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주권자인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는 입장 밝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정식 변론(14일)을 약 일주일 앞두고 본격적인 재판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6일 재판관 회의를 개최한다. 지난 1일 조한창·정계선 헌법재판관이 임기를 시작해 8인 체제가 된 이후 처음 열리는 회의다. 사진은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연합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 쪽이 계속해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주권자인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7일 브리핑에서 ‘여권에서 탄핵심판 절차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는데 헌재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헌재는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따라 헌법적 분쟁을 해결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심판기관”이라며 “헌법분쟁 해결을 위해 내리는 헌재의 결정을 가지고 새로운 헌법 분쟁을 만드는 건 헌재를 만든 주권자의 뜻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천 공보관은 또한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고 있다. 여야를 떠나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고 덧붙였다. 헌재의 이날 입장은 여권의 의혹 제기를 일축하고 탄핵심판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앞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해 “내란죄를 빼면 (대통령) 탄핵소추는 성립되지 않는다”며 “(탄핵소추 사유에 형법상 내란죄를 제외하는 것은 중요한 사정변경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문 변경을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국회 탄핵소추단이 지난 3일 2차 변론준비기일에 ‘형법상 내란죄’를 탄핵소추 사유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헌재를 찾아가 강한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내란죄를 뺄 경우 탄핵소추는 원천무효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회 탄핵소추단은 “형법상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위헌 여부만 분명히 밝히겠다고 한 것일 뿐, 탄핵 사유는 하나도 바뀐 게 없다”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쪽은 헌재 탄핵심판이 편향적이고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은 형사소송법 규정을 준용해 보통 2주에 한 번 하는데, 1주에 2번씩 재판하는 건 헌재가 예단을 갖고 재판을 편파적으로 한다는 것이 우리 당 의원들의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재판 역시 일주일에 1~2회씩 재판이 진행된 바 있다.

 

한편, 천 공보관은 이날 지난 6일 헌재가 국방부 검찰단,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검찰 특별수사본부 등 세 곳에 윤 대통령 내란죄 사건 관련 수사기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 한겨레  오연서 기자 >

 

‘극우 준동’ 합세한 국힘…체포영장 막고, 헌재·경찰 전방위 압박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40여명의 국민의힘 의원이 6일 오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에 들어간 뒤 이날 오후 밖으로 나와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종양, 조지연, 권영진, 나경원, 김기현, 조은희, 박대출, 이철규 의원. 연합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뒤 자세를 낮추고 여론 흐름을 살피는 듯했던 국민의힘이 억눌렀던 ‘극단적 보수색’을 드러내고 있다. 소속 국회의원들이 집단으로 대통령 관저 앞 극우 시위대를 찾아가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독려하고, 당 지도부는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를 찾아가 탄핵 각하를 압박한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소환조사와 체포영장 집행에 저항하며 ‘관저 농성’을 벌이는 사이 국민의힘 내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주도해 만들어낸 퇴행적 흐름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일 중진 의원들과 헌법재판소를 항의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 탄핵소추는 (이제) 성립되지 않는다. 헌재는 탄핵을 각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탄핵심판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헌재 쪽과 협의해 형법상 내란 혐의를 탄핵 사유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자신이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았던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주요 범죄였던 뇌물죄를 신속한 심판절차 진행을 위해 제외한 것에 대해선 “뇌물죄가 지엽말단적 사유였던 그때와는 다르다”고 얼버무렸다. 비슷한 시각 경찰 출신인 이철규·이만희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경찰청을 항의방문했다.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헌재와 경찰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는 동안, 김기현·임이자·박성민·구자근·강명구 의원 등 친윤계 의원 40여명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몰려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저지에 나섰다. 판사 출신인 김기현 의원은 관저 앞에서 “형사소송법에는 국가보안시설에 대해 관리자 승인 없이 압수수색할 수 없다는 명시적 조항이 있는데도 판사는 자기 마음대로 압수수색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넣고 영장을 발부했다.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니 당연히 (영장은) 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을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던 1주일 전 모습과 180도 달라진 양상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의원들의 관저 집회 참석은 ‘개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지도부 생각도 이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이날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의 법적 근거가 없는데 무리하게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을 강행하려고 한다”며 관저 앞 ‘의원 시위대’에 힘을 실었다. 한 친윤계 의원은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금 같은 여론 흐름에서는 헌재에서 탄핵 기각 결정이 나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의힘 의원들은 몇몇 여론조사에서 12·3 내란 뒤 급락했던 당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검증이 안 된 일부 조사에선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예상치보다 높게 나오자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날 윤 대통령 지지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온 군소 조사업체의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조금만 버티고 노력하면 분위기 반전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한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문항이 설계된 편향적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의원들과 강성 지지층이 집단환각에 빠진 것 같다. 곧 현타(현실 자각의 시기)가 올 텐데, 그때는 어떤 정치적 무리수를 두려고 할지 걱정된다”고 했다.

 

외부로 표출되는 반동적 흐름은 ‘내부 이탈자’를 향한 탄압과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당내에서 12명의 이탈자가 나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내란죄를 사유에서 제외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찬반)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김상욱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진영 싸움’의 문제로 변질시켰다. 당이 탄핵 찬성파를 박해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같은 ‘탄핵 찬성파’였던 조경태 의원도 “우리 당명이 국민의힘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힘은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한 윤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금 왕정시대도 아닌데 (왜 관저 앞으로 몰려가) 왕을 떠받드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주류가 보여주는 반동적 행태의 밑바탕에는 철저한 정치적 사익 추구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의 헤게모니를 쥔 영남권 의원들로선 국민 다수의 여론과 동떨어진 당 핵심 지지층의 정서에 편승해 가는 게 의원직과 당내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학)는 “당 지도부 인사 중에는 윤 대통령과 한배에 탄 사람이 많다. 탄핵을 쉽게 인정하게 되면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지금 상황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 서영지 전광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