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은 물론,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국무위원 임명 등에도 관여 의혹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명태균씨(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이 31일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 사이 통화녹음은, 그간 김건희 여사를 고리로 했던 공천·국정 개입 의혹 한가운데에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도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폭발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정치권에선 특검 수사 필요성이 거론되고, 박근혜 탄핵·기소 사유와 비교하는 얘기가 쏟아진다.

민주당은 두 사람 통화가 2022년 5월9일 이뤄졌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취임식 전날이다. 취임식 준비로 바빴을 윤 대통령과 명씨의 대화 핵심은 취임 축하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명씨에게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했다.

6·1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후보등록일(5월12∼13일)이 임박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국민의힘 공천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명씨는 대선 1년 전부터 윤 대통령 관련 여론조사를 81차례 무상으로 해주고, 그 대가로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아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날 통화는 공천 확답을 받지 못해 답답해진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연쇄적으로 접촉한 결과로 보인다.

명씨는 이전에도 김 여사와 공천 관련 대화를 했던 정황이 민주당 공익제보자 보호위원회의 ‘보호 대상자 1호’ 강혜경씨와의 통화에서 드러난 바 있다. 명씨는 2022년 5월2일 강혜경씨와 통화하면서 “오늘 여사님 전화 왔는데, 내 고마움 때문에 김영선 (공천) 걱정하지 마라고…자기 선물이래…하여튼 입조심해야 된다”며 “알면은 난리, 뒤집어진다”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자’와 통화한 이튿날이자 윤 대통령 임기 첫날인 5월10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경남 창원의창(김영선)을 비롯해 경기 성남분당갑(안철수), 충남 보령서천(장동혁), 대구 수성을(이인선), 인천 계양을(윤형선) 공천을 확정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명씨가 김영선 후보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공관위원장이던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에게 (공천 관련) 자료를 가져간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다” “당내에서 말이 많다”는 윤 대통령의 구체적인 전후 사정 설명은 ‘공천을 주라고 했다’는 말이 의례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윤 당선자 쪽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에게 분당갑 출마를 권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천권을 가진 당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영선 전 의원이 연고가 없는 창원의창에 공천되자 경쟁 후보들은 물론, 당내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의 이전 지역구는 경기 고양일산서구였고, 2012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여의도에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데다 고향도 경남 거창군인 탓이다. 그는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자 김 여사와는 같은 선산 김씨라는 인연이 있다.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다”는 윤 대통령 말처럼, 김 전 의원은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캠프에서 민생안정특별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한편 이날 민주당이 공개한 또 다른 통화 녹음은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통해 김 전 의원 공천은 물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국무위원 임명 등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담고 있다.

명씨는 2022년 6월15일 지인과의 통화에서 5월9일 윤 대통령과의 통화 시점으로 추정되는 김 여사 발언을 전했다. “(김 여사가) 옆에서 ‘아니 오빠, 명 선생 그거 처리 안 했어? 명 선생님이 아침에 이렇게 놀라서 전화 오게끔 만들고, 오빠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거’는 김 전 의원 공천을 지칭한 것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이) ‘나는 분명히 했다’고 마누라(김 여사)보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관 앉혀, 뭐 앉혀,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거 앉혀라, 저거 앉혀라…. 안 한 거야. 마누라 옆에서 했다고 변명하는 거야”라고 지인에게 전했다. 장관 임명 등에 의견을 낸 김 여사가 불만을 나타내자 윤 대통령이 변명했다는 취지로 들린다.               < 한겨레 김남일 기자 >

 

민주당 “윤 탄핵 여부는 국민이 판단…녹취 더 있다”

윤석열-명태균 녹취 공개 일문일답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긴급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녹취 파일이 공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1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헌정질서를 흔드는 위중한 사안임을 입증하는 물증”이라고 강조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사안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이 판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다음은 박 원내대표 및 의원들과 기자들 사이의 일문일답.

-음성 파일의 진위는 어떻게 확인했나?

“당에서 책임지고 확인했다.”(박찬대 원내대표)

“진위 검증 실무팀에서 철저히 했다.”(노종면 의원)

-제보자 신원 밝힐 수 있나?

“지금은 공개하지 않을 거다. 신원보호 절차 밟고 있다. (오늘 회견은) 이 통화 내용을 갖고 확인했고, 오래 준비했다. 많은 국민들이 명씨와 관련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관련 내용에 대해 물증이 있네 없네 하는 것을 일거에 다 해소할 수 있는 명확한 물증이라 생각한다. 민주당은 공익제보센터를 통해 이런 물증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를 내게 됐다.”(박찬대)

-공개한 녹음파일은 제3자가 녹취한 것으로 보이는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제보자 보호조치는 어떻게 되고 있나? 유출 경로에 대한 대통령실과 여당의 문제제기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법률 검토를 받은 걸로 알고 있고, 이 부분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저희가 파악하고 있다.”(박찬대)

-혹시 대통령 탄핵 사유도 된다고 보나?

“이건 아마도 국민이 판단하실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박찬대)

-(녹음파일을) 오래전에 입수했다고 했는데, 정확한 시점은 언제이고, 추후 수사의뢰 절차는?

“절차는 지금 검토하고 있다.”(박찬대)

“이 부분은 (우리가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의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 (검경이) 수사하지 않으면 당연히 특검을 하겠다.”(김용민 의원)

-(수사 의뢰) 시점은?

“지금 말씀을 안 드리는 게 맞는 거 같다.”(김용민)

-(통화가 이뤄진 지) 2년 이상 지났는데, 공소시효에는 문제가 없나?

“당연히 (대통령 임기 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고, (통화 내용대로라면) 정당법 위반 가능성과 다른 범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 (확보는)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녹취 내용 가운데 장관 관련 내용도 있던데.

“녹취록이 이거 말고 더 있다. 추후에 공개할 텐데, 그것(장관)에 대한 내용도 있을 거다. (장관 임명 관련) 의혹에 대해서 (회견을) 준비 중이다.”(박성준 의원)                               < 한겨레 기민도  고경주 기자 >

 

민주 “당 제보센터로 접수…비밀 유지하며 진위 철저 검증”

녹취파일 입수·검증 어떻게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이 31일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음은 당 공익제보센터를 통해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센터에서 박찬대 원내대표 쪽으로 전달된 뒤 박 원내대표의 참모들조차 공개 하루 전인 30일에야 관련 내용을 인지할 정도로 제보 사실 자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고 한다.

민주당은 대통령비서실 등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11월1일)를 하루 앞두고, 윤 대통령이 2022년 6·1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시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다고 언급하는 17초짜리 육성 통화 녹음을 전격 공개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보자에 대한 신변보호 절차를 밟고 있다”며 제보자의 신원은 물론 제보가 입수된 시점과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라는 폭발성 높은 사안인 만큼 통화 녹음 공개에 앞서 “제보의 진위와 신뢰도를 실무팀에서 철저히 검증했다”(노종면 원내대변인)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사전에 탐지 기술 등을 통해 조작 여부를 확인하진 않은 걸로 전해졌다. 대신 ‘메신저’인 제보자 검증을 통해 제보 내용을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딥페이크 기술 등을 활용한 조작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민주당의 회견 직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명씨의 통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민주당 쪽은 윤 대통령의 목소리 등이 담긴 추가 녹음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날 처음으로 공개된 윤 대통령 육성 녹음의 파급력을 넘어설 내용은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이날 회견에서 “민주당이 입수한 녹음에서 명씨는 분명히 윤 대통령을 ‘장님 무사’라고 했다. 김영선 전 의원 외에 김진태 강원도지사, 박완수 경남도지사도 김 여사의 선물이라 하고 3월 서초 보궐 조은희 의원 당선도 자신 덕분이라고 말한다”며 추가 녹음 내용 일부를 언급하기도 했다.                    < 한겨레 엄지원  고경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