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옳지만 시련을 겪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차담 장소인 파인그라스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했다.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 ‘81분 면담’에서 김건희 여사 문제를 해결하자며 한 대표가 제시한 ‘3대 요구안’을 모두 거부한 뒤 나온 첫 공개 발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의혹으로 들끓는 민심과 여당의 쇄신 요구에 귀를 막은 채, ‘김건희 방탄’을 위한 독선과 불통의 길을 계속 가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한 대표는 이날 밤 친한동훈계 의원 약 20명과 예정에 없던 만찬을 하며 후속 조처 등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 금정구의 범어사를 찾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며 자신은 옳지만 시련을 겪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 절이 있는 금정구는 지난 16일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접전이 점쳐지면서 한 대표가 6차례 방문하며 공을 들였고, 국민의힘이 이긴 곳이다. 친한계는 ‘김건희 리스크’로 질 뻔했던 선거를, 한 대표의 쇄신 요구 등 노력으로 이겼다고 주장한다. 반면, 친윤석열계는 ‘이길 곳에서 당연히 이긴 것’으로 본다.

윤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앞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을 만나 윤 대통령이 전날 한 대표와 면담에서 한 말을 자세히 전했다. 윤 대통령은 “특검과 검찰 수사는 객관적 혐의와 단서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정치적 의혹만으로 믿고 싶다고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당이 위헌 그리고 헌정을 유린하는 법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된 것을 거론한 것이다.

지난 4일 재표결에선 국민의힘 이탈표가 최소 4표 나왔는데, 정치권에선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다음 재표결 땐 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대표는 면담에서 ‘이대로는 이탈표를 막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윤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힘) 의원들이 헌정을 유린하는 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할 경우 나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 당 의원들을 믿는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위헌 법안에 찬성하는 여당 의원이 과연 있겠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요구한 김 여사 문제 해결책 세가지도 모두 거부했다. ‘김건희 라인’ 등 대통령실 인적 쇄신 요구에 윤 대통령은 “누가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를 해줘야 조치를 할 수 있지 않냐”며 “소상히 적어서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에게 알려주면 잘 판단해보겠다”고 했다. 김 여사 활동 중단 요구엔 “(김 여사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이미 많이 자제하고 있다. 그것도 과하다고 하니 더 자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 관련 의혹 규명 협조를 두고는 “의혹이 있으면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구체화해서 가져와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임명도 “여야가 협의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전날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면담 직후 박정하 비서실장을 통해 브리핑을 했던 한 대표와 달리, 대통령실은 아무런 설명이나 반응을 내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 지나 한 대표의 요구를 조목조목 ‘반박’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한 것은, 사실상 한 대표와 ‘제 갈 길을 가자’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친한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저녁 한 대표와 친한계 의원들의 만찬에선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조경태 의원이 전했다. 당 지도부 의원은 한겨레에 “윤 대통령의 태도는 대통령실과 당이 다 같이 죽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한계는 ‘김건희 라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윤 대통령의 얘기도 “한 대표가 면담에서 10명 가까운 이들의 이름과 문제를 설명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국민의힘 부산 지역 한 의원은 “윤 대통령이 일정을 마친 뒤 지역 의원 등과 만찬을 할 예정이었는데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애초부터 그런 계획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 이승준  서영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