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미국 믿고 만행' 네타냐후 '체포영장'
굶기기·살인·박해·의도적인 민간인 공격
미국 "거부"…주요 서방국 "존중·이행"
체포 가능성 작지만 운신의 폭은 제약
서방국의 무기·자금 지원 제동 가능성
'나치 홀로코스트' 독일은 아직 침묵
가자 학살극을 진두지휘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마침내 '전범'으로 전락했다. 미국의 뒷배를 믿고 폭주해왔던 이스라엘 정상이 ICC의 수배 대상이 된 건 처음이다.
'미국 믿고 만행' 네타냐후에 '체포영장'
발버둥에도 결국 '국제 전범' 공식 낙인
유엔 산하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1일(현지시간) 가자 지구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를 자행한 혐의로 네타냐후(75)와 범행 당시 국방장관인 요아브 갈란트(66)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5월 20일 재판소의 카림 칸 수석 검사장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지 6개월 만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공식 발표문을 통해 "최소한 작년 10월 8일부터 올해 5월 20일까지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를 자행한 혐의로 네타냐후와 갈란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은 굶기기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하고 살인과 박해, 다른 잔혹한 행위 등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공범으로서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범죄 혐의에 가자 민간인 주민에 대한 의도적 공격 지시도 추가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모두 연료, 전기는 물론 식량, 물, 의약품 및 의료 용품 제공을 포함한 생존 필수품을 가자 민간인 주민에게서 의도적으로 박탈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며 "가자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분이다"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인한 가자에서의 사망자는 4만4000명에 육박하고 부상자는 1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가자 전역이 초토화돼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바뀌었으며, 주민들은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인도주의 위기를 겪고 있다.
굶기기·살인·박해·의도적인 민간인 공격
"정치적 맥락에서 가자 주민 표적 삼아"
재판부는 "식량과 물, 전기, 연료. 그리고 특정 의료 용품의 부족이 민간인 주민의 일부를 파괴하는 생활 여건을 만들었고, 그 결과 영양실조와 탈수로 인해 숨진 어린이들을 포함해 민간인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들은 정치적이거나 국가적인 맥락에서 가자 주민을 표적으로 삼았고, 그렇기에 '박해'라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심리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 관련 사건을 다룰 사법관할권이 ICC에 없다는 주장을 폈으나 기각됐다. 재판부는 "이미 2021년 가자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까지 관할권을 확대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고 밝혔다.
이날 ICC는 작년 10·7 기습 테러를 자행한 혐의로 하마스 무장 조직 알카삼 여단 사령관인 무함마드 데이프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하마스 지도부의 이스마일 하니예, 야히야 신외르도 함께 영장이 청구됐으나 추후 이스라엘군에 의해 암살돼 제외됐다. 이스라엘은 데이프도 살해했다고 밝힌 바 있으나 하마스는 데이프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지 않은 상태다.
체포 가능성 작지만 운신 폭 크게 제약
서방국의 무기·자금 지원 제동 걸릴 듯
ICC 설립의 법적 근거로 1998년 채택된 '로마규정'(Rome Statute)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124개 당사국은 네타냐후와 갈란트가 자국을 방문할 때 체포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 혐의로 역시 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사례를 고려하면 영장 집행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운신의 폭은 축소가 불가피하다. 한때 당사국이었던 이스라엘과 미국이 2002년, 수단은 2008년, 러시아는 2016년에 탈퇴했다. 중국은 가입한 적이 없다.
뭣보다 ICC의 이번 결정은 네타냐후와 갈란트가 가자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를 저지렀다는 사실을 국제사회를 향해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가자 대학살에도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막대한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온 독일, 영국 등 서방국들의 행보에 일정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결정을 무시하고 기존의 졍책을 고집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반인도 범죄와 전쟁범죄의 '공범'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 수석 검사장은 성명을 통해 "모든 당사국은 재판부의 이들 명령을 존중하고 준수해 로마규정에 대한 공약에 부응해달라"며 네타냐후 등에 영장 집행을 호소했다. 그는 "가자와 서안에서 폭력이 확산하고, 인도적 접근이 더 축소되고, 국제적 범죄 혐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모든 인간의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반유대주의적 조치" 반발
바이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같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그 영원한 뒷배인 미국은 ICC의 영장 발부에 거세게 반발했다.
네타냐후는 영상 연설에서 "우리를 파괴하려는 적들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자연적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것이 이번 반유대주의적 조치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갈란트도 'X'를 통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살인 지도자들을 동일선에 놓고 유아 살해, 여성 성폭행, 노인 납치 등을 정당화했다. 살인과 테러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ICC의 결정과 관련해 "(칸) 검사장이 체포영장을 받고자 서두른 것과 이런 결론에 이른 절차적 오류에 깊이 우려한다"면서 "근본적으로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ICC는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반복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동등하게 볼 수는 없다. 전혀 없다"라며 "우리는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해 이스라엘 안보 위협에 맞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포함해 아랍·중동국들 환영
PA "국제법에 대한 희망·신뢰 보여줘"
당연히 팔레스타인은 환영하고 나섰다. 서안을 관할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국제법과 그 기구들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보여준다"며 ICC 당사국들에게 "네타냐후, 갈란트와의 접촉 및 회동 차단 정책"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도 성명을 통해 "정의를 향한 중요한 걸음이다"라고 평가하면서도 데이프에 대한 영장 발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요르단과 튀르키예 등 아랍·중동권 국가들은 ICC 결정을 환영하고 이행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작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와 관련해 정의를 향한 중요한 걸음이다"라면서 모든 조약 당사국에 체포영장 집행 동참을 촉구했다.
주요 서방국, 미국과 달리 "존중하고 이행"
EU 보렐 "정치적 결정 아냐…구속력 있다"
주요 서방 동맹국도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바이든 미 행정부의 거부 입장과는 사뭇 달랐다.
유럽연합(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ICC의 체포영장 발부는 "정치적 결정이 아니며 존중하고 이행해야 한다"면서 "이는 구속력 있는 결정인 만큼, EU의 모든 회원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 모든 당사국은 재판소의 이번 결정을 이행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외교부의 크리스토프 르무안느 대변인은 "ICC 규정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말했고, 영국 총리 대변인은 "영국은 ICC의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귀도 크로세토 국방장관은 국영 RAI TV에 "우리는 그들을 체포해야만 한다"며, 이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법적 의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카스파르 펠드캄프 외교장관은 "ICC 독립성을 존중한다"면서 "불필요한 접촉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체포영장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사이먼 해리스 총리는 이번 ICC 결정이 "대단히 중요한 걸음이다"라면서 "긴급하게" ICC 결정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네타냐후 입국 시 체포·송환"
'나치 홀로코스트' 독일은 아직 침묵
스위스도 ICC 당사국의 의무가 있는 만큼 네타냐후 등이 입국하면 체포해 넘기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모두가 국제법을 준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캐나다는 국제법정의 판결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총장 대변인을 통해 ICC 판결의 작업과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정권 당시 유대인을 상대로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탓에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자행하는 또다른 홀로코스트에 방관하며 미국과 함께 이스라엘 옹호 일변도의 정책을 펴온 독일의 올라프 숄츠 정권의 반응은 아직 없다.
그러나 헝가리,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등 극우 정권들은 로마규정 당사국이면서도 이번 ICC 결정에 "말도 안되는 결정"이라거나 "터무니없다" 또는 "심대한 이견"이란 부정적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국제형사재판소는 제노사이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창설된 세계 최초의 상설 재판소다. < 민들레 이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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