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방위상과 경제안보상 등 현직각료와 78명의 의원들
한국정부 유감 표명, 성찰 반성 촉구했으나 공허한 울림

기시다 총리 14일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하지 않겠다”
“자민당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첫 걸음” 야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내달 하순께 치러지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한다고 밝혔다. 2024.08.14. AFP 연합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다음날인 15일, 기하라 미노루 방위상 등 현직 각료들과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등 차기 총리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들 외에 78명의 국회의원들이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하라 방위상, 다카이치 경제안보상 등 참배

일본의 ‘종전일’(패전일)인 이날 기하라 방위상은 도쿄 구단기타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뒤 기자단에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애도의 정성을 바치고 존숭하는 마음을 표시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사비로 다마구시(신사에 바치는 예물)를 사서 바쳤다. 그는 자신의 야스쿠니 참배가 한일관계에 끼칠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국과는 계속 관계를 강화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직 방위상으로서는 기시 노부오가 2021년 8월 13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방위청 시절인 2002년 8월 15일에 나카타니 겐 당시 방위청장관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일본 국회의원들이 8월 15일,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항복 79주년을 맞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신토 사제(오른쪽)를 따라가고 있다. 2024.8.15. AFP 연합
 

또 현직 각료이자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차기 총리 지망자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도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참배 뒤 “국책에 따라 순국하신 분들의 영령에 대해 존숭의 염으로 감사의 마음을 받치고 왔다”고 했다.

신도 요시타카 경제재생담당상도 이날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포스트 기시다’ 인물들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과 고뱌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상도 역시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다음달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될 기시다 총리는 직접 참배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사비를 들여 다마구시를 바쳤다.

 

8월 15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지 79주년을 맞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모인 우경단체 회원들이 일본 국기를 들고 참배하고 있다. 2024.8.15. AFP 연합
일본 패전 79주년인 8월 15일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러 온 일본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고 있다. 2024.8.15. AFP 연합
8월 15일,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항복 79주년을 맞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러 온 일본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2024.8.15. AFP 연합
 

한국 외교부 유감 표명하며 성찰과 반성 촉구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기하라 방위상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일본의 책임있는 지도자급 인물이 공물료를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하고 있는 데에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며, “일본의 책임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 역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 줄 것을 촉구한다. 이것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발전의 중요한 토대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 과제들이 얽힌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그 동안 일본정부 입장과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해 온 상황에서 공허하게 들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내달 하순께 치러지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한다고 밝혔다. 2024.08.14. AFP 연합
 

기시다 총리 14일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하지 않겠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14일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해 일본정부 관료들에 충격을 안겼으며, 그들은 총리가 교체될 경우 이제끼지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14일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출마 의사를 표명하면서 “이번 총재선거에서는 자민당이 바뀌는 모습, 신생 자민당을 국민들에게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열린 선거, 무엇보다 자유활달한 논전이 중요하다. 자민당이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알기 쉬운 첫 걸음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다. 나는 오는 총재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초저금리 완화정책에서 벗어나는 탈'아베노믹스' 시동, 임금인상 등 경제 살리기와 원전 재가동, 적 기지 반격능력 보유와 방위(국방)비 대폭 증액, 그리고 주요 7개국(G7)과의 외교 성과 등을 거론하면서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자찬했으나,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해 집권 2년 만에 물러난 뒤 정권을 탈환한 이후의 자민당 역대 정권 중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로 고전했다.

특히 자민당 내 파벌들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 사실이 폭로된 뒤 지지율은 20% 안팎을 오르내렸다. 그 동안 집권 연장 의지를 보여 온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 불출마 결정을 한 것은 내년 9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그를 당의 간판으로 내세워서는 승산이 없고 자칫 또 다시 정권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당내 여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는 모테기 도시미치 당 간사장과 아소 다로 당 부총재와 손을 잡고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협력을 얻어 기존 우익 아베 정권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정권을 유지해 왔으나,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 이후 수습책으로 파벌들의 해체를 선언하고 정치자금규정법을 개정하는 등의 쇄신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거의 바뀐 게 없다는 비판 속에 밑바닥 지지율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자민당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첫 걸음”

자민당은 지난 4월 28일의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유일하게 자당 후보를 내세운 시마네 1구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에 패배했으며, 후보를 내지도 못한 도쿄 15구와 나가사키 3구까지 전패했다. 7월 7일의 도쿄도 지사 선거와 같이 치러진 도의회 보궐선거에서도 고전해, 자민당 내에서는 “기시다 총리로는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싸울 수 없다”는 위기감이 급속히 퍼졌다.

기시다가 자민당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줘야 자민당이 산다면서 자신의 사퇴가 그 최초의 한 걸음이라고 한 것을 두고, 자민당이 선거 간판 얼굴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자민당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첫 걸음”이라는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는 자민당이 체질을 바꾸는 환골탈태가 아니라,  퇴행적 체질을 그대로 온존시키면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얼굴만 살짝 바꾸는 이제까지의 낡은 행태를 되풀이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일본 국회의원들이 8월 15일,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항복 79주년을 맞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2024.8.15. AFP 연합
 

‘포스트 기시다’ 물망에 오른 정치인들

모테기 간사장은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벌(아소파. 54명)을 이끌고 있는 아소 부총재가 차기 자민당 총재 간택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포스트 기시다’ 물망에 오른 후보들은 앞에 든 몇 사람 외에 간사장을 지낸 이시바 시게루, 가미카와 요코 외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고노 다로 디지털담당상, 그리고 3년 전 기시다에게 밀려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등이다.

이들 가운데 대중적 인기가 가장 높은 사람은 이시바 시게루지만, 그는 자민당 내에서는 인기가 없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제1당 총재가 총리가 되기 때문에 자민당 총재선거 승리자가 곧 다음 총리가 된다. 그런데 자민당 총재는 자민당 국회의원들과, 같은 수의 당원 및 당우(黨友)의 투표로 뽑기 때문에 당내 지지도가 낮은 이시바가 총리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