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선 북한군을 겨냥할 한국제 무기
북한군 참전 김정은 체제 강화 ... 남북대결 격화
메드베데프의 '이이제이' 경고대로 움직인 러시아
북 참전 전부터 한국제 포탄 우크라 대량 반입
대국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포섭당한 남 북
북한군의 러시아 입국과 우크라이나 전선 파병설이 난무하더니 국방부와 정보기관 고위관리들로 구성된 한국정부 대표단이 브뤼셀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를 찾아갔다. 나토 및 유럽연합 쪽과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 파병에 대한 정보공유 및 대책 논의를 한 방문자들은 조만간 우크라이나도 방문할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정보·국방 당국자들과 전황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28일 마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밝혔다. 그에 앞서 윤 대통령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도 통화하면서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이동한 북한군의 실전 투입이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정보 판단도 공유했다.
우크라 전선 북한군을 겨냥할 한국제 무기
며칠 전인 25일 <가디언>은 한국의 무기 지원이 수천 마일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군을 죽이는데 사용될 가능성을 키우겠지만, 한국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강화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기사(‘혈맹’: 한국이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개입을 두려워하는 이유, ‘Blood alliance’: why South Korea fears North’s involvement in Ukraine war)에서 유안 그레이엄 호주 전략정책연구소 선임 분석가는, 문제는 한국정부가 직접적인 군사지원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개헌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과 북 모두 전쟁에서 귀중한 정보를 얻고 있다. 서울이 키이우에 직접 살상 무기를 제공한다면, 이는 남북한(two Koreans)이 대리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두드러지게 할 뿐이다.”
북한군 참전 김정은 체제 강화, 남북대결 격화
<가디언>은 실전경험이 없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북한군의 참전은 김정은 체제에 많은 이점을 가져다 줄 것으로 봤다. 스톡홀름대학 한국학과 부교수 가브리엘 욘손은 북한군의 참전은 북한에게 군과 무기 역량을 테스트할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경제적 이익과 미사일 및 핵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도움을 러시아로부터 받게 해 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과 푸틴의 밀착은 미국 등 서방의 제재에 대처하기 위한 북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더욱 힘을 실어 주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국에겐 나쁜 뉴스다. 그렇게 되면 남에서도 핵무기를 자체 개발해야 한다는 소리가 더 커질 것이다.
대리전을 매개로 한 남북한의 대결 고조는 남북 양쪽 권력자들의 집권에 유리한 정치환경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그레이엄은 우크라에 대한 서울의 살상 무기 직접 제공이 남북한 대리전 참여를 두드러지게 할 것이라고 했지만, 한국의 간접적인 무기 지원과 (아직 단정할 순 없지만)북한군의 전선 투입으로, 남북한 대리전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을진 몰라도 이미 시작됐다. 그레이엄은 북한과 러시아의 혈맹관계 발전을 한국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한국이 자초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에는 한반도에서 7300km 떨어져 있는 유럽 한복판에서의 남북한 대리전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심 반기는 세력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크라에 북괴군 부대 폭격하게 해 심리전에 활용“
한국 방문자들과 만난 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돼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주에 배치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점령 중인 러시아 쿠르스크 주 일부든 우크라이나 본토든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 군 대치 전선에 투입되는 순간 한국제 무기가 그들을 향해 날아갈 것이고, 한국의 군사안보 전문가들이 제공한 북한군의 전략 전술 등에 대한 정보들이 우크라 야전군에 전달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된다면 북괴군 부대를 폭격, 미사일 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써먹었으면 좋겠다”고 지난 24일 국정감사장에서 신원식 대통령실 안보실장에게 문자를 날린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의 언행을 그의 주장대로 “사적인 대화 차원”의 별것도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육사 37기의 예비역 중장인 신 실장은 “잘 챙기겠다”며 “오늘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고 선배인 한 의원 문자에 화답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육사 31기의 예비역 중장인 한 의원은 그 1주일 전인 17일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전에 1만 명 이상 파병돼 있다면 우리도 최소한으로 참관단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그날 국정감사에서 모니터링 요원의 우크라이나 파견이 “단계적 조치의 하나에 포함돼 있다”고 했다.
이런 사태로의 발전은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메드베데프의 '이이제이' 경고대로 움직인 러시아
지난해 4월 18일, 1주일 뒤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에 대해 발끈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때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무기 지원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지원이나 재정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말은 몇 가지 전제조건을 달고 있지만, ‘살상무기 지원 불가’라는 한국정부 기본입장을 상황에 따라 바꿀 수도 있음을 대통령이 직접 밝힌 것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그 발언에 대해 바로 다음날 이렇게 맞받았다.
“그 나라(한국) 국민이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파트너인 북한의 손에 있는 것을 볼 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메드베데프는 “최근까지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도 배제한다고 분명히 확인했다”면서 “우리의 적을 돕고자 하는 새로운 열성가가 등장했다. 한국의 윤 대통령은 한국이 원칙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 뒤 이처럼 북한에 대한 러시아제 최신 무기 제공이란 맞대응 협박카드를 꺼내 보였다. 그는 그것이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 서로 주고 받기. 맞대응)”라고 했다.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이건 일종의 이이제이다. 서로 죽이겠다고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는 '북쪽 오랑캐'를 끌어들여 '남쪽 오랑캐'를 막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메드베데프가 경고한 대로 움직였다.
북 참전 전부터 한국제 포탄 우크라 대량 반입
그 바로 전인 지난해 4월 8일 우크라 전쟁 및 각국에 대한 첩보와 정보수집에 대한 미군의 기밀 문건이 인터넷에 유출된 사건이 터졌다. 유출된 방대한 문건 중에서 그 전달인 3월 초에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 산하 국가안보실 실장의 대화를 도청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수집된 정보에는 한국산 155mm 포탄 33만 발의 미국 수출 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진해항을 출발해 독일 노르덴항으로 가는 것으로 돼 있는 한국산 포탄들의 최종 행선지는 우크라로 추정됐다.
3월 16일 도쿄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제3자 변제’라는 편법으로 밀봉함으로써, ‘화해’라는 이름의 한일유착을 압박한 미국 바이든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 윤 대통령은 4월 25일 미국을 방문했고, 8월에는 국빈방문으로 캠프데이비드에서 환대받았다.
그해 12월 4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이 그해에 한국에서 건네받아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155mm 포탄량이 모든 유럽 국가들의 공급량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포탄이 러시아로 실려가고, 군인들까지 파병되기 전부터 이미 한국제 포탄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대량 흘러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기사는 보여 준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한 적이 없다.
대국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포섭당한 남북
그렇다고 북한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끌어들인 러시아의 대응이 정당화될 순 없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미국 등 서방의 ‘동진’(유럽연합과 나토의 동쪽으로의 세력 확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발했다고 해서 러시아의 침공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그것은 일본군의 조선 및 중국대륙 침략과 하와이 진주만 미 태평양함대 기습 공격을 일본의 이익(팽창정책)을 방해 내지 훼손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러시아, 미국 탓으로 돌리며 정당화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본 우익은 지금도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강점, 중국대륙 침략을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인한 국가존망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행한 자구책 내지 정당방위라고 우기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것은, 군국 일본의 조선,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러시아와 한몸처럼 묶여 있던 우크라이나에는 지금 러시아와의 통합을 바라는 주민들도 상당수 존재하지만, 절대다수 국민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러시아와의 통합 또는 그 지배체제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런 주민들의 의사는 우선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땅에까지 가서 남북한이 대리전을 펼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전쟁 자체가 용납돼선 안 된다. ‘대국’들의 헤게모니 경쟁에 포섭돼 분단으로 상징되는, 70년이 넘는 자민족의 분열을 확대 재생산해 온 남북이 그 비참한 역사를 유럽 땅에 수출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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