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서 국민 통합 필요성과 진정성 호소


"대통령의 가장 큰 책임…공동체 전체를 대표"
"사회를 통째로 파랗게 만들 수는 없어" 비유
"잡탕 아니라 파란색 중심의 오색 빛깔 무지개"
"모래, 자갈, 시멘트, 물 모아 콘크리트 만들어"
"주류적인 입장, 근본 가치와 원칙은 다 유지"

이혜훈 "내란은 민주주의 파괴하는 불법 행위"
"당파성에 매몰돼…민주시민께 머리 숙여 사과"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30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두고 진보 진영과 여권 일각에서 반발이 계속되자 이재명 대통령이 작심하고 국무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국민 통합의 필요성과 진정성을 호소하고 나섰다. 자신의 지론인 '콘크리트 통합론'과 함께 '파란색 중심의 무지개론'도 설파하며 지지층의 이해를 간곡하게 당부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요즘은 연말연시이기도 하고 국내외적으로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보니까 제가 하고 있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책이 대체 어떤 것인지, 뭘 해야 하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며 "그런데 생각의 결론은 그렇다. 대통령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다. 국민의 통합된 힘을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최종 책임자. 그게 바로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은 공동체 전체를 책임지는 것이다.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대통령이 될 때까지는 특정한 세력을 대표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순간에는 모두를 대표해야 한다. 전쟁과 정치가 다른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며 "전쟁은 점령해서 다 갖는 거다. 그런데 정치란 그러면 안 된다. 최종 권력을 갖게 되더라도 그 최종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 함께한 사람들만 모든 것을 누리고 그 외에는 모두 배제하면 그건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 되어버린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일곱 가지 색깔을 가진 무지개와 같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권한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회를 통째로 다 파랗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면 안 되지 않겠는가?"라며 "그럼 빨간색은 어디로 가나? 빨간색은 우리나라 공동체 사람의 자격을 상실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이고 주권자 아닌가?"라고 스스로 묻고 답했다.

 

또 "온갖 방식의 언어들, 예를 들면 협치니 포용이니 이런 말로 표현되지만 정치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한 결론은 집권자와 집권 세력, 대통령과 국무위원 여러분의 역할이 결국 세상을 고루 편안하게,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거 아니겠는가?"라며 "그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나 아니면 전부 적이다, 제거 대상이다, 그런 부분들이 있다. 그러다가 내란 사태까지 벌어진 거 아닌가?"라고 정치의 본질과 대통령의 책무에 관한 문제의식을 계속 제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30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 대통령은 "다 없애버리려고, 내 의견과 다른 집단과 인사는 다 제거하고 모든 걸 갖겠다고 벌인 극단적 처사가 바로 내란이었다. 그런 사회가 반대쪽으로도 오면 안 된다"며 "그래서 우리는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대결하는 사회에서 오히려 더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략적 수단이 아니고, 정말로 우리가 다시 정상인 사회로 되돌아가려면 더 반대쪽의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통합과 포용의 역할을 더 강하게, 더 크게, 더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가장 모범이 돼야 할 정치인, 관료들이 이 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주면 좋겠고,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도 예를 들면 이번에 각료 지명이나 인사에 있어서 참으로 고려할 게 많다는 점을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다"며 "물론 모든 일은 최종적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 최대한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긍정해주고, 의견이 다른 게 불편함이 아니라 시너지의 원천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군더더기 같지만 한 말씀만 더 드리면, 시멘트만 모으면 시멘트 더미다. 모래만 잔뜩 모으면 모래 더미다. 내가 모래라면 모래 말고 자갈, 시멘트, 물을 모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콘크리트를 만든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좀 더 포용적이고, 좀 더 융화하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고 비유했다. 이른바 '콘크리트 통합론'이다.

 

이 대통령은 지지층 일각에서 지적하는 '잡탕론'을 의식한 듯, 국무회의 생중계 발언 말미에 '파란색 중심의 무지개론'을 추가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제가 무지개 얘기하고 포용, 화합 얘기했더니 '그러면 잡탕하자는 거냐' 이렇게 또 얘기할 것 같다"며 "우리가 푸른색을 상징으로 해서 집권한 세력이긴 한데 다른 색깔들을 막 다 받아들여서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 그렇게 만들겠다는 건 아니다. 각자의 특색들을 다 유지하되 우리 구성원 모두가 푸른색을 선택했을 때 가진 기대, 또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과 가치 이걸 잃어버리진 않는다"고 확언했다.

 

이어 "일부 언론에서 '보수에만 자리 다 주면 집권할 때 도움 준 사람은 뭐냐' 이런 이상한 기사도 쓰고 그러던데, 다 주긴 뭘 다 주느냐"면서 윤석열 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유임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오유경 식약처장을 지목해 "여기 국무위원 중에 우리 송 장관님, 우리 식약처장님… 또 있나? 뭐 약간 있겠지"라고 말해 송 장관을 비롯한 국무회의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다시 국민 통합의 당위성으로 돌아가 "주류적인 입장은 다 유지하고 근본적인 가치와 원칙, 기준을 다 유지하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그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넓게, 인재도 넓게, 운동장도 넓게 써야 한다는 차원이라는 말씀을 드린다"며 "잡탕을 만들자는 건 아니고 파란색 중심의 조화로운 오색 빛깔 무지개를 만들자는 얘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과거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2025.12.30. 연합
 

전날 이 대통령이 '명확한 입장 표명'을 주문했던 대로 이혜훈 후보자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과 내란을 옹호했던 종전 언행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다 취재진 앞에서 멈춰 "1년 전 엄동설한에 내란 극복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리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섰다"며 "내란은 헌정사에 있어서는 안 될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그러나 당시엔 제가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정당에 속해 정치를 하면서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과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쳤음을 오늘 솔직하게 고백한다"면서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 저의 판단 부족이었고 헌법과 민주주의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 토로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앞두고 있는 지금 과거의 실수를 덮은 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국민 앞에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 그런 공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추운 겨울 하루하루를 보내시고 상처받으신 분들, 저를 장관으로 또 부처의 수장으로 받아들여 주실 공무원들, 모든 상처 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이 정부의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결코 개인의 영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제가 평생 쌓아 온 경제 정책의 경험과 전문성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단 한 부분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저에게 내려진 책임의 소환이며 저의 오판을 국정의 무게로 갚으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로 사과의 무게를 증명하겠다. 계엄으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청산하고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주권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시 한번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온몸으로 헌신하신 모든 민주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과거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2025.12.30. 연합
 

취재진이 "그동안 재정 건전성 강조해 왔는데 이재명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와 거의 다르다는 시각이 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조율할 거냐"고 묻자 이 후보자는 "그 부분은 정말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따로 날을 잡겠다. 재정 건전성이나 정책 기조에 대한 얘기는 따로 날을 잡겠다"고 약속했다. 지출 구조 조정 등 추가 질문에도 이 후보자는 "그때 다 같이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이 후보자의 사과를 두고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출입기자단 브리핑에서 "국민이 판단하실 몫"이라며 "국민께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후보자가 설명해 드리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이 후보자의 계엄에 관한 입장을 확인하고 발탁했느냐는 질문에 김 대변인은 "다각적인 검토 끝에 후보자로 발표하게 됐다"고 답했다.          <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