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할 수밖에 없는 다섯 가지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3월 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며 걸어 나오고 있다. 김영원 기자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이정미 재판관을 비롯한 재판관 8명이 들어섰습니다. 이정미 대행은 미리 준비한 결정문을 20분 정도 차분하게 낭독했습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재판관들이 대심판정을 빠져나간 뒤 청구인단을 대표해서 국회 법사위원장 권성동 의원이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이번 사건의 승리자도 없고 패배자도 없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권성동 의원의 표정은 담담했습니다. 이날 낮 태극기 부대의 격렬한 시위로 사람이 숨지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권성동 의원의 당부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정국은 조기 대선 국면으로 넘어갔습니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다섯 후보의 토론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됐습니다. 선거는 5월 9일 화요일에 치러졌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주에 한국갤럽이 “문재인 대통령 향후 5년 직무 수행 전망”을 물었습니다.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87%, ‘잘못할 것’이라는 응답이 7%였습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같은 조사에서는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79%였습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은 71%였습니다. 궐위에 의한 대통령 선거였지만, 정상적인 대통령 선거보다 선거 이후 민심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궐위 대선은 대한민국 국민의 성숙한 정치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탄핵심판 결정 선고 이전부터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선고 이전에는 온 나라가 뒤숭숭했습니다.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연일 벌어졌습니다. 탄핵 심판 결과를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017년 3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문을 읽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선고를 이틀 앞두고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들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는 ‘지라시’가 돌았습니다. “의견이 다른 재판관 몇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찬성 5, 반대 3’으로 갈려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정미 재판관의 남편이 해산된 통합진보당 당원이라는 가짜뉴스가 돌았습니다. 조선일보가 창간 97주년 여론조사 결과를 3월6일 치 신문에 실었습니다. ‘헌재 결정을 무조건 인정하고 승복해야 한다’가 50.6%,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반대 의사를 밝혀야 한다’ 44.6%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상황을 2017년과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재판관 평의에서 고성이 오갔고 몇몇 재판관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는 가짜뉴스가 최근 나돌았습니다. 재판관들의 이념 성향에 따라 ‘찬성 5, 반대 3’으로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2월 13일 인터넷에서 조작된 사진을 보고 문형배 재판관이 동문 온라인 카페에서 미성년자 음란물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가 다음 날 사과했습니다. 3월 13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에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이) 내 생각과 달라도 수용하겠다”는 응답은 54%,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42%였습니다. 2017년 수치와 비슷합니다.

 

그래서입니다.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정국이 급속히 안정되고 조기 대선 국면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60일 이내 궐위 대선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입니다. 전 세계는 이번에도 대한민국 국민의 성숙한 정치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윤석열 대통령 파면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압도적 여론입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사퇴를 선언하면서 정치적 타협을 모색했다면 상황이 지금에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습니다. 탄핵이냐 기각이냐 둘 중 하나라면 다수 의견을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갤럽이 3월14일 발표한 정례조사에서 탄핵 찬성은 58%, 탄핵 반대는 37%였습니다. 1월 중순 이후 큰 변화가 없습니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환경에서 이 정도면 압도적 격차입니다. 특히 중도층은 탄핵 찬성이 69%, 탄핵 반대가 26%입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헌법 수호를 위해 설치된 헌법재판소가 국민 다수의 여론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재판관들은 판사들입니다.

판사를 오래 한 법조인에게 탄핵 심판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판사는 결국 판결문으로 말한다. 그런데 논리에 맞지 않으면 판결문을 쓸 수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재판관들은 법조인들입니다. 이념 성향보다는 법조인이나 판사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12월 3일 밤 군인들이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장면을 온 국민이 목격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한동훈, 우원식 등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국회의원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 포고령을 발표했습니다. 논리적으로 탄핵 기각은 불가능합니다.

 

셋째, 계엄 면허증을 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 탄핵이 기각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앞으로 언제든 비상계엄을 또 선포할 수 있습니다. 2차 계엄, 3차 계엄을 남발하며 계엄을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비상계엄의 일상화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될까요? 절대로 안 됩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

 

넷째, 내란 재판입니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는 대통령 불소추특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만약 탄핵이 기각돼도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로 하는 내란 재판은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재판이 중단될 것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가 재판에 윤석열 피고인을 출석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재판에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검사 인사권을 갖고 있습니다. 검찰청법 34조 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재판을 방해하기 위해 검찰에 설치된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를 해체할 것입니다.

 

검찰을 시켜서 아예 자신을 포함해 내란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공소 취소는 검사가 1심 선고 전에 공소를 철회하는 것입니다. 1심 선고 이후에는 항소 포기로 형을 확정한 뒤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할 수도 있습니다. 공소 취소나 사면으로 12·3 친위 쿠데타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윤석열 대통령이 풀어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이런 일이 현실로 벌어질 수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다섯째, 민란입니다.

만약 탄핵을 기각하면 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민란은 “포악한 정치 따위에 반대하여 백성들이 일으킨 폭동이나 소요”입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강삼재 사무총장이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김대중 후보가 670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관계 기관을 통해 죽은 계좌를 모두 수집해서 열거한 허위의 폭로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잘못하면 민란이 일어나고 대통령 선거 자체를 치를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자신이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수사 유보를 지시했다고 회고록에 남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은 김대중 비자금 사건 수사에 비할 수 없는 폭발력을 갖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할 수 없는 마지막 이유입니다.    < 한겨레 성한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