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어둠 뚫은 맘다니의 반격과 두 번의 기적

● WORLD 2025. 11. 7. 02:0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기존 정치문법이 무너진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
기득권 연합의 벽을 뚫고 일어난 첫 번째 기적
트럼프·쿠오모 연합전선 넘어선 압도적 대승리

다인종 노동자 연대와 좌파적 포퓰리즘의 결합
팔레스타인 연대로 드러난 용기와 새로운 희망
세 번째 기적을 향한 연대와 투쟁의 과제들

 

“이민자든,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일원이든, 트럼프가 연방 정부 직책에서 해고한 수많은 흑인 여성이든, 식료품 가격이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싱글맘이든, 혹은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누구든 여러분의 투쟁은 우리의 투쟁입니다. …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파시즘’을 거부할 것이며, ICE 요원들이 우리의 이웃을 추방하는 것을 막고, 노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 트럼프는 우리 중 누구를 건드리려면 우리 모두를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 저는 무슬림이고, 민주적 사회주의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습니다. … 우리가 함께 꾸었던 꿈들이 우리가 함께 실현해 나갈 의제가 되게 합시다. 이 힘은 당신의 것이고 이 도시는 당신의 것입니다."(조란 맘다니의 당선 연설 중에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지켜보며 우리는 거듭된 충격 속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기존의 정치 문법이 무너지고 상식이 조롱당하는 듯한 현실은 많은 이들에게 냉소와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어제 뉴욕에서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반대의 방향에서, 희망의 이야기로 펼쳐졌다.

 

올해 초, '젊은 급진좌파 무슬림'이라는, 주류정치에서 '실패 보증수표'처럼 여겨지는 정체성을 가진 조란 맘다니(Zoran Mamdani)가 뉴욕시장 도전을 선언했을 때, 그의 지지율은 여론조사 오차범위에도 미치지 못하는 1%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낙관적인 진보 논객들조차 그의 당선을 전망하지 못했다. 

 

맘다니는 치열함, 강렬함, 열정을 뜻하는 "intensity"의 정치인이다. 2023년 백악관 앞에서 단식하면서 가자 전쟁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고 영구적인 평화 협정을 촉구하는 맘다니. (Instagram, zohrankmamdani)

 

그는 뉴욕의 억만장자들과 뿌리 깊은 이슬람포비아라는 두 개의 거대한 벽에 동시에 맞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맘다니는 불과 반년 만에, 기성 정치의 거대한 장벽을 뚫고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로 당선되는 첫 번째 기적을 일으켰다. 그것은 수십 년간 뉴욕 정치를 지배해 온 기득권-부동산-금융 복합체에 대한 정면 도전의 신호탄이었다.

 

충격을 받은 기득권 카르텔의 공포는 즉각적으로 '반(反) 맘다니 전선' 연합체를 만들어냈다. 맘다니의 본선 당선을 막기 위한 이 연합에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초월한 세력들이 집결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공화당의 극우 세력, 척 슈머를 비롯한 민주당 주류 지도부, 일론 머스크와 월스트리트의 억만장자들이 그 주축이었다.

 

그리고 '안정'과 '현상 유지'라는 공동의 이익으로 묶인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주류언론까지 크고 작게 맘다니를 막아서기 위해 힘을 보탰다. 맘다니가 위협하는 것은 트럼프와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사회의 주류 엘리트들이 안주해 온 신자유주의적 합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합은 전방위적이며, 극도로 악랄한 '마녀사냥'의 형태로 이어졌다. 맘다니를 향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정책 비판의 수준을 넘어섰다. '맘다니는 서류 미비 불법체류 이민자', '반유대주의적 무슬림 지하디스트', '공산주의적 테러리스트'라는 원색적인 비난과 날조된 정보가 타블로이드 신문과 소셜 미디어를 뒤덮었다.

 

이러한 공격이 특히 더 비열했던 이유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뉴욕은 9.11 테러의 상처가 그 어느 곳보다 깊게 새겨진 곳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거주하는 도시 중 하나다. '무슬림 지하디스트'라는 프레임은 9.11의 트라우마를, '반유대주의자'라는 낙인은 뉴욕의 유대인 유권자들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무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민주당 주류 지도부는 맘다니를 도와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들은 마지못해, 뒤늦게야 소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했을 뿐이다. 특히 민주당의 상원 원내대표이자 뉴욕의 유력 정치인인 척 슈머는 선거 막판까지 맘다니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 맘다니의 급진적인 정책 노선이 기득권 후원자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곳곳에 군대를 투입해 온 트럼프는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왔고 뉴욕에도 군대를 투입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관련 방송 갈무리

 

반면 가장 앞장서서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하던 트럼프는 막판에 이르러 기상천외한 '역사표' 논리까지 펴면서 결사적으로 맘다니 낙선에 매달렸다. '공화당 후보 슬리와를 찍으면 어차피 맘다니가 된다. 차라리 민주당 출신이지만 그나마 정상적인 앤드류 쿠오모를 찍으라'며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인 쿠오모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거대한 장벽과 집요한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조란 맘다니는 다시 한번, 1년 만에 뉴욕시장으로 당선되는 두 번째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당의 전통적 주류와 기득권 세력을 상징하는 쿠오모 후보와 공화당의 슬리와 후보의 득표 합계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대승리'였다.

 

당파를 뛰어넘은 반대 세력의 연합된 힘, 쿠오모를 지지한 억만장자들의 사상 최고 수준의 막대한 자금력, 그리고 집요한 마녀사냥도 뉴욕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막을 수 없었다. 맘다니의 승리는 무엇이 이 거대한 반격을 가능하게 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첫째, 트럼프의 극우 인종주의와 반이민 정책에 맞선 선명한 '다인종 민주주의'의 비전이었다. 맘다니는, 인종과 젠더에 대한 자유주의적 정체성 정치를 강조하면서도 이민 정책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서는 거듭 타협하고 후퇴하던 민주당의 기존 주류들과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는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당의 '무지개 신자유주의'와도 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좌파 매체 <자코뱅Jacobin>은 이렇게 지적한다. "맘다니는 '흑인 CEO'나 '여성 억만장자'를 늘리는 자유주의적 포용이 아니라, 브롱크스의 흑인 노동자와 퀸스의 라티노 이민자, 맨해튼의 가난한 백인 예술가가 '서류 미비 이웃'과 함께 공동의 적(부동산 자본과 억만장자)에 맞서 싸우는 '다인종 노동계급 연대'를 호소했다."

 

이슬람포비아 마녀사냥에 맞서 무슬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던 맘다니 -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둘째, 맘다니는 이처럼 자유주의적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 급진적인 '좌파적 포퓰리즘' 정책을 제시했다. 그의 핵심 공약은 민주당이 고수해 온 자유시장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면적인 임대료 동결 및 인하, 대규모 공공주택 공급, 지하철과 버스 등 공공교통 무상화, 보편적 공공 보육, 그리고 이를 위한 재원 마련으로서의 '부유세' 도입과 법인세의 급격한 인상.

이러한 정책들은 기득권 언론으로부터 "사회주의적", "비현실적"이라는 맹비난을 받았지만, 수십 년간 천정부지로 솟은 임대료와 망가진 공공 서비스에 고통받아 온 뉴욕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희망'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맘다니는 "뉴욕은 소수의 억만장자들을 위한 놀이터가 아니라, 일하는 다수를 위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셋째, 맘다니는 이슬람포비아적 공격에 굴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유대주의자'라는 낙인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팔레스타인 연대를 분명히 했다. 이는 미국 주류정치,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 가장 피해 가는 문제였다. 맘다니는 '지하디스트'라는 비난에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편에 서는 평화주의자"라고 응수했다.

 

더 나아가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확고한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지원 정책에 확고히 반대하며,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과 '집단학살(Genocide)'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했다. 이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도 '집단학살'이라는 용어 사용을 피하던 버니 샌더스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 태도였다.

 

맘다니의 이러한 용기와 선택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미국 내 여론, 특히 젊은 세대와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변화하는 정서를 정확히 포착했다. 그는 이 문제를 '유대인 대 무슬림'의 갈등이 아닌, '식민주의 대 피식민주의',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기존 정치인들이 외면했던 잠재적 지지층을 결집하는데 성공했다. 

 

평범한 일상을 감당할 수 있는 뉴욕을 만들자는 맘다니의 메시지에 환호하는 지지자들. (Zohran for New York City)

 

맘다니는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는 것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가 낳은 불평등과 부조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이런 맘다니의 선거 캠페인에는 무려 10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결합했다. 이들은 대부분 다인종 이민자나 청년들이었다. 물론 DSA(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회원들도 많았다.

 

이들은 뉴욕의 곳곳을 문자 그대로 '누비고' 다녔다. 그들은 집집마다 방문해서 문을 두드리고 맘다니의 급진적 정책과 주장을 끈질기게 알렸다. 동시에,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기성 언론이 장악하지 못한 새로운 플랫폼에서 온갖 기발하고 재미있는 영상과 밈(meme), 게시물로 맘다니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퍼트렸다.

 

이는 최근 몇 년간 미국 사회에서 나타났던 세 가지 중요한 여론조사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했다. 1.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트럼프의 지지율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에 더 공감한다는 여론  3.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급격한 성장.

 

맘다니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여론의 흐름을 정확히 포착하고 조직해냈지만, 기존의 민주당 주류는 이 흐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트럼프라는 심각한 위험 앞에서도 지금 민주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공화당보다 더 낮게 맴도는 기현상은 바로 이 '시대착오적 안일함' 때문이었다.

 

지난 10월 26일, 맘다니의 대규모 유세장에서 벌어진 한 장면은 이 모든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맘다니 지지 연설을 하러 무대에 올라온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가 1만 3천 명의 청중으로부터 거대한 야유와 "부자에게 세금을!" 구호 속에 파묻혀 쫓겨나듯 무대를 내려가던 장면은, 민주당 기득권 세력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올해 초, 트럼프의 당선을 보며 많은 이들이 '미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하고 있다'라고 일면적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미국의 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불만을 해결해 줄 기존과는 다른 '더 나은 대안'을 절박하게 찾고 있었던 셈이다. 맘다니의 승리는 '트럼피즘'이 아닌 '맘다니즘'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지역의 주요 노동조합들도 맘다니를 지지하고 나섰다 - 출처: 맘다니의 트위터

 

이번에 뉴저지와 버지니아의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그것은 '트럼프가 싫어서'가 낳은 결과였다. 반면 맘다니의 승리는 적극적 열망의 결과였다. 이는 내년 미국 중간선거와 3년 후 대선을 위해 민주당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민주당은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으며, 이를 눈치챈 버락 오바마도 '맘다니를 돕겠다'며 나서고 있다.

 

트럼프의 핵심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조차 맘다니가 제기하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한 적이 있다. "전통적인 민주당은 죽었다. 맘다니가 그들의 낡은 당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맘다니는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물론, 맘다니가 뉴욕시장으로서 직면할 도전들은 선거 과정에서 겪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험난하다.

 

트럼프는 일찌감치 "급진 좌파 시장이 장악한 뉴욕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라고 선포했다. 나아가 트럼프는 분명히, 이민자들의 도시인 뉴욕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을 대대적으로 투입해 폭력적인 충돌을 유도하고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려 한다. 억만장자들은 자본과 투자를 철수하는 '자본 파업'으로 맘다니의 정책을 마비시킬 수 있다.

 

같은 민주당 소속인 뉴욕 주지사와 연방상원 의원들조차 맘다니의 급진적 정책 실현을 돕기보다는 주 의회와 연방 의회 차원에서 교묘하게 방해하고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 주류언론들의 공격은 더욱 교묘해질 것이다. 그들은 진작부터 '맘다니는 명문대 교수 아빠와 유명 영화감독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금수저 출신의 위선적 내로남불 좌파' 프레임을 구축해 왔다. 정책 자체의 난관도 존재한다.

 

예컨대 임대료를 급격하게 동결하거나 인하할 경우, 대출에 의존해 주택을 소유한 중소형 주택소유주들이 파산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지역 은행과 그 은행에 맞물린 기업에 타격을 가해 경제적 혼란을 촉발할 수 있다. 이 모든 공격과 방해, 어려움을 딛고 맘다니가 뉴욕 시민들에게 약속을 지켜내고, 그들의 마음을 계속 모아나가려면, 지혜롭고 효과적인 정책 추진 능력뿐만 아니라 그를 뒷받침할 아래로부터의 기반과 투쟁,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뉴욕의 노동조합과 좌파 단체들의 조직률과 투쟁력은 그다지 높지 않은 상태다. 맘다니의 정치적 승리가 거리와 현장에서의 '사회적 운동'의 성장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그의 개혁은 기득권의 거대한 벽에 부딪혀 좌초될 위험이 크다. 맘다니의 승리는 트럼피즘의 어둠 속에서 우리에게 큰 희망과 영감을 주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였던 1년 동안 두 번의 기적을 만들어낸 맘다니와 그의 지지자들은 다시 세 번째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와 한국에서 극우적 반동과 혐오 정치의 위험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이, 조란 맘다니의 극적인 승리와 그 경험 속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