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정치자금 사건의 시작은 SK그룹 수사 

SK분식회계 사건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


안대희·이인규·윤석열·한동훈 등 정치 자금 수사
대검 중수부, 수사 중 SK 회장 회유·압박 정황
"김민석이 건 얘기하지 않으면 놔주지 않겠다"

"가학적인 수사"했던 특수부…결국 김민석 기소
2003년 대선자금 수사팀 2009년 노무현 수사
정치 검찰들, 박연차 구속한 날 김민석 구속기소

2003년 대선자금 수사부터 본격적으로 정치화
김민석 정치자금 수사는 우검회 일당 '첫 작품'
대를 잇는 특수부 …민주당 계열 정치인 사냥

총리 청문회, 신상털기 아닌 표적 수사 밝혀야

2008년 우검회 단체 사진. 출처 중앙일보 보도 갈무리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정치자금법 사건은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팀 소속 검사들이 중심이 된 '우검회(우직한 검사들의 모임)' 일당들의 '정치 표적 수사'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안대희 대검찰청 중수부장, 이인규 전 서울지검 형사9부장 등을 중심으로 한 대선자금 수사팀은 대한민국을 흔든 100억 원 대선자금 사건의 발단이 된 에스케이(SK)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 SK그룹을 압수수색하고 그룹 임원들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김 후보자의 정치 후원 관련 진술을 확보해 재판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이 사건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정치권 100억 원대 유입' 진술을 확보한 수사 검사(평검사) 중 한 명이 한동훈 검사(전 국민의힘 대표)였으며, 같은 수사팀 팀원으로 광주지검에서 파견된 윤석열 검사(전직 대통령) 등도 한솥밥을 먹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아울러 이들 특수부 소속 검사들은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그치지 않고, 2008~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김 후보자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해 피선거권까지 박탈했다.

 

대선자금 수사팀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 특수통 검사들은 김 후보자를 표적수사했을 뿐 아니라, 계보를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뒤에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대통령 등에 대한 수사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다.

 

2013년 SK그룹 횡령사건에 연루된 총수 형제 동반 구속 당시 SK그룹 본사의 모습. 2013.9.27. 연합뉴자료사진

 

2002년 정치자금 사건의 시작, SK그룹 수사

 

20일 권력감시 탐사보도그룹 <워치독>이 김 후보자의 2002년 정치자금법 사건의 흐름을 추적한 결과, 김 후보자의 정치 자금 사건은 22년 전인 지난 2003년 벌어진 SK그룹-JP모건간 'SK증권주식 이면거래' 의혹이 발단이 됐다.

 

당시 참여연대는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SK그룹 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고, 증권 분야를 다루는 특수부 역할을 했던 서울지검 형사9부가 이 사건을 맡게 됐다.

 

형사9부를 이끌었던 이인규 부장검사는 수석검사였던 이석환 검사, 초임과 다름없었던 한동훈 검사 등을 이끌고 2003년 2월 17일부터 SK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SK그룹의 비밀 장부를 확보했다. 이른바 '검찰 캐비닛'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수사는 곧바로 정치 자금 관련 사건으로 확대되지 않고 한동안 SK 분식회계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형사9부는 SK 분식회계 혐의를 포착한 뒤, 그해 3월 5일 손길승 SK그룹 회장을 소환해 자정까지 조사를 벌이는 등 주요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2003년 3월 11일 ​SK 1차 수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당시 한동훈​. 출처 중앙일보 보도 갈무리​​

 

SK 분식회계 수사가 SK 비자금 수사로

 

검찰의 수사기조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였다.

 

SK그룹 수사가 한창이던 당시, 해당 사건을 맡았던 이석환 검사는 '검사와의 대화'에서 참석해 노 대통령에게 "외부인으로부터 외압이 있다"고 주장했고, 노 대통령은 젊은 평검사였던 이 검사에게 "소신껏 판단하면 될 것"이라며 "원칙대로 하면 된다"고 답했다.

 

2003년 3월 9일 '검사와의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석환 검사의 모습. 국가기록사진

 

이 검사가 언급한 외압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대화 맥락에서 파악할 순 없지만, 노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이틀 뒤인 3월 11일 SK 수사팀은 최태원 회장과 김창근 구조조정추진본부장 등 2명을 구속 기소하고, 손길승 회장 등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SK그룹 임원 등 사건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고도 수사는 계속됐다.

검찰은 그해 4월 10일 서울지검 형사9부를 '특수부'에 편입하고 극비리에 정치권 수사를 진행했다. SK그룹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비밀 장부를 토대로 정치권 비자금 수사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 절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겨레 21>은 SK그룹 수사와 관련, "검찰은 최(태원) 회장을 구속기소하는 것과는 별도로 4월에도 SK 핵심 관계자들을 계속 불러 조사했다. 극비리에 수사가 계속되자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정치권 수사자료를 축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03.11.4. 대선자금 수사팀 보도. YTN 보도 화면 갈무리

 

대검 중수부, SK 비자금 수사 본격화

안대희·이인규·윤석열·한동훈 등 참여

 

그 뒤 SK그룹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것은 2003년 7~8월이었다. 검찰은 그해 7월 SK 관계자들의 출국을 금지하고, 8월 본격적으로 SK 비자금 정치권 유입 수사를 했다.

 

2003년 초만 해도 'SK증권주식 이면거래 의혹 사건'이었던 SK그룹 사건은 'SK 분식회계 사건'로 바뀌었다가, 그해 여름 'SK 비자금 수사'로 확대됐고, 사건 담당도 관할인 서울지검 특수부가 아닌 검찰 특수부를 아우르는 대검 중수부로 바뀌었다.

 

초기 SK 비자금 수사팀은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검사장급)과 문효남 중수부 수사기획관(차장검사급), 남기춘 중수1과장, 유재한 중수2과장(이상 부장검사급) 등이 지휘부를 구성했고, 그 아래 윤석열·조재연·정준길·박찬호·이명순·김헌범·양부남·박진만·이병석 검사 등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검사들이 파견돼 수사 실무를 맡았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팀 MBC 보도 화면 갈무리

 

이후 SK 비자금 수사팀은 최태원 회장을 구속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특수통' 이인규 전 서울지검 형사9부장과 그의 수족이었던 한동훈 검사, 서울지검 금융조사부 유일준·김옥민 검사 등을 추가로 파견 받으면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으로 대폭 확대했다.

 

대선자금 수사팀은 단일 사건 수사팀 규모로는 당시 전두환 신군부를 수사한 12·12 특수본 이후 역대 최대였다. 전국에서 파견받은 검사와 수사관만 100명에 이르렀다.

 

정치권 100억대 제공 진술과 한동훈

 

2003년 8월부터 본격화한 SK 비자금 사건이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확대된 결정적 계기는 대선자금 수사팀이 확보한 'SK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100억 원 전달' 진술이었다.

 

대검 중수부는 그해 10월 손길승 SK그룹 회장과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 관계자들을 소환해 밤샘조사까지 벌였다. 그 결과,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100억 원을 SK로부터 현금 수수하고,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양도성예금(CD) 11억원을 건네 받았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100억 원대의 비자금이 유입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은 수사팀으로서는 여야 정치인들의 목덜미를 움켜쥘 수 있는 큰 성과였다.

다만 검찰이 이같은 진술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상당한 회유와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인규 전 서울지검 형사9부장은 지난 2023년 낸 회고록인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에서 자신이 어떻게 수사했는지를 상세하게 공개하며, SK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하던 2003년 3월 최태원 회장에게 "거절하지 못할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수사팀은 구속돼있던 최 회장을 불러 "계속 수사하면 경영권을 잃을 수 있지 않느냐"며 "수사를 확대하지 않을테니 정치권에 제공한 정치 자금 내역을 밝힐 수 있겠냐"고 했고, 이에 최 회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수사팀은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을 통해 '결정적 진술'을 받게 된다.

 

이인규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조갑제닷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당시 수사팀 막내로,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 등으로부터 진술을 받아내는데 일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의 과거 수사 과정을 다룬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SK의 한나라당 100억 제공' 진술은 이인규 전 형사9부장과 한동훈 검사가 합작해서 받아냈으며, 당시 막내였던 한 검사는 김창근 본부장의 진술을 용산 전자상가에서 구매한 디지털 녹음기로 녹음해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정치 검찰들의 압박과 2억 원 후원금

 

아울러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은 손길승 SK그룹 회장과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을 회유하고 압박하는 과정에서 김민석 총리 후보자의 정치자금 후원과 관련한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워치독>이 입수한 김 후보자의 2002년 정치자금법 사건 1심 판결문을 분석해보면, 사건의 핵심은 모두 손길승 회장과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의 진술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2억 원의 정치 자금을 건넨 사람이 손길승 회장의 지시를 받은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이었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2002년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H그룹 = SK그룹, I회장 = 손길승 회장, 구조조정본부장 J=김창근. 2025.6.20.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김 후보자도 자신의 저서 <3승>에서 담당 검사로부터 들은 손 회장의 진술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김 후보자의 저서에 따르면 당시 수사팀은 손길승 회장을 불러 "김민석이 건을 얘기하지 않으면 놔주지 않겠다"고 했고, 손 회장은 한참 고민하더니 "이건 아닌데…(김민석)본인이 (돈을)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중앙당에서 요청한 건데…젊은 사람 앞길을 막는 거 아닌가"하며 주저하다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대선자금을 수사하던 검찰이 김 후보자를 정치자금 사건으로 엮기 위해 적극적으로 압박한 정황으로 보인다.

 

이는 회고록과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이인규 전 서울지검 형사9부장과 한동훈 당시 검사가 진술을 받은 과정 등과도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SK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과정에서 검찰은 모종의 이유로 김 후보자를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수사 검사들의 압박 수위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검사는 나중에 주변인들에게 특수부였던 서울지검 형사9부 당시를 이야기할 때, 반농담조로 "상당히 가학적 수사를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2025년 2월 18일자, 중앙일보 보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안대희(가운데) 중수부장과 문효남(오른쪽) 수사기획관, 이인규 원주지청장. 2004.3.9.

 

영수증 처리하지 않은 이유로 집행유예

 

당시 정치 자금에 대한 관행을 보더라도, 검찰이 김 후보자의 정치 자금 사건에 대해 이미 방향을 정해놓고 수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김 후보자가 서울시장에 출마한 2002년은 '삼김(三金,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정치가 막을 내리던 무렵이자, 아직 정치자금법을 개정하기 전으로, 지금과는 달리 중앙당 차원에서 공공연하게 기업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요청하고 관리했다.

 

김 후보자의 경우도 당시 본인이 아닌 민주당 중앙당 간부들이 SK에 서울시장 선거를 목적으로 지원 요청했다. 김창근 SK 구조조정본부장이 "위에서 얘기해서 왔다"며 김 후보자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사실에서도 이같은 정황은 확인된다.

 

김 후보자도 당시 불법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만큼 SK로부터 받은 2억 원의 수입과 사용을 선관위에 보고했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팀은 2004년 5월 김 후보자가 SK로부터 2억 원을 받았다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서는 김 후보자 본인이 정치 자금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그러나 해당 자금을 영수증 처리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고, 법원은 "SK그룹이 피고인을 돕기 위한 것이므로 피고인에게 궁극적으로 귀속시킬 목적으로 교부한 것이 인정된다"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추징금 2억원)을 선고했다.

 

수사팀은 2004년 5월 김 후보자 등을 기소하면서 약 9개월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수사팀은 SK그룹뿐 아니라 삼성, LG, 롯데 등 주요 재벌 기업과 여야 정치권 인사들을 수사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여야 정치인들을 구속하거나 재판에 넘겼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이었던 안희정 씨와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도 대선자금 수사 당시 구속됐으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도 재판에 넘겨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는 모습. 연합

 

2008년 김민석 사건과 박연차 게이트

 

김 후보자의 2008년 정치자금 사건 역시 2002년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표적 수사'한 정황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이 시기에 벌어진 사건을 대검 중수부를 중심으로 다시 바라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김민석 수사가 함께 진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와 김 후보자에 대한 수사가 함께 진행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김 후보자에 대한 정치자금법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시기는 이명박(MB) 정권이던 2008년 9~12월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검사는 윤석열 변호인단에 속한 윤갑근 변호사였으며, 윤갑근 부장검사가 이끈 특수2부는 2008년 9월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김 후보자를 출국금지하고, 같은 해 10월 26일 소환하며 본격적으로 수사했다.

 

김 후보자는 이후 검찰의 표적 수사에 반발해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내에서 농성을 하며 검찰의 구속 시도에 저항했지만 법원은 11월 24일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그해 12월 12일 김 후보자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지인 3명에게서 7억 2000만 원의 정치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008년 11월 12일 검찰의 정치자금 구속 시도에 저항하며 민주당사 내에서 농성하는 김민석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의 모습. 연합 자료사진
 

다만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진행되던 시기와 겹친다.

 

국세청은 김 후보자의 정치자금 사건 수사가 이뤄졌던 그해 7월 30일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하고, 같은 해 9월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게이트의 초기 사건인 세종증권 매각비리와 관련해 내사에 착수했다.

 

윤갑근 부장검사의 특수2부는 이에 맞춰 11월 박연차 회장이 세종증권 매각비리에서 얻은 양도차익으로 농협 자회사(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했다는 의혹을 수사했고, 사건 자료들을 대검 중수부에 넘겼다.

 

이후 검찰은 12월 4일 세종증권 인수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구속한 데 이어, 김민석 후보자가 정치자금법으로 구속기소됐던 날인 12월 12일 박연차 회장을 세금 포탈 및 농협 자회사 휴켐스 인수 입찰 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단인 윤갑근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3.13. 연합
 

당시 김 후보자의 정치자금 사건과 박연차 회장의 세금 포탈 사건 등을 수사했던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대검 중수부(부장 박용석)의 컨트롤을 받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같은 날에 김민석 구속기소와 박연차 구속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김 후보자는 이듬해인 3월 1심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금 7억2000만원을 선고 받았고(나중에 2010년 대법원에서 벌금 600만원, 추징금 7억2000여 만원으로 확정, 피선거권 5년간 박탈), 김 후보자가 선고를 받았던 3월을 기점으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가족들을 수사하며 '죽음의 굿판'을 벌였다.

그 결과는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2003년 SK 수사팀 → 2009년 노무현 수사팀으로

 

2009년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수사를 한 수사팀 역시, 김 후보자를 수사했던 2003년 SK그룹 및 대선자금 수사팀의 핵심 인물들이 주도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박용석 대검 중수부장은 박연차 게이트 초기 수사를 한 뒤, 2009년 1월 대선자금 수사팀의 핵심 인물이자 SK그룹 수사 당시 최태원 회장을 구속한 장본인인 이인규 중수부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노무현 수사팀을 이끌게 된 이인규 중수부장의 오른팔·왼팔 역할을 할 중수1과장에는 훗날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우병우 검사가 임명됐으며, 중수2과장에는 이인규와 함께 2003년 SK그룹을 압수수색하며 동고동락했던 이석환 검사가 임명됐다.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또 2003년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호흡을 맞췄던 조재연 검사는 부부장검사로 노무현 수사팀에 합류해 실무 관리를 했으며, 그 밖에도 부산지검 이선봉, 수원지금 주형, 대구지검 김형욱 검사 등이 검찰 내 '젊은 피'로 대거 투입됐다.

이인규 중수부장에게 자리를 넘겨준 박용석 부장은 부산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겨 부산에서 2009년 4월 권양숙 여사를 소환하는 등 노 전 대통령 가족 수사를 지휘했다.

 

박연차 게이트 단초 제공한 한동훈

 

우검회로 귀결되는 대선자금 수사팀 멤버들은 수사팀 안팎에서, 또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전후로, 노 전 대통령으로 향하는 수사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다.

 

노무현 정권 말이었던 2007년 부산지검 검사였던 한 전 대표는 당시 뇌물수수 혐의를 받던 전군표 국세청장을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전군표 국세청장이 물러남에 따라 후임으로 한상률 국세청장이 임명돼 MB정권까지 연임했으며, 한 청장은 박연차 게이트의 시작점이 되는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을 주도했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이 그림로비, 연임로비,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과정의 직권남용 등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2011.2.28. 연합
 

이후 그림 로비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었던 한 청장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노무현 수사팀을 꾸렸던 2009년 1월 사의를 표하고, 그해 3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의 출국으로 수사는 표류했고, 2011년 귀국하면서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2014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건은 종결됐다.

 

대를 잇는 특수통…이재명 대통령 수사까지

 

2003~2004년 SK비자금 및 대선자금 수사팀이었던 특수통 검사들은 한국 정치사와 검찰 역사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이전까지 '권력의 시녀'쯤으로 여겨졌던 검찰은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를 기점으로 사실상 정치화한다. 이른바 '검찰당'이 태동하던 시기다. 

 

그 시작점에서 표적 수사를 당한 김민석 총리 후보자는 그들의 '첫 작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멈추지 않았다. 정권 교체된 뒤인 2008~2009년에도 정치판 전면에 등장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수사를 진행했다. 이 시기 김 후보자 역시 또다시 특수통 검사들에게 철저하게 수사를 받고 피선거권까지 박탈 당했다.

 

이뿐 아니라 이들은 특수통 계보를 이어가며 한명숙 전 국무총리부터 이재명 대통령까지 주요 정치인들을 타깃으로 수사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2010년 3월 31일 오전 '5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 재판의 피고인 신문에 참석하기 위해 강금실 전 장관, 유시민 전 장관 등 참여정부 인사들과 함께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2010.3.31 연합
 

2008년 김 후보자의 정치자금 사건과 박연차 회장 세금포탈 사건 등을 수사했던 윤갑근 검사는 2011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근무하며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그 밑에서 일을 배운 엄희준 검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교사 의혹의 핵심 인물이다.

 

또 일찍부터 특수통으로 키워진 엄희준 검사는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한 대장동·백현동 의혹 사건에도 투입된다. 그리고 그의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3년 당시 대선자금 수사팀 막내였던 한동훈 검사는 법무부 장관이 돼 제1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구속 시도를 주도했다. 그 법무부 장관을 임명한 대통령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팀 파견검사였던 윤석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또다른 '정치 보복 수사'인 쌍방울 대북송금에는 대선자금 수사팀 파견검사였던 조재연 변호사가 등장한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회유·압박한 전관 변호사로 지목받고 있는 조 변호사는 지난해 6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옥상 가든 파티'에 참석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상용 검사 탄핵 청문회에서 수원지검장 출신인 조재연 변호사(가운데)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왼쪽)이 옥상 가든파티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이 공개됐다. 해당 영상은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공개했다. 2024.10.2. 시민언론 뉴탐사

 

노무현 수사팀에 파견됐던 이주형 검사는 2020년 라임 사태에 김봉연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회유·압박한 전관 변호사로 등장한다.

 

김 전 회장 증언에 따르면 이주형 변호사는 김 전 회장과 면회에서 "(서울)남부지검 라임사건 책임자와 얘기가 끝났다"며 "여당 정치인들과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을 잡아주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고 후 조사가 끝나고 보석으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20여 년 전 구속 기로에 놓여있던 손길승 SK회장에게 "김민석이 건을 얘기하지 않으면 놔주지 않겠다"며 회유하고 압박했던 그들의 '정치인 사냥' 수법이 계속해서 대물림되는 모습이다.

 

신상털기 아닌 정치 검찰의 표적 수사 밝혀야

 

그러나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은 검찰의 표적 수사라는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가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떠오르자 야당과 언론은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과 2008년에 벌어진 사건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재현하고 있다.

 

실상은 표적 수사였던 정치자금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오로지 '신상털기'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다. 그가 두 차례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유죄를 받았음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아 지난해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는 사실은 외면받고 있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 
 

김 후보자의 정치자금 사건 본질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2003~2004년 당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손길승 SK그룹 회장 등을 오는 24~25일에 열리는 청문회에 증인으로 반드시 소환할 필요가 있다. <워치독> 취재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손 회장의 증인 채택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야는 이날 증인·참고인 채택 여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날은 증인·참고인 출석요구서를 청문회 5일 전까지 발송해야 한다는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여야가 협상을 마감할 마지막 날이었다. 여야가 증인·참고인 채택에 이르지 못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힐 이들의 출석 여부 역시 불투명해졌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김 후보자를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앞서 국민의힘 인사청문회특별위원들은 "김 후보자의 공식 수입은 5년간 세비 5억 1000만 원이 전부"라며 "지출은 확인된 것만 최소 13억 원으로 5년간 공식적으로 번 돈보다 8억 원을 더 쓴 점을 국민 앞에 성실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부의금 또는 강연료 등 수입이 있었다"며, 인사청문회에서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 허재현 · 김성진 · 김시몬 · 조하준 워치독 기자 watchdog@mindl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