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원장 권영세... 도로 친윤 "후안무치당
"“한덕수, 헌법재판관 임명 못 해…단일대오 필요”
당 내에서도 “내란사태 심각성 전혀 못 느끼는 듯”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한다. 지역 가면 욕도 먹겠지만 각오하고 얼굴을 두껍게 다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국민의힘의 정치적 이해를 고려해 신속한 탄핵 절차 진행을 저지하기 위해 똘똘 뭉치자고 한 것이다. 당내 일부에서는 “내란사태에도 당이 심각성을 전혀 못 느끼는 거 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얼굴 두껍게 다니자”
권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이어 최상목·이주호) 부총리 등에 대해 계속 탄핵을 몰아붙일 건데 개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역주민들이 뭐라고 하면 고개 숙이지 말고 ‘죄송하다, 잘 해결하겠다’고 말하라”거나 “방송에 나가거나 기자들을 만나서도 이런 사실을 적극 설득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를 당론으로 반대한 데 이어,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를 지연시키기 위해 단일대오로 뭉치자고 한 것이다.
비상계엄 직후 한껏 몸을 낮춘 듯했던 국민의힘은 최근 친윤석열계 권영세 의원(5선·서울 용산)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하면서 ‘도로 친윤당’으로 회귀하며 상황 반전만 노리는 듯한 모습이다. 당장 12·3 내란사태에 대한 공식 대국민 사과는 한달이 다 되어가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 내정자 역시 “단합이 안 되고 당이 안정이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당을 바꿀 수가 있겠냐”며 내란사태 이후 당 쇄신보다는 ‘단합’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한 의원은 이런 모습에 “당이 집단최면에 걸려 있는 거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영남의 한 의원은 이를 두고 “그냥 한 줌밖에 안 되는 극단적 지지층만 보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08명 국민의힘 의원 중에 59명(54.6%)이 영남 소속 의원들이다 보니 일반 여론보다 공천 경선에서 투표권을 가진 핵심 당원들의 여론만 신경 쓰며 훗날만 도모하고 있다는 취지다.
중부권의 한 중진 의원은 “드러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의원들 입장에서 다급할 게 없다. 3년 반 뒤에 이뤄지는 총선에서 어차피 공천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극렬 지지층 눈치를 살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재준 의원이 지난 14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면서도 “지역 여론을 수렴해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 한겨레 서영지 신민정 기자 >
'윤석열 망령'이 당정을 배회하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원조친윤' 권영세
권영세-권성동-한덕수 3각 체제 국정운영 시도
'망령 정치' 현실화한 한덕수…쌍특검 거부 시사
한덕수 탄핵 추진하지만 '친윤 카르텔'은 여전
일괄 탄핵 뒤 차관 체제로 가는 게 안정적일지도
"한덕수 특검 공포하고 재판관이나 임명하라"
윤석열과 권영세의 김치찌개 추억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 출범을 위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열린 직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한 식당에서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김치찌개까지 직접 그릇에 덜어주며 각별히 아꼈던 인물이 있다. 바로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5선)이다.
권 의원은 서울대 법대 77학번으로, 79학번인 윤 대통령의 대학 직속 선배이면서, 대학시절 윤 대통령과 학회 활동을 함께 할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권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이미 사석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자신의 인연에 대해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다.
윤 대통령이 아직 정치 전면에 나서기 전부터, 그는 후배인 '윤 총장'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 선고를 한 뒤, 강원도 사찰을 전전하며 '걸레스님' 중광과 인연을 맺은 사연 등 매우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서울대 법대, 검찰 선배로서 그만큼 인연이 깊은 권 의원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그만둔 뒤, 국민의힘으로 인재 영입을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권 의원은 당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직접 윤 대통령을 만나 국민의힘 입당을 권유했고, 2022년 대선에서는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으로 현장을 뛰었다.
또한 선거 직후에는 대선 때 공로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며 국정 설계를 했을 뿐 아니라, 정권 출범과 함께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장관직을 그만두고 22대 총선에서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에 재출마해 당선됨으로써 '친윤 중의 친윤'이자 '윤석열 호위무사'로 자리를 굳혔다.
윤석열 정부 내내 승승장구했던 권 의원은 이번 12·3 내란 사태 당시에도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회 표결에 불참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더욱 결연한 의지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면서, 12월 7일 윤석열 탄핵 표결에도 불참했다.
그랬던 그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물러난 지 8일 만인 이날(24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대표직)으로 지명됐다. '원조 친윤의 귀환'이자 '도로친윤당의 서막'이다.
친윤 투톱+꼭두각시 총리
권 의원의 대표직 등판은 친한동훈계의 반발 등으로 무위로 돌아간 '한동훈-한덕수 공동 국정운영 체제'의 재시도로도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내란 사태 수습을 위해 자신은 2선으로 후퇴하고, 한동훈 당 대표-한덕수 국무총리가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의 국정운영 권한을 위임할 수 없을 뿐더러, 윤 대통령이 여전히 군통수권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국민의 비난을 피해 막후 정치를 할 가능성을 내포하는 만큼 이러한 구상은 반대에 부닥쳤다. 다만 이러한 체제는 윤 대통령 탄핵에 시선이 쏠린 상황에서 조용하게 이미 가동된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이 빠진 '○○○-한덕수 체제' 빈 자리는 그동안 '친윤' 권성동 원내대표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검사 출신에 고향이 강릉인 권 원내대표는 강릉이 외가인 윤 대통령과 어렸을 때부터 인연을 맺은 사이로, 윤 대통령이 정치 신인이던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중의 윤핵관'으로 불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와 한덕수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 절차를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가운데, 지난 20일 한동훈 체제에서 중단됐던 '고위 당정(여당·정부) 협의회'를 되살렸다. 사실상 윤 대통령과 발을 맞추는 친윤계와 국무총리가 독단적으로 국정 운영을 논의한 것이다. 이들은 오는 27일에도 고위 당정을 열고 국정운영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국면에서 권영세 의원의 비대위원장 지명은, 중량감이 떨어지는 권성동 의원을 대신해서 장기판의 '말'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권 의원의 등판으로 인해 당(권영세)-원내(권성동)-정부(한덕수) '3각 체제'로 친윤 기조의 국정을 운영할 '틀'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망령'이 살아서 사실상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망령 정치의 현실화
이러한 '망령의 국정운영'은 이날도 확인됐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덕수 권한대행은 오전 국무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특검법 처리나 헌법재판관 임명처럼 법리 해석과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는 현안을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한 권한대행은 표면적으로 '여야 합의'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국민의힘의 쌍특검법 반대 주장,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 불가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셈이다. 이는 윤 대통령 탄핵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사실상 내란행위에 동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의 뜻에 맞춰 움직이는 '망령 정치'가 도를 넘자 야권도 즉각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은 오늘 국무회의에서 특검법을 공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며 "시간을 지연해 내란을 지속시키겠다는 것 외에 해석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절차를 바로 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당초 이날 탄핵안을 발의하려고 했으나 오는 26일까지 지켜본 뒤 처리하기로 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오늘 한 권한대행의 국무회의 발언은 사실상 '국민의힘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특검법 수용이든 헌법재판관 임명이든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며 "국회라는 헌법기관을 정지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데에 의원들이 인식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을 끌어내려도 차순위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을 맡게 돼 한동안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최 부총리는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계엄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 역시 대통령실 경제수석 출신으로 권영세·권성동 '친윤 투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최 부총리 다음 순위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더욱 답이 안나온다. 이 부총리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을 폄훼하고 박정희 독재 정권과 전두환 신군부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던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애초부터 야당과 소통 불가다.
끊기 힘든 친윤 카르텔
이에 민주당은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이 관철될 때까지 탄핵을 반복하거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계엄 사태에 연루된 국무위원들을 한꺼번에 탄핵소추하는 방안 등을 두고 다각도로 심사숙고하는 중이다.
일각에선 '친윤 카르텔'이 탄핵 정국의 '동맥경화' 원인인 만큼 이들의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가담자 전원을 일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차관 직무대행 체제로도 가더라도 안정될 만큼 국정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점도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무총리가 국정 안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생각이 없고 내란 세력을 비호할 생각밖에 없어 보인다"며 "한 대행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회는 이미 특검법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더라도 국회의 의결은 존중돼야 하는 것"이라며 "결국 한 대행은 국민의힘이 찬성하지 않는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고, 국민의힘이 시키는 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특검법을 거부하는 것은) 반국가적 행위에 대해 수사를 통해 책임을 묻는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내란 행위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과 똑같다"며,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서도 "마음에 안 들면 국회가 추천하든, 대법원이 추천하든 임명을 안 하겠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전제군주 아닌가"라고 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국민들과 전쟁을 치르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것 같다"며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알량한 힘을 믿고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거역하며 버텨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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