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합동조사 진행 중 “정보유출 없다” 일방 주장
용의자 접촉 뒤 경찰에 안 넘겨…진술 오염 가능성
정부 “미확인 정보, 강력 항의” 전문가들 ‘비상식적’

 

 
 
서울 시내 쿠팡 배송차량 모습. 연합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자를 특정했으며 유출 정보가 외부로 전송된 정황은 없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25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곧바로 쿠팡이 주장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민관합동조사가 진행 중인 사항에 대한 일방적인 공표 행위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이날 대통령실이 주관한 관계부처 대책 회의를 앞둔 상황에, 일방적으로 유출 피해가 크지 않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셈이어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쿠팡은 이날 대통령실 회의를 30분 앞둔 오후 3시30분께 보도자료를 내어 “포렌식 증거를 활용해 고객 정보를 유출한 전직 직원을 특정했다”며 “유출자가 쿠팡 고객 정보를 접근 및 탈취하는 데 사용된 모든 장치는 모두 회수돼 안전하게 확보됐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이어 “ 유출자는 재직 중 취득한 내부 보안키를 탈취해 이메일·주소·전화번호 등 3300만 고객 개인정보에 접근했지만 약 3천개 계정의 고객 정보만 개인 데스크톱 피시와 노트북에 저장했다”며 “ 결제 정보, 로그인 관련 정보, 개인통관번호 등에는 접근하지 않았으며 외부 전송 정황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유출자가 노트북을 물리적으로 파손한 뒤 인근 하천에 투기했다고 진술했다”며 “유출자 설명을 바탕으로 잠수부들이 하천에서 노트북을 회수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즉각 반박 자료를 내어 “쿠팡이 주장하는 사항은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린다”며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조사 중인 사항을 일방적으로 대외에 알린 것에 대해 쿠팡 쪽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지난 21일 쿠팡 쪽으로부터 피의자가 작성했다는 진술서와 범행에 사용됐다는 노트북 등 증거물을 임의제출 받아, 실제 작성 여부와 범행에 사용된 증거물인지 여부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며 “쿠팡 쪽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부 통제 실패로 일어난 대규모 개인정보 침해 사고에 대한 수사당국 수사와 객관적 검증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쿠팡이 자체적으로 내부 정보를 활용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진술서까지 만들어 제출한 상황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쿠팡이 이날 공개한 자체 조사 결과를 두고도 물음표가 이어지고 있다. 먼저 수사당국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 핵심 용의자를 찾아 진술서까지 받은 것은 사실상 수사방해로 지적될 수 있는 사항이다. 쿠팡이 용의자의 신병을 경찰에 인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경찰 수사를 앞두고 사전에 수사 대상과 접촉해 진술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쿠팡 쪽은 이날 정보를 유출한 직원과 접촉하게 경위와 현재 소재지, 해당 용의자의 범행 동기 등 의문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향후 수사가 진행될 영역에 대해 회사 쪽에 유리한 내용만 사실로 전제하고 외부로 공표한 셈이다. 또 쿠팡이 확보했다는 노트북 등 범행 도구를 어떻게 포렌식했고 외부 전송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거로 확인했는지 등 세부적인 분석 과정 역시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 기관 등이 통상적인 업무를 보기 어려운 휴일에 전격적으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공표 형식도 논란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외부 업체 등을 통해 수차례 검증을 거쳐 용의자 진술과 자체 조사 내용이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고객의 불안을 덜기 위해 하루빨리 결과를 발표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앞서 국회에서 진행된 청문회 등에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미국에 상장한 쿠팡의 모기업) 이사회 의장 등이 불출석하는 등 전혀 협조하지 않다가, 불쑥 일방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국민적 불안이 잦아들지 의문이다.

 

전문가들도 이날 쿠팡의 대응이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을 쿠팡이 무단으로 선제 발표한 것은, 사안의 시급성 때문이라기보다 이번 사건을 문제의 퇴직자 한 개인의 일탈로 국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며 “지금 정부가 확인하고자 하는 핵심은, 내부 통제에 심각한 허점을 보여온 쿠팡이 과연 다른 개발자나 퇴직자들의 일탈 역시 제대로 차단·관리해왔는지 여부”라고 꼬집었다. 고학수 전 개인정보보호위원장도 쿠팡이 외부 전송은 없었다는 ‘내부 유출’ 프레임을 내세운 데 대해 “유출이란 개인정보처리자(쿠팡)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인정보가 (회사의) 관리·통제권을 벗어나 권한 없는 제3자(전 직원)가 접근해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된 상태”라며 “고객 개인정보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해 유출됐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쿠팡 사태와 관련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주재로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과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등 관계부처 장관급 인사들과 경찰청 관계자 등과 함께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오현주 국가안보실 3차장과 김진아 외교부 2차관 등 외교·안보라인도 참석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쿠팡이 책임 모면을 위해 미국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에 나서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회의 참석자 범위가 확대된 셈이다. 이들은 회의 뒤 “엄중한 조사와 대응과 함께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 제도 개선 방안도 준비하기로 했다”며 향후 쿠팡 관련 범부처 티에프(TF)를 배 부총리 주재로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서혜미 선담은 서영지 조해영 기자 >

 

외교 문제로 번진 쿠팡 사태…대통령실 안보라인까지 대책회의 ‘총출동’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쿠팡사태 범부처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에서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대통령실이 25일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사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관계부처 장관급 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쿠팡 사태와 관련해 경영진 처벌 및 소비자 피해 구제책을 논의하기 위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주재로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등 관계부처 장관급 인사들과 경찰청 등 수사기관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었다. 특히 회의에는 오현주 국가안보실 3차장과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물론, 해킹 문제를 담당하는 국가정보원 간부 등 외교·안보라인도 대거 참석했다. 쿠팡의 미국 정·관계 인사 로비 의혹도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련 부처가 ‘쿠팡 사태 범부처 티에프(TF)’ 첫 회의를 연 지 이틀 만에 대통령실이 나서 휴일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쿠팡을 겨냥해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한 제재를 주문한 바 있다.

 

특히 범부처 티에프 회의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외교부 등 안보·라인까지 이날 회의에 참석시킨 것은, 자칫 이번 사태가 한·미 간 외교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쿠팡이 책임 모면을 위해 미국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에 힘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비공개 회담이 취소된 게 쿠팡 사태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 데 이어, 지난 23일엔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최근 쿠팡에 대한 한국 국회의 규제 움직임을 비판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회담이 취소된 것은 쿠팡 사태와 무관한데도, 쿠팡 쪽이 자신들 사태로 회의가 취소한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보고 대응책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마치 쿠팡을 차별하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니까 국내법에 따라 해야 할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 미국 쪽에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론전과 달리 현재까지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쿠팡 사태’와 관련해 공식 통로를 통해 어떤 형태의 의견도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한겨레에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 쪽에 쿠팡 얘기를 꺼낸 적은 전혀 없는 걸로 안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를 연기하기로 한 결정도 최근 쿠팡 정보유출 건과 무관하다”고 전했다.

                                                                                     < 서영지 기자  김원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