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패권 핵심인 에너지 지정학 포기 못 해"
"마두로, 마약 밀매업자"란 주장은 '개입 구실'

마두로 "미국과 극우 동맹 제국주의 위협 대응"

트럼프, 제재·관세로 국제석유 시장 장악 시도
"미국 압박에 탈달러 등 대안 모색 가속화"

 

"베네수엘라 주변에서 진행되는 미국 해군의 기동은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낸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를 향해선 워싱턴이 여전히 강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세계 (석유) 시장을 향해선 서반구에 대한 미국의 패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인도 필라니 비를라 공대의 칼랴니 욜라 선임연구원은 '워싱턴의 석유 체스판: 베네수엘라는 미국 지정학에 왜 중요한가'란 30일 자 <모던디플로머시> 기고에서 "베네수엘라 땅속의 미개발 매장량은 미래에 중동 공급망이 교란될 경우를 대비한 잠재적 보험으로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주변 해역에 이지스함 3척 등 미 해군 함정들을 배치하면서 내건 '마약 밀매 차단'은 그저 '하나의 구실'로 봤다.

 

미국 해군 타이콘데로가급 유도 미사일 순양함이 29일 파나마시티의 파나마 운하 입구 인근의 프리게이트 캡틴 노엘 안토니우 로드리게스 후스타비노 해군 기지에 정박하고 있다. 2025.08. 29 [로이터=연합]

 

트럼프, 베네수엘라 해역 미 해군 배치
"마두로, 세계 최대의 마약 밀매업자"

 

해군 함정 배치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차근차근 빌드업을 해왔다. 로이터, AFP와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 2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베네수엘라 기반의 트렌데아라과 등 마약 밀매 카르텔들을 '외국 테러 단체'로 지정했다. 급기야 8월 7일에는 팸 본디 법무장관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세계 최대 마약 밀매업자 중 한 명"이라고 매도하고, 그의 체포 관련 정보 보상액을 기존 2500만 달러(348억 원 상당)에서 5000만 달러로 2배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미 해군은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 지시에 따라, 베네수엘라 해역에 이지스 구축함 3척을 배치한 데 이어, 미사일 순양함 등을 추가로 배치해 총 8척으로 늘어나게 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작전엔 미군 장병 4000명이 투입되며, 앞으로 정보 수집·감시뿐 아니라 표적 공격을 위한 '발사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한 P-8 해상초계기와 잠수함 등이 작전 수행에 함께 편성될 가능성도 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반미 집회가 벌어지는 가운데 29일 한 시민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사진을 바라보며 왼쪽)과 고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뮤럴 옆을 지나고 있다. 2025. 08. 29 [EPA=연합]

 

마두로, 정규군·민병대 동원해 국경 강화
"미국과 극우 동맹 제국주의 위협 대응"

 

이에 맞서 마두로 대통령은 트럼프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정규군과 민병대를 총동원해 국경 주변에서 보안을 강화할 것을 명령했고 그에 따라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을 인용해 보도했다. 마두로는 26일 텔레그램을 통해 "미국과 그 극우 동맹 세력의 제국주의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방어 체계를 24시간 가동하고 있다"면서 "휴식이란 없으며, 누구도 베네수엘라 영토를 건드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고에서 욜라 선임연구원은 "올해 초 미국 군함들이 베네수엘라 해역에 조금씩 접근했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와 남중국해의 더 큰 위기들에 가려 전 세계적으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 조용하게 진행된 군사적 증강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에너지와 지정학의 교차로에 선 정권들을 표적으로 삼는 워싱턴의 오래된 패턴 일부다"라고 풀이했다.

 

욜라는 "왜 미국은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에 지속해서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인도 같은 부상하는 석유 소비국과도 충돌하는가? 답은 옛 에너지 안보, 제재의 논리, 그리고 21세기판 관세 전쟁의 결합에 있다"고 자문자답했다. 특히 확인된 것으론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는 오랜 경제 쇠퇴에도 여전히 글로벌 체스판에서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29일 시민들이 미 제국주의에 맞서자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호소에 따라 민병대 입대에 나서고 있다.  2025. 08. 29 [AFP=연합]

 

미, 석유 생산국엔 '제재' 소비국엔 '관세'
"베, 에너지 풍부하나 정치 정당성 취약"

 

욜라는 "초기 냉전에서 걸프전까지, 미국의 힘은 석유와 엮여 있었다...석유의 흐름을 통제하는 자가 세계 경제의 동맥을 통제했다"며 "베네수엘라는 워싱턴의 눈엔 이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에너지는 풍부하나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국가 범주에 속한다. 이론적으론 이들 국가가 석유 공급을 무기화하여 미국 주도의 질서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가스회사, 이란의 국영석유회사, 러시아의 거대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트럼프의 제재는 징벌적 성격만 있는 게 아니다. 그는 "경쟁국들의 재정 생명줄을 조이는 동시에 세계 시장엔 미국 셰일 석유의 경쟁력 제고를 겨냥한 경제적 포위의 도구였다"며 "중국, 나아가 인도와의 '관세 전쟁'도 같은 패턴에 속한다. 그건 대체 에너지 파트너십을 약화시키고 무역 흐름을 친미 네트워크로 되돌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욜라가 보기에, 베네수엘라는 단순한 석유 국가가 아니라, 상징적 전쟁터다. 마두로의 '생존'은 미국엔 러시아, 중국의 보호를 받는다면 마두로 정권이 서방 압력을 견딜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베네수엘라 지원은 러시아와 중국엔 비싸지 않지만, 상징적으론 매우 소중하다. 이에 욜라는 "중남미에서 미국의 패권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이 베네수엘라 해역에 군함 배치를 발표했을 때 중국은 "주권 침해"라고 규탄한 뒤 공개적으로 마두로 지지를 재확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중앙),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 10. 23 [출처. 게티이미지]

 

트럼프, 제재·관세로 국제석유 시장 장악 시도
"미국 압박에 탈달러 등 대안 모색 가속화"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제재와 관세 두 무기를 함께 구사하는 트럼프의 의도와 관련해 욜라의 설명은 이렇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글로벌 석유 공급자들의 경기장을 좁힌다. 동시에 인도와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대형 소비자들의 협상력을 억제한다. 욜라는 "그 효과는 미국이 셰일을 통한 에너지 생산자로서는 물론, 금융 제재와 해상 지배를 통한 에너지 교역의 게이트 키퍼(문지기) 역할도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이 전략엔 위험이 따른다. 제재에 맞서 러·중이 루블과 위안화로 석유 거래를 확대하면서 탈달러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값싼 러시아 원유와 미국 압력 사이에 낀 인도는 저울질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제적 고립에도, 아시아와 물물교환식 거래를 모색 중이다. 과거에 미국의 힘이 됐던 바로 그 압력이 이제는 그 대안들을 배양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 압박에 그는 1953년 이란 쿠데타, 1990년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제재, 쿠바 해상 봉쇄 등을 역사적 사례로 들며 "석유가 풍부한 적대국들에 대한 워싱턴의 접근법은 새로운 게 아니라, 재활용된 대본"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담은 현수막이 워싱턴D.C. 미 의회 의사당 인근의노동부 청사에 걸려 있다. 2025. 08. 29 [AP=연합]

 

미국의 베네수엘라 해상 포위는 무슨 뜻?
"패권 핵심인 에너지 지정학 포기 못 한다"

 

욜라는 "제재는 정권을 무너뜨리기보다 굳히는 경향이 있다. 관세는 굴복보다는 보복을 촉발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두로의 베네수엘라는 "붕괴 직전의 국가라기보다는, 영원히 붕괴를 견디는 국가처럼 보인다. 회복하기엔 너무 약하고 죽기엔 너무 완강하다"라고 논평했다. 그는 "제재는 도덕적 도구로 포장되지만, 현실에선 국가경영의 경제적 수단이다. 관세는 불공정 무역 교정 조치로 정당화되지만, 더 중요한 기능은 전략적 지배의 확보"라고 했다.

 

욜라는 "베네수엘라 해상 포위는 공개 충돌로 비화하진 않겠지만, 워싱턴은 글로벌 패권의 핵심인 에너지 지정학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더 광범위한 패턴을 드러낸다"며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를 표적으로 삼고, 인도, 중국과는 관세로 싸움으로써 미국은 석유와 무역의 중심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욜라는 "문제는 다극화로 더 다가가는 세계에서 이 전략의 지속 가능성 여부다. 제재의 피로도는 커가고, 관세 전쟁으로 동맹들은 긴장하고, 새 금융 인프라들은 서서히 달러 독점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강대국들이 도를 지나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미국은 베네수엘라는 궁지로 몰아넣을 '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힘의 한계를 비추는 거울이란 교훈을 고통스럽게 배우게 될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경고했다.  <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