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강제동원' 발언에 시민단체들 반발, 입장문

 "삼전도 굴욕에 버금...을사오적의 한일합방도 지켜야?"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6.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3자 변제 방안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발언을 하자 피해자지원단체가 반발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5일 입장문을 내고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한일관계 기조는 과거 태도와는 사뭇 대비된다"며 지난 2023년 3월 6일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 발표 당시 이 대통령 발언을 소개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는데, 정부 방침 발표 직후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짓밟는 2차 가해이자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폭거이다. 이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냐"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빛의 혁명으로 출범한 새 정부는 대표적인 굴욕 외교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제3자 변제안을 고쳐야 한다"며 "을사오적의 한일합방도 지켜져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693개 시민사회단체도 이날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제를 포함한 반인도적 범죄가 '정치적 합의'로 지워지거나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도 입장문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라 굳게 믿었던 국민주권 정부가 또다시 이전 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제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받아내는 게 역사 정의를 실현할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3자 변제' 방안은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배상 책임을 확정받은 일본 전범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재원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침 발표 뒤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물컵의 반을 먼저 채우면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고 했지만, 그 후 일본이 취한 것은 사실상 없다.

시민모임은 "올해가 한일수교 60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재명 대통령의 180도 입장 변화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며 "실용외교와 일본의 압력에 일방적으로 굴복한 제3자 변제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했다.

또한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라고 할 때는 언제이고, 스스로 그 입장을 "뒤엎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국익이며 실용외교인가, 이럴 거면 정권교체를 왜 하는가"라며 "이것이 지난 겨울 응원봉으로 나선 광장의 요구였는가"라고도 했다.

2023년 3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서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해 있다. ⓒ 이희훈
 

이 대통령은 취임 첫 날인 지난 4일 '지난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결 방안을 그대로 진행할 것인지'를 묻는 일본 기자의 말에 "국가 관계에는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신뢰에 문제가 있기에 그런 점을 일단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가 정책이라는 것은 개인적 신념이나 이런 것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관철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강조하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위성락 신임 국가안보실장도 앞서 지난달 22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은 잘못된 점도 있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개선한 것은 평가하고 있으며, 우리도 그동안 협력해 온 기본 틀은 계속해 나가려고 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과 관련해 "큰 틀에서는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 김형호 기자 >

 

역사정의 실현하라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김태중


일본 정부가 지난 달 '2025년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백서에서는 북한을 '일본 안보에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과 러시아 또한 위협 요인으로 지목하며 자국의 군사 대국화를 정당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일본과의 군사협력 등을 이유로 일제 강제동원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들이 봉합된 바 이재명 정부 취임 후 주요한 과제로 한일 과거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이 제시되었으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일본 외신의 질문에 대해 "국가 간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입장을 밝혀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제 3자변제 안을 유지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광복 80년을 맞아 민족통일애국청년회(이하 민애청)은 자주통일실천단을 운영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첫번째로 발언에 나선 민애청 김태중 사무국장은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헌법상 공격이 금지되어 있지만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 선제공격 능력과 미사일 강국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또 이를 위해 일본의 국방비가 약 81조원으로 전년 대비 10% 상승했고 2027년까지 GDP 대비 2%로 증액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2022년 국가보안전보장 전략을 개정해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미국산 토마호크 장거리 미사일을 400여 발 등을 포함한 대규모 무기 도입도 추진 중이라며 규탄했다.

역사정의 실현하라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김태중
 

박정원 정책국장은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문제임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을 가까운 이웃이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파트너라고 밝히며 미국과의 특수한 동맹관계 안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했다"며 한일 군사협력을 비판했다. 또 "이재명 정부가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동북아의 안보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도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고 한미일 군사협력의 중단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정문식 회장은 "그동안 미국은 한일 과거사 문제를 한미일 군사협력의 걸림돌로 여겨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봉합과 양국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며 "이전 정권들도 미국 눈치를 보며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유지하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3자 변제로 봉합하는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굴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미일 군사협력을 지속하겠다고 하며 이른바 '국가 간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한 점을 지적하며 과거 정부처럼 한일 과거사 문제를 외면하고 일본의 전쟁 범죄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재명 정부가 하루 속히 한미일 군사협력을 중단하고 2015 위안부합의 파기와 일제 강제동원 제3자변안을 폐기를 시작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며 회견을 마무리 했다. 한 편 민애청은 광복 80년을 맞아 자주통일실천단 활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 김태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