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은 없었다... 그는 '확신범'조차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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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
반전은 없었다. 윤석열의 최후 진술을 앞두고 심지어 보수 언론조차 헌재 판결 승복과 대국민 사과 등 태도 변화를 요구했지만, 이제껏 보였던 모습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이쯤 되면 단순히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수준을 넘어, 진실을 창조하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리플리 증후군을 의심할 정도다.
만 오천 자가 넘는 장문의 최후 진술은 12.3.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성토한 것이 아니라, 재창조한 수준으로 내달렸다. 그는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면서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고 강변했다. 계엄이 실은 '호소'였다는 것을 군 지휘관들에게는 그대로 알릴 수 없었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면서, 국방부 장관에게만 슬쩍 알렸다고도 했다.
자신의 주장처럼 "이미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인 윤석열이 왜 '대국민 호소'를 위해 장갑차와 무장 군인을 동원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게다가 이것이 그냥 '호소'를 위해 계획된 짧은 퍼포먼스인 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국방부 장관은 계엄 실패 후 "중과부적"(적은 수로 많은 적을 대적하지 못한다)이었다고 말한 셈이 된다. 대국민 호소가 중과부적이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대국민 호소가 '2시간만' 진행되어 한탄한 것인가?
대국민 호소? 계엄선포문을 다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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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텔레비젼 촬영)이정민
윤석열은 최후 진술에서 그 호소라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도 밝혔다. "주권자인 국민들께 이러한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리고, 국민들께서 매서운 감시와 비판으로 이들을 멈춰달라고 호소"한 것이 계엄이었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비상계엄의 날로 돌아가 보자.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 시키겠습니다."
"저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명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2024.12.3. 윤석열, 비상계엄선포문 중)
여기서 반국가 세력은 '국회'다. 계엄선포문에서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해 놨다. 그렇다면 계엄선포문에서 국회를 척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계엄선포문은 국민에게 '해달라'는 호소문이 아니라 '자신이' 국회를 척결 '하겠다'라는 선언임이 명백하다. 믿어달라고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 말 또한 한 적이 없다고 부정한다면 최소한 일관성 하나만은 인정할 수 있겠다.
자신이 척결하겠다고 해놓고, 사실은 국민보고 해달라는 것이었다는 태도 변화는 이해하고 넘어가자. 우리 주위에도 일은 다 저질러 놓고 책임은 남더러 지라는 사람은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은 계엄군의 국회 도착 지연과 많은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지 못한 상황을 모두 자신이 의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본관에 계엄군이 진입한 이유도 질서를 유지하러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불 꺼진 창문을 찾아 들어간 것"이라니?
게다가 한사코 자신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날 계엄군의 행동은 경비와 질서 유지만 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무시한 독자적 행동이라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온 국민이 생중계로 목격한 국회 진입 계엄군들이나 체포조를 구성해 돌아다녔다는 이들, 투옥과 고문을 준비한 이들은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고 홀로 반란을 일으킨 진짜 내란범이라는 것인가?
확신범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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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변호인과 대화하고 있다.연합
비상계엄의 가장 큰 전제, 즉 계엄 선포 자체가 헌법상의 요건에 맞지 않는 불법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윤석열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그의 계엄 선포가 '확신범'의 행위였다고 믿었다. 불법이거나 무리인 줄은 알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믿는 강한 확신에서 나온 행동. 그래서 실패한 계엄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것이 실패한 혁명가, 확신범의 운명 아닌가?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 등장한 그의 언술들은 확신범의 행태와는 멀어지고 있다. 자신의 불법적인 명령에 소극적으로 저항하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한 의로운 행동을 '자신의 의도'였던 것처럼 떠벌리고, 명백한 증거로 남아 있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자신을 믿고 따른 부하들에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명령을 따른 이들을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만들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선장이 침몰하는 배에서 혼자 살겠다고 뛰어내리는 꼴 아닌가?
생각은 달라도,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일관되게 강변하고 떳떳하게 책임을 지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과욕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곧 탄로 날 거짓말도 서슴없이,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쏟아내는 졸렬한 모습에서, 그가 아직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빠른 결정, 엄정한 처벌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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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 2차 현장조사 청문회가 예정된 지난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입구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어쩌면 윤석열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먼저 내보내려는 이들은 '트럼프 경로'에 희망을 걸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만 살면, 그의 사면권을 통해 자신들도 구제받을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그러나 그 희망의 대가는 너무도 크다.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적대적 혐오감을 극대화해 최대한의 갈등을 끌어 올리는 전략의 결과는 상식적 민주주의의 모든 측면을 마음껏 부수고 있다. 그의 생존은 민주주의의 죽음을 대가로 한다.
자신이 살 수 없다면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는 '자폭의 심리상태'는 이쯤에서 멈춰 세워야 한다. 그러나 합리적 이성으로, 논리적 설득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행동에 명분을 제공해 줄 논리이지, 사실관계 따위가 아니다. 거짓 주장의 사실관계가 드러났어도 아무런 태도 변화도 읽히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변호인단은 연방제 나라의 헌법 해석까지 끌고 와서 분투 중이다. 여전히 대통령의 입에선 수많은 음모론이 사실처럼 울려 퍼진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기계적 중립을 가장한 어정쩡한 태도다. 그것이 극단적 행동의 범위를 넓힌다. 현실 가능한 해결책은 탄핵 심판의 빠른 종결과 쿠데타 세력의 엄정한 처벌 뿐이다. 그 위에 더 나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시 쌓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번 사태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어느 쪽의 편에 서든,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과제, 성찰의 지점을 낳았다. 하나씩 짚어보고 고민해 더 나은 답을 찾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공론장을 파괴하고 공유된 상식을 허무는 행동부터 정리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빠른 결정을 기대한다. < 오마이 손우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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