와 소상공인 등을 위해 사용한다. 수원시만이 아니다. 부산 기장군, 경기 남양주시, 전북 장수군과 익산시 등에서도 주민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기부는 연대와 상생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코로나발 경제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이고 이를 헤쳐나갈 때 연대와 상생의 정신이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부는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 사람마다 사정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발적 기부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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