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인사들
보수정부 집권전략 차원에서 실행… 윤석열 정부에선?

 
▲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 ⓒ연합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운데 과거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실이 회자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계적인 상을 받은 봉준호, 황동혁, 박찬욱, 한강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국정농단 특검 수사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백서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김기춘 비서실장 주도로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거나 야권을 지지하는 등의 전력이 있는 문화예술인 및 단체의 명단을 만들고 문체부에 지원을 배제하도록 했다. 

한강, 출판지원 사업서 배제되고 축전도 거부

“문화체육관광부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소설가 한강의 이름을 확인했다.” 2016년 박영수 특검팀은 한강 작가가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강의 이름은 백서 ‘문학출판 분야’에 여러차례 등장한다. 우수도서를 선정해 정부가 보급을 지원하는 세종도서 사업에 배제 지시가 떨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세종도서 3차 심사까지 올랐으나 최종 탈락했다. 2016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한겨레에 “‘소년이 온다’는 책에 줄을 쳐가며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검사해, 사실상 사전 검열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점을 부정적으로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강을 각종 해외행사 초청에도 배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백서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런던도서전, 2016년 파리도서전, 2016년 베를린 문학축제 및 문학행사 작가 파견 등에 참석 예정이던 한강 작가를 배제하라고 했다. 문체부가 한국문학번역원에 이메일로 한강 작가를 배제하라고 직접 하달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한국문학번역원은 현지에서 초청이 이뤄졌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따르지 않았다.

한강 작가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부커인터내셔날상을 받을 당시 청와대는 축전을 보내지 않았는데 특검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축전 요청을 청와대가 거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통상 문화예술인, 체육인이 해외에서 상을 받으면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한강 작가는 2018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아주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저는 그 중 한 사람”이라며 “저에게도 불이익이 있었겠지만, 출발선상에 서 있는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에게 훨씬 피해가 컸겠지요”라고 했다. 그는 “그런 일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봉준호 황동혁 박찬욱도... 블랙리스트 누가 왜 만들었나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는 공교롭게도 훗날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영화인들도 포함됐다. 누리꾼들은 박근혜 정부의 ‘안목’이 뛰어났다고 꼬집기도 했다. 

▲ 영화 '기생충'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현장. 사진=네이버 영화.
 

백서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 등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광해’, ‘변호인’, ‘화려한 휴가’ ‘효자동 이발사’ 등 작품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는 정치적으로 해석할 소지가 거의 없음에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논란을 낳았다. ‘도가니’는 “공무원·경찰을 부패·무능한 비리집단으로 묘사,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입”한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변호인’ 등 영화는 청와대 행정관이 직접 지시해 해외상영이 배제됐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만든 ‘문예계 주요 左성향 인물 현황’ 문건은 봉준호 감독을 ‘민노당 당원’이라며 ‘주요 좌성향 인물’로 분류한다. 봉준호 감독은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대단히 악몽 같은 기간이었다. 한국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밝힐 정도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고 박근혜 정부에서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집권 직후 청와대가 작성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에서부터 봉준호·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좌파 문화권력이 문화를 통해 국민의식 좌경화’를 이끈 대표적 사례로 나온다. 영화 ‘괴물’은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켰다고 평가하는 식이다. 

이 문건은 10년 만에 집권한 보수 정당의 집권 전략과 맞닿아 있다. 문건은 “좌파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조직적 지원하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중심으로 주도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본다. 정부가 좌파 문화를 지원하는 연결고리를 끊으면서 이들의 시점에서 ‘좌경화’된 문화예술계의 성향을 바꿔 대중문화에 침투한 좌파의 영향력에서 국민을 벗어나게 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직접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업을 주도했다. 김영한 정 청와대 수석이 남긴 수석회의 메모(비망록)에 따르면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지시가 담겼다. 특검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실장이 당시 청와대와 문체부에 지시해 3000여곳의 단체, 8000여명에 대한 블랙리스트 만들었다.

블랙리스트는 끝나지 않았다?

김기춘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개입으로 징역 2년을,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1년2개월을 선고 받았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사면된다. 이명박 정부에선 유인촌 체제 문체부를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정황과 문건이 존재하지만 공소 시효가 끝나면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와는 달리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9월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블랙리스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이 다시 문체부 장관을 맡았다. 문체부 1차관에는 한강 지원 배제 등을 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작업 실무 담당자가 임명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에 “영화계는 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실세인 곳”, “좌편향된 문화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다”는 주장을 한 인사들, 블랙리스트를 부정하는 인사들이 임명됐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임명 전인 2022년 한 강연에서 ‘기생충’, ‘베테랑’ 등을 좌파영화로 규정했다. 이 정부 요직의 인식 역시 블랙리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나라당 출신 교육감이 있는 경기도교육청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해 폐기했다는 논란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해 정한 것으로 교육청 차원에서 특정 도서를 지정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