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써주는 '검사 불패' 신화…이정섭 탄핵도 기각

검사는 절대 파면되지 않는다 '검사 방탄의 법칙' 동조

"소추 사유 불명확하거나 직무 집행과 무관" 판단
위장전입, 리조트 접대, 마약 수사 무마 숱한 의혹
'공소권 남용' 안동완에 이어 두 번째 면죄부 발급

야권 "헌재 보수화와 검찰의 조직적 방해가 합작"
"검찰-법무부-헌재, 추악한 공범의 사슬로 하나돼"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가 28일 오후 탄핵 심판 2회 변론기일 출석을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들어가며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5.28. [연합]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래 76년간 파면된 검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검찰이 이슬만 먹고 사는 청렴결백의 결정체이거나 무오류의 화신과 같은 집단이어서는 아니다. 헌법도 초월하는 이 '특수계급'은 그 어떤 추악한 부정·비리를 저질러도 파면되지 않는다는 '검사 방탄의 법칙'이 기득권 세력의 암묵적 담합 속에 깨지지 않는 불문율로 고착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9일 국회가 의결한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 즉 파면 요구를 기각했다. 이 검사가 처남에 대한 경찰의 마약 수사를 무마해주고, 서울 강남구 도곡동 거주지에서 딸의 진학을 이유로 인근 아파트로 위장전입을 하고, 남의 전과기록을 무단으로 조회하고, 호화 리조트에서 재벌기업 임원으로부터 각종 접대를 받고, 선후배 검사들에게 골프장 편의를 봐주는 등 숱한 비위를 저지른 구체적 사실과 정황이 제기됐는데도 파면할 사안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이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를 '보복 기소'했던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검사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내줬던 헌재다. 일반 공무원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검사 불패'의 신화를 헌재가 앞장서서 써주고 있는 셈이다.

헌재는 이 검사를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소추 사유가 특정되지 않았다거나, 직무 집행과 무관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우선 소추 사유 중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 ▲리조트 이용 관련 청탁금지법 위반 ▲골프장 예약 편의 제공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 "행위의 일시·대상·상대방 등 구체적 양상, 직무집행과의 관련성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형식적 적법성을 갖추지 못한 소추 사유들에 대해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의혹의 사실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얘기다. 위장전입을 했다거나, 코로나19 유행 당시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하고 리조트에서 사적인 모임을 가진 사실에 대해서는 "직무 집행과 관계가 없는 행위는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국회는 이 검사가 과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죄 형사재판에서 증인신문 전 증인 최모 씨를 면담해 무죄 선고의 빌미를 줬으므로 국가공무원법·검찰청법 등을 위반했다고 탄핵소추 사유에 포함시켰지만 헌재는 "이 사건 기록만으로는 사전면담이 위법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다만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이 검사가 한 사전면담이 파면할 정도의 행위는 아니지만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헌법상 공익실현 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이뤄진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검사와 대리인인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왼쪽)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첫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24.2.20. [연합]
 

앞서 헌재는 안동완 검사의 심각한 위법 행위인 '공소권 남용' 및 그 '의도성'을 대법원이 확정판결로 인정했음에도 "전혀 위법하지 않거나 의도성이 없다"면서 기각한 바 있다. 대법원 판시를 정면으로 뒤집는 무리수를 범하면서까지 문제 검사를 감싼 데는 윤석열 정부 들어 '보수 우위'로 재편된 헌법재판관 구성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서울 법대 79학번 동기인 이종석 헌법재판관을 소장으로 임명하고 수구보수 성향으로 유명한 정형식 판사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낙점하는 등 헌재의 우경화에 가속 페달을 밟아왔다.

검찰독재정권의 아성을 헌재가 굳건히 수호해주는 형국이 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추진 중인 후속 검사 탄핵 사안들도 전망이 더 어두워졌다. 민주당은 지난달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강백신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엄희준 부천지청장 등 비위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야권은 이날 헌재 결정이 나오자 즉각 반발했다. 그래도 상대가 사법부라 '매우 유감스럽다' '대단히 안타깝다' 등으로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한 절제된 표현을 썼지만 개중에는 '참담하고 분노스럽다'는 직설적인 반응도 나왔다. 야권은 납득할 수 없는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사 탄핵은 계속 추진할 것이며, 국회 법사위 조사와 공수처 수사 등을 통해 진상 규명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헌재는 이정섭 검사의 의혹에 대한 실체적 규명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며 "애초에 검찰은 이정섭 검사에 대한 의혹 규명 요구를 검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협조를 거부했다. 엄연히 이정섭 검사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사법 시스템을 통해서 이를 규명하고 심판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연 헌재의 기각 결정이 국민의 법 상식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민주당은 국회 법사위 차원에서 이정섭 검사의 비리 의혹에 대한 실체 규명 노력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검찰개혁 태스크포스(TF) 단장인 김용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헌재의 보수화와 검찰의 조직적 방해가 만들어낸 기각 사건"이라며 "이번 결정은 검찰개혁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과제는 끝까지 완수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또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검사 탄핵에 대해 국힘과 검찰이 헌재를 믿고 방해하더라도 우리는 국민을 믿고 계속 나아가겠다"면서 "검사에 대한 징계가 일상적이고 공정해져야 억울한 국민이 안 생긴다. 그렇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2024.8.29 [공동취재]
 

조국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대단히 안타깝다.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빈 구멍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의 수사를 통해 메워져야 한다"며 "헌재의 기각 사유는 이 검사 비위 혐의의 구체적 양상과 직무 관련성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가 헌재에 이 검사 파면을 요청하면서 제출한 탄핵소추안이 부실했던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검사의 비위 사실과 직무 관련성을 특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쪽 소추인이 얼마나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며 "당시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고 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에 소극적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짚었다.

원내 제4당인 진보당은 '추악한 공범의 사슬'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가장 격렬한 입장을 내놨다. 홍성규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눈물이 나올 만큼 참담하고 분노스럽다"며 "이럴 거면 도대체 검사탄핵제도는 왜 만들어둔 것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무슨 죄를 지어도 번번이 벌을 줄 수 없다고 하는 법의 존재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검사불패에 다시 무릎 꿇은 헌재의 굴욕적인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 원인 사실 6가지 모두에서 도저히 눈 뜨고는 봐줄 수 없을 만큼 구린내가 진동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반대 의견을 제출했고, 헌재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과 법무부에 이어 헌재까지 추악한 공범의 사슬로 하나가 된 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