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꺾은 ‘극우’ 다카이치…정권 잡아도 외교·경제 ‘초고난도 시험대’


“나도 ‘워라밸’ 버릴테니 말처럼 일해달라” 당부
좁은 확장성 한계…총리 취임해도 국정 어려울 듯

 

 
 
4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출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당선자(가운데 파란옷)가 일어나 인사하고 있다. 교도 연합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겠습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을 이끌 다카이치 사나에 새 총재는 4일 당선을 확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모든 세대가 전력을 기울여 힘쓰지 않으면 (당을) 재건할 수 없다”며 “제 스스로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을 버릴 테니 모두 마차를 끄는 말처럼 열심히 일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민당 70년 역사에 첫 여성 총재가 됐다는 점을 인식한 듯 “새로운 시대를 새겼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도 덧붙였다.

 

다카이치 새 총재가 향후 자민당을 이끌게 되면서 한·일 관계에 끼칠 영향에도 촉각이 쏠린다. 그는 당내 강경 보수파를 지지 기반으로 하며 우익 성향의 태도로 우려를 빚어왔다. 태평양 전쟁 에이(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에 기존 차관급 대산 장관급 인사 파견, 과거사 부정 등 발언으로 주변국을 자극해왔다. 자민당 총재 선거 결선에 오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새 총재 모두 현직 각료 신분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온 보수파이지만, 다카이치 새 총재의 우파 성향이 더욱 짙다.

 

다만, 한-일 관계 전문가인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 교수(정치학 박사)는 지난달 한겨레와의 자민당 총재 선거 관련 인터뷰에서 “일본 정치는 총리 한 사람만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며 자민당 내부 정치가 중요하다”며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일본 정부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던 만큼 한-일 관계도 이번 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히 관계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민당과 일본 정부는 오는 15일께 임시국회를 열어 차기 총리를 선출한다는 계획이다. 자민당이 소수 여당이지만 야당도 분열되어 있어 이번에도 자민당에서 총리를 배출할 가능성이 크다. 다카이치 새 총재는 총리에 오르면 빠르게 국제무대에 신고식을 치를 전망이다. 당장 이달말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미·일 정상회담이 예정됐다. 곧바로 한국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에도 참석한다.

 

다카이치 새 총재는 이번 선거 시작 전부터 줄곧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함께 ‘빅 2’로 꼽혀왔다. 하지만 정작 당선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회의적인 의견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 투·개표일을 앞두고는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에게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하면서 결선 진출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한 때 나오기도 했다. 애초 당내 강경 보수층에 지지기반이 집중돼 확장성을 보이지 못한 데다, 우익 성향이 짙어 집권당 수장으로는 야당과 협력이나 한·중·러 등 외교 관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2위로 통과한 뒤, 약점으로 거론됐던 국회의원 지지표를 결선에서 대거 확보하며 당선과 자민당 내 지지세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다카이치 새 총재 앞에 놓인 길은 쉽지 않다. 실제 그는 이날 당선 뒤 “지금 기쁘다기보다는 지금부터가 진짜 큰일(이라는 생각)”이라며 “함께 힘을 합쳐 해결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수여당으로 정국 운영에 큰 어려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연립여당을 꾸린 공명당 외에 또 다른 야당과 연립들 확대가 논의되는데 여당으로서 입지를 더 좁힐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다카이치 새 총재가 총리에 오를 경우, 소수여당으로선 정권 운영을 안정시키기 위해 야당에 협력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라며 “당분간 물가 상승 대책에 우선 대응하고, 임시국회에서는 야당의 협력을 얻어 추가경정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중요한 목표”라고 풀이했다.

 

일본 안팎을 둘러싼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내적으로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1년 만에 끌어내린 주요 원인인 고물가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의 경제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이날 다카이치 새 총재 당선 소식을 전하며 “그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서 ‘아베노믹스를 지지해왔다”며 “가장 충격은 다카이치 새 총재가 펼치는 경제정책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시바 시게루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상호관세 문제를 정리했지만, 향후 나라 곳간을 털어 5500억달러(774조원) 규모 대미 투자를 해야 하는 과제 등이 고스란히 남은 상황이다. 또 일본 정치권에서 ‘절대 강자’ 자리를 유지해오던 자민당의 추락도 막아야 한다. 자민당은 1990년대 초반 한때 당원 수가 500만명을 넘었지만, 현재 90만명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당 인기 하락과 함께 지지층이 줄어드는 결과로 선거 때마다 득표율이 낮아지면서, 집권당 자리를 위협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도쿄/홍석재 특파원 >

 

‘극우’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첫 여성 총재 당선…차기 총리 유력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 4일 일본 자민당 당대표 선거 결선 진출 뒤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상이 결선 투표 끝에 극적으로 승리했다. 극우 성향으로 꼽히는 그는 일본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아이사와 이치로 자민당 총재 선거관리위원장은 4일 치러진 당 총재 선거 결선투표에서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전체 유효 341표(당 소속 국회의원 294표, 당원·당우 47표) 가운데 절반을 넘는 185표(국회의원 149표, 당원·당우 36표)를 얻어 당선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결선에서 경쟁한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56표(국회의원 145표, 당원당우 11표)에 그쳐 지난해 총재 선거에 이어 다시 쓴잔을 마셨다. 1955년 자민당 결성 이래 여성 총재는 처음이다. 국회 총리 선거에서 차기 총리로 확정되면 일본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오른다.

 

앞서 오후 1시께 시작된 1차 투표에서는 전체 590표(당 소속 국회의원 295표, 당원·당우 295표) 가운데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183표(국회의원표 64표, 당원·당우 119표)를 확보하며 당선 기대를 높였다. 선거 기간 주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렸던 고이즈미 농림상은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많은 80표를 얻었지만, 당원·당우 쪽에서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에 35표를 뒤지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뒤를 이어 하야시 관방장관 72표(국회의원 72표, 당원·당우 62표),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 59표(국회의원 44표, 당원·당우 15표),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이 49표(34표, 15표)로 뒤를 이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1차 투표는 소속 국회의원(현재 295명)에게 각 1표씩, 전국 91만여명 당원·당우 투표를 국회의원수와 같은 295표로 환산해 모두 590표를 득표자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다. 반면 결선 투표는 의원 295명이 새로 투표를 하되, 당원·당우표는 이미 투표된 것을 전국 47곳 광역지방자치단체(도도부현)별로 분류해 결선 투표자 가운데 다득표자가 해당 지역 표를 가져가는 방식(전체 47표)으로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후보가 나오지 않아 치러진 결선에선 다카이치 당선자가 국회의원 쪽 지지를 추가하며 승리를 확정했다. 1차 선거에서 국회의원표가 64표에 불과했지만 결선에서 무려 149표를 얻었고, 당원·당우표(전체 47표) 36표를 더해 상대를 압도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애초 압도적 우위를 점한 것으로 알려진 국회의원 표에서도 일부 뒤진 데다, 당원·당우표에서 크게 뒤지면서 역전에 실패했다.                < 도쿄/홍석재 특파원 >

 

대통령실, 다카이치 총재 당선에 “일본 새 내각과도 긴밀히 소통·협력”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 4일 일본 자민당 당대표 선거 결선 진출 뒤 연설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
 

대통령실은 4일 일본 자민당 제29대 총재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당선된 것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일본의 새 내각과도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한일 관계의 긍정적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날 “10월 중순에 일본에서 새 내각이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일 양국은 격변하는 지정학적 환경과 무역 질서 속에서 유사한 입장을 가진 이웃이자 글로벌 협력 파트너인 만큼 앞으로도 미래 지향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또한 한일 간 셔틀 외교가 완전히 복원된 만큼 새 내각이 출범하는 대로 신임 총리와도 활발하게 교류를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전 담당상이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을 누르고 총재에 당선됐다.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일본 내에서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함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고, 독도 문제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치러진 당 총재 선거 결선투표에서 다카이치는 전체 유효 341표(당 소속 국회의원 294표, 당원·당우 47표) 가운데 절반을 넘는 185표(국회의원 149표, 당원·당우 36표)를 얻어 당선을 확정했다.                                                < 이정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