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수괴 윤석열 전원일치 파면 주역

탄핵 심판 내내 살해 협박 등에 노출
퇴임 직전엔 한덕수의 '제2 내란' 저지
선고 지연으로 국민 '피 말리기도'

문 "통합 고수…그래서 시간 걸려"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18일 6년 임기를 마치고 사인으로 돌아갔다.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두 재판관은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했으며,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대통령직 파면이란 역사적 결정을 끌어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지난 4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문 권한대행이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천명한 순간은 윤석열의 위헌적 내란 행위에 종언을 고하고 한국의 민주 헌정질서를 지켜낸 또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길이 남게 됐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2025.4.4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내란수괴 전원일치 파면 주역들
탄핵 심판 중 살해 협박에 노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문형배 재판관(59·사법연수원 18기)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주로 근무한 지역 법관 출신이고,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역대 최연소였던 이미선 재판관(55·사법연수원 26기)은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우리법연구회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윤석열 탄핵 사건에서 문 재판관은 소장 권한대행으로서 탄핵 심판 진행의 중심을 잡았고, 이 재판관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과 함께 수명 재판관을 맡아 쟁점 정리 등의 작업을 해냈다.

 

두 재판관은 진보 성향인데다 탄핵 심판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탓에 작년 12월 14일 국회의 탄핵 소추에서 시작해 4일 파면을 선고하기까지 111일간 남다른 고통에 시달렸다. 불법 비상계엄을 통한 12·3 친위쿠데타를 '계몽령'이라면서 내란 옹호와 탄핵 반대를 외쳐온 극우·광신·극렬 윤석열 지지자들 때문이었다. 헌재 게시판과 극우 커뮤니티에는 살해 위협도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이완규 법제처장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2025.4.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퇴임 전 한덕수 '제2 내란' 저지
헌재의 '내란 진지화' 일단 무산

 

퇴임 직전이었지만 두 사람은 국민의 절박한 요구에 부응해 윤석열 세력의 '제2 쿠데타' 저지란 역사적 책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에 불과한데도 지난 8일 '대통령 몫'인 문형배·이미선 후임 재판관에 내란 동조 혐의가 있는 '윤석열의 법률 집사'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하는 만행을 저질러 윤석열과 '한 몸'임을 확인시켰다. 파면 직후 헌재를 '내란 세력의 핵심 진지'로 구축하고자 했던 내란 잔당들의 기습적인 '제2 쿠데타'였다. 그러나 16일 두 사람 등 헌재 재판관 9명이 전원 일치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일단 큰불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마은혁 재판관 임명으로 '9인 완전체'가 됐던 헌법재판소는 다시 '7인 체제'가 된다. 얼마 전 헌재는 "두 재판관 퇴임 이후에도 7인의 재판관이 사건을 심리하여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히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6월 3일 대선 전까지 이 사건 '본안 판단'은 유보될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당분간 헌재 재판관 구성은 진보 2명, 중도 2명, 보수 3명이다. 정계선·마은혁 재판관은 진보, 정정미·김형두 재판관은 중도, 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2024. 12. 31 [뉴시스 캡처]

 

'윤 궤변 격파' 헌재 파면 결정문
선고 지연으로 온 국민 '피 말려'

 

헌재의 윤석열 파면 결정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하다.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와 열망을 비교적 충실하게 담아냈고, 간결한 문장에 탄탄한 논리 구성도 돋보였다는 게 중론이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각종 궤변을 일일이 격파한 대목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대표적으로 헌재는 다수 야당의 탄핵 소추 남발과 부정선거 의혹 등이 비상계엄을 유발했다는 윤 측의 주장에 "정치적, 제도적, 사법적 수단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고, '계몽령'이었다는 주장엔 "국회가 신속하게 해제 요구를 결의했고...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야당의 탄핵 소추 남발에 우려를 인정하는 듯한 양비론적 논리를 편 것은 문제다.

 

윤석열을 파면했다고 헌재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온 국민이 TV 생중계를 통해 군 병력들이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불법 침탈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도, 헌재는 파면 선고를 미뤄왔고, 거의 넉달 간 대다수 국민은 '내란성 불면증'과 '윤석열 복귀 가능성'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김복형‧정형식‧조한창 등 보수 성향 헌법재판관 3인을 응원하는 영상이 대거 올라오고 있다.

 

'딴지' 보수 재판관들 설득해
전원일치 결정 유도에 성공

 

끝까지 국민에게 이렇다 할 해명도 사과도 없었던 점은 비판받을 만하다. 헌재의 선고 지연 책임에서 물론 문형배·이미선 재판관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문 권행대행 등이 보수 재판관들과 논쟁하고 일일이 설득해 8명의 전원일치 결정을 도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 헌재 결정문을 보면, 보수 성향의 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이 보충의견들을 통해 국회 탄핵안의 2번 발의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일 수 있다거나, 더 엄격한 전문법칙 적용을 강조하는 보충 의견을 낸 걸로 미뤄 평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걸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기각 결정이 난 헌재의 한덕수 탄핵 심판 과정을 보더라도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위는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인 만큼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정족수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한다고 주장하면서 '각하'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윤석열 탄핵 심판에서도 계속 '딴지'를 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 극렬 윤 지지 세력의 서울 서부지법 폭동 △ 윤석열 구속 취소와 검찰의 즉시 항고 포기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선고 △ 재·보궐 선거 등에 대한 정치적 고려도 있었던 듯하다.

 

이런 몇 가지 아쉬움 점은 있지만, '8 대 0' 전원일치 결정을 이뤄낸 건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극렬 윤 지지 세력은 헌재의 파면 결정에 불복했을 것이고 그 후 폭력 사태를 포함해 국민적 갈등은 더욱 증폭됐을 게 틀림없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5.4.18 연합

 

문형배 "통합을 좀 고수하자,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윤석열 파면 선고 지연과 관련해 문 대행은 17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법률가의 길' 특강에서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탄핵 소추가 야당의 권한이다, 문제없다 이렇게 얘기하고 그렇다면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권한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게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관용과 자제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며 "관용과 자제를 뛰어넘었느냐 아니냐, 현재까지 탄핵 소추는 그걸 넘지 않았고 비상계엄은 그걸 넘었다는 게 우리(헌재)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에 적용되는 권리가 여당에도 적용돼야 하고 여당에 인정되는 절제가 야당에도 인정돼야 그것이 통합"이라며 "그 통합을 우리가 좀 고수해 보자. 그게 탄핵선고문의 제목이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4.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미선 "국가기관, 헌법 준수해야,
무시하면 우리 사회 질서 흔들려"

 

문 대행은 이날 오전 헌재에서 진행된 퇴임식에서 "흔히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정치적 해결이 무산됨으로써 교착상태가 생길 경우 이를 해소할 장치가 없다고들 한다"면서 "그러나 헌법의 설계에 따르면, 헌재가 권한쟁의 같은 절차에서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하고 헌법기관이 이를 존중함으로써 교착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미선 재판관도 퇴임사를 통해 "국가기관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이고, 자유민주국가가 존립하기 위한 전제"라면서 "국가기관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무시할 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