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마지막 퍼즐'…법원행정처 폐지 추진

인사·예산 등 독점하는 제왕적 대법원장 혁파
사법행정에 민주 통제 도입…재판 독립 강화
이탄희 발의했던 법원조직법 개정안 바탕으로
비법관 다수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전현희 "가칭 '사법행정 정상화법' 연내 발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TF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1.3. 연합
 

여당이 사법개혁의 '마지막 퍼즐'로 불리는 '법원행정처 폐지'를 추진한다.

 

소수 엘리트 법관이 모여 법관 인사 관리까지 손에 쥐는 현행 법원행정처 체제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 핵심이자, 폐쇄적이고 수직적으로 사법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관련 기사 : 법원행정처는 폐지되어야 한다)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을 뒷받침하는 만큼 개혁에 대한 요구가 오랫동안 있었지만, 번번이 불발됐다.

 

여당은 기존 5대 사법개혁 과제(☞관련 기사 : 조희대 사법쿠데타 진압할 개혁안 닻 올렸다)와 함께 법원행정처 폐지를 추진함으로써, 사법행정에도 민주적 통제 장치를 도입하고 법관의 독립적인 재판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예산 권한 분산"

 

더불민주당은 3일 사법행정 개혁 논의를 주도할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정청래 당 대표는 TF 출범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및 재판 거래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벌어진 사법부의 대통령 선거 개입 등을 비판한 뒤, "공적 권한이 견제 없이 집중될 때 부패가 발생하고, 자정 능력도 없다"면서 "사법부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사법부 독립은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내란의 밤 때 지금보다 더 크게 외쳤어야 한다. 계엄이 성공하면 계엄사령부 발밑에 사법부가 들어가게 되고 사법부 독립은커녕 사법부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위기 상황에서 대법원은 그때 사법부 독립을 왜 외치지 않았느냐"며 "그러니 사법부가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3일 국회 법사위 대법원 국정 감사장에서 눈을 감은 채 입을 꾹 닫고 있다. 연합
 

정 대표는 "이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 해법은 구조 개혁"이라며 "특정 개인의 도덕성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제도적 결함을 해결할 수 없다. 제도의 설계가 곧 공정성을 담보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행 법원행정처 체제는 대법원장의 절대권력 아래,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운영 방식으로 판사들의 독립적 판단을 위축시키고 재판에 대한 외부 영향 가능성을 키워 왔다"며 "판사 한 명 한 명은 헌법 기관이고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너무 수직화돼 있고, 폐쇄적"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그런 점에서 이탄희 전 의원이 제기한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를 심도 있게 재검토하겠다"며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예산 권한을 분산하고 외부 참여자를 포함해 법원 운영에 대한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사법 독립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폐지…사법행정위원회 설치

 

정 대표가 언급한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는 이탄희 전 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였던 지난 2020년 7월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담긴 주요 내용이다.

 

법안 발의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및 재판 거래 의혹이 3년이 지났지만,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은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 개혁 법안들은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 전 의원은 제왕적 대법원장, 법관의 관료화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비(非)법관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국회에 설치된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추천위원회를 통해 사법행정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사를 사법행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함께 담겼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1.21. 연합
 

이러한 입법은 당시 대법원의 공감 속에서 추진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 9월 "임기 중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하겠다"고 밝혔고, 그에 앞서 같은 해 7월 대법원 산하 사법발전위원회도 "주요 사법정책 수립 및 집행에 국민과 법관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구성된 선진국형 합의제 사법행정 의사결정기구를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20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관련 법안이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이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입법이 더딘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9년 7월 규칙 개정을 통해 사법행정 과정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출범시켰지만, 이마저도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폐지를 검토하는 등 유명무실하게 됐다. 

 

이번에 법원행정처 폐지를 골자로 하는 입법이 추진된다면,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고 있음에도 여전히 제왕적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0일 발표한 사법개혁안을 통해서도 대법관 추천위원회에 대한 대법원장의 권한을 줄이겠다고 한 바 있다. 여기에 판사가 수사·기소·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유죄로 만들거나 그 반대 목적으로 법령을 왜곡할 경우 처벌하는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까지 도입된다면 사법부에 대한 견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3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TF 출범식 후 열린 첫 회의에서 전현희 TF 단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5.11.3. 연합
 

"사법행정 정상화는 개혁 완성하는 마무리 투수"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 TF 단장을 맡은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출범식에서 "재판, 인사, 예산, 행정 등 모든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는 민주적 통제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재판의 독립은 외부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진짜 사법 독립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이번에야말로 대법원장이 본연의 업무인 대법원의 재판장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할 때"라면서 "사법행정 정상화 TF를 국민의 명령인 사법개혁을 완성하는 마무리 투수로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전 의원은 거듭 "대법원장을 최정점으로 한 사법 피라미드를 해체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본질이다. 사법행정과 예산, 그리고 판사 3584명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를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사법행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충분한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했다.

 

전 의원은 속도감 있는 개혁을 약속했다. 그는 "개혁은 정교하되 지체되어선 안 된다. 연내 발의를 목표로 오늘부터 가칭 '사법행정 정상화법' 논의에 착수하겠다"며 "사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진정한 사법 독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 김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