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파면 뒤 모처럼 평온하던 국민에 '개헌 폭탄'
내용상 부적절, 절차상으로도 불가능한 '오발탄'
조기 대선 6월 3일로 확정…앞으로 불과 56일
법정 공고 기간 최소 38일 빼면 남는 건 18일
권력구조 개편까지 여야 합의? 졸속 야합 불가
이재명 "내란 종식이 먼저, 대선 뒤 신속 개헌"
사전투표 불가능한 현행 국민투표법도 장애물
조국혁신당도 반대…"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우원식 국회의장이 일요일 낮에 느닷없이 투척한 '개헌 폭탄'은 윤석열 파면 뒤 모처럼 평온한 휴식을 취하던 시민들에게 잠시 황당함과 짜증을 안겼을 뿐 '불발탄' 또는 '오발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입법부 수장의 '대선·개헌 동시 투표론'은 비록 그 의도가 순수했다고 해도 내란 종식이라는 민주 진영의 최우선 당면 과제에 필요한 동력과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대선 프레임을 '헌정 파괴 세력 심판'이 아닌 '개헌 대 반개헌 대립'으로 물타기 할 수 있으며, 주권자인 국민의 숙의 절차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즉각적인 반대 및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내용상의 여러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대통령 선거까지 남은 기간이 너무 촉박해 애초에 개헌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은 근본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에 따라 60일 안에 실시돼야 하는 조기 대선의 선거일은 8일 열리는 국무회의를 통해 오는 6월 3일로 확정될 예정이다. 8일을 기점으로 불과 56일 뒤에 대선이 치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과 국민투표법상 헌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개헌안을 마련하고 재적의원 과반수로 발의를 한다고 해도 국민투표에 부쳐지기까지는 최소 38일간의 공고 기간을 거쳐야 한다. 국회 의결 전 헌법 개정안 최소 공고 기간 20일과, 국민투표 전 국민투표안 및 투표일 최소 공고 기간 18일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원식 의장 본인도 6일 기자회견에서 "(국민투표까지) 최소한 38일이 필요하다. 개헌특위에서 내용을 논의해야 하니까 이에 맞춰 해보려면 특위를 빨리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헌법 개정안 제안 및 의결 결과 이송에도 최소 각 1일씩 2일이 소요되지만, 편의상 이 부분을 생략한다고 해도 38일은 무조건 필요하다.
그러면 6월 3일 대선일까지 총 56일 중에서 법정 소요 기간 38일을 빼면 남는 건 18일뿐이다. 겨우 2주 남짓한 기간에 여야가 개헌특위를 구성해 각당 입장이 첨예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는 권력구조 개편까지 포함한 헌법 개정안을 채택‧발의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계산이다.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여야가 졸속으로 추진한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민주당이 '내란 잔당' 취급하는 국민의힘과 그런 야합을 할 리 없고 시민들이 수용할 리도 없다.

무엇보다 개헌의 열쇠를 쥔 제1야당 사령탑이자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는 요지로 우 의장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 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제가 전에 말씀드렸다. 개헌,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5년 단임제라고 하는 이 기형적 제도 때문에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부터 레임덕이 시작된다. 재평가받을 기회도 없기 때문에 국정에 안정성이 없다"며 "그래서 4년 중임제로 바꾸자, 전 국민이 공감하지 않나? 또, 때만 되면 국민의힘도 하는 이야기가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 몇 년째 말만 하고 있다. 이번에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정말 내란 종식이 먼저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국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통째로 파괴했다. 국민들의 힘으로 간신히 복구하는 중"이라며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 우선은 내란 종식에 좀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개헌으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생각을 국민의힘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사전투표가 불가능한 현행 국민투표법이 장애물로 작용하는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현재 국민투표법상으로는 사전투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대선과) 동시에 개헌을 하려면 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본투표일에만 (투표를) 할 수 있고, 사전투표하는 사람은 개헌 투표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개헌에 필요한) 과반수가 안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러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것이 또 시한이 있다. 이번 주 안에 처리가 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60일 안에 대선과 동시에 개헌을 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최선을 다해 국민투표법 개정을 해 보도록 노력하겠다. 만약에 국민투표법이 신속하게 합의돼서 개정이 되고 시행이 된다면 개헌이 물리적으로는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여지는 열어놨다. 또 "개헌 문제를 가지고 일부 정치 세력이 기대하는 것처럼 논점을 흐리고, 내란의 문제를 개헌 문제로 덮으려고 하는 그런 시도를 하면 안 되겠다"면서 "그러나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게재하는 문제, 또 계엄 요건을 강화해서 함부로 친위 군사 쿠데타를 할 수 없게 하는 것, 이것은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과 계엄 요건 강화 정도는 국민투표법 개정을 통해 개헌이 가능하다면 이번 조기 대선일에 바로 처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같은 극히 제한적인 '원 포인트 개헌' 수준을 넘어 우 의장이 제안한 것처럼 '권력구조 개편'까지 이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6월 3일까지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니 일단 대선을 치르고 난 이후에 개헌을 최대한 빨리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대통령의 4년 연임제 또는 중임제, 감사원의 국회 이관, 국무총리 추천제 도입, 결선투표제, 자치분권 강화, 국민의 기본권 강화, 이런 것들은 매우 논쟁의 여지가 커서 실제로 결과는 못 내면서 논쟁만 격화되는, 어쩌면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각 대선 후보들이 국민에게 약속을 하고, 대선이 끝난 후에 최대한 신속하게 그 공약대로 개헌을 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은 개헌도 중요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 파괴를 막는 것, 파괴된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 내란 극복이 훨씬 더 중요한 과제라는 데 초점을 맞춰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다른 구성원들도 반대 의사를 뚜렷하게 나타냈다. 내란 동조 세력이 개헌론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내각제 논의'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은 데다, 위헌 정당으로 해산돼야 마땅한 국민의힘과 한 테이블에서 개헌 협상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 이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바로 단호하고도 철저한 내란 종식"이라며 "개헌은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개헌 논의에 참여하려면 국민의힘의 내란 종식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국민의힘은 개헌을 논의하기 전에 1호 당원인 내란 수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즉각 출당 조치하라. 대선후보 공천은 꿈도 꾸지 말라. 내란 종식을 위한 내란 특검, 김건희·명태균 특검 통과에 동참하라"고 엄포를 놨다.
김병주 최고위원도 "지금 개헌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 매우 부적절하고 기간도 60일 정도로 대단히 부족해 졸속으로 진행될 수 있다. 국민투표제로 봤을 때 어렵다"며 "대선에서는 사전투표와 본투표가 있는데 국민투표에서는 사전투표와 본투표를 할 수가 없다. 한 곳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50% 넘기도 어렵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내란 종식"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개헌에 대해서는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으로 발전시키고 실제 집권 시 임기 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하더라도 방향은 내각제가 아니라 대통령 연임제, 또는 중임제가 해답"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개별 의원들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채현일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조기 대선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놓여 있다. 60일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 통합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오롯이 감당해내야 할 시간"이라며 "이 상황에서 개헌까지 병행하자는 제안은 현실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국민 정서상으로도 무리다. 두 달 내에 경선과 본선을 치르며 동시에 권력구조 개편까지 논의하고 국민적 합의까지 이루자는 것은 지나치게 조급한 선택이다.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출범한 이후,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순서"라고 짚었다.
강득구 의원은 "우원식 의장님이 정말 뜬금없이 개헌을 주장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계엄 못지않은 충격이었다. 한 번 뱉은 말씀이니 지울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스스로 거두어 달라"면서 "내란의 큰불은 껐지만 대한민국은 나라도 국민도 상처투성이다. 개헌보다 먼저 무너진 민주주의를 온전히 회복하고, 국정을 회복하고, 민생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지금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개헌이 아니라 심판이고 회복이다. 개헌 프레임에 휩쓸리면 심판도 회복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민형배 의원은 우 의장의 개헌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물리적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1987년 개헌안 마련에 90일이 걸렸다. 여당과 야당,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았던 시기에 최소 석 달이 걸렸는데 정치권과 국민적 분열이 극대화한 지금 60일 동안 개헌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기어코 마련한다면 지금보다 좋은 헌법이기는커녕 더 나쁜 졸속 개헌안이 나올 수도 있다.
둘째, 정치적 선택과 집중이라는 점에서 우원식 의장의 제안은 잘못됐다. 지금은 내란 종식과 민주 정부 수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런 중차대한 과제에 개헌 논의를 얹어 버리면, 내란 종식과 민주 정부 수립의 역량이 분산된다. 더욱 걱정인 것은, 개헌 내용에 대한 의견 차에 따라 우리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
셋째, 지금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건 내란 세력에게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헌안 마련은 모든 정당이 함께 모여 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현재 의석수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개헌 논의에 참여하게 된다. 내란당 해체는커녕 그들을 국가의 백년지대계에 정중히 참여시키는 꼴이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넷째, 헌법의 주인이 국민이듯 개헌의 주인도 국민, 곧 주권자 시민이라야 한다. 지금 개헌을 한다는 것은 정치권이 제 맘대로 개헌안을 마련하고, 주권자에게는 찬반투표만 맡기겠다는 거다. 정치인보다 더 똑똑하고 더 열정적인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방식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가야 한다. 주권자 시민들의 지혜와 열정에서 논의를 시작해 개헌안을 만들고,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그것을 다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개헌이 탄생할 수 있다.

원내 3당인 조국혁신당도 민주당과 비슷한 기조를 보였다.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우선 내란 종식과 내란 세력 일소가 우선돼야 한다. 조국혁신당은 반헌법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제안한 바 있다. 독립적인 기구로 반헌특위를 발족해 내란의 실상을 낱낱이 조사하고 내란 특검도 함께 실시해야 한다"며 "그런 연후에 국민이 안심할 수 있고 개헌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 개헌특위를 조기 대선 직후 띄울 것을 제안한다"며 "개헌 국민투표는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제시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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