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ㆍ베트남 "깊은 애도" vs 북한 "방사포탄 발사"

김정일, 첫 정상회담 김대중 작고에 조문단
"민족의 화해ㆍ단합ㆍ통일 염원 실현한 공적"
노무현ㆍ정주영ㆍ정몽헌 타계에 "깊은 애도"

김일성 작고 때 남한 '조문 파동' 흑역사
이명박, 김정일 타계에 "북한 주민 위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타계했다.

중국은 이튿날인 26일 바로 깊은 애도를 표했다. 궈자쿤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해찬 선생은 한국의 원로 정치인으로 여러 차례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중한 관계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면서 "중국은 그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출장 중 자국에서 명암을 달리한 베트남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팜 민 친 총리 등 베트남 지도부가 한국 정부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반세기 걸쳐 민주 한국을 지탱해온 원로 정치인에 대한 예우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빈소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6.1.27 연합
 

북한, 이해찬 타계에 '조의 대신 미사일'
중국ㆍ베트남 외교부 대변인 "깊은 애도"

 

북한은 달랐다. 이해찬 전 총리의 운구가 27일 오전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이재명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조문이 시작된 이날 오후 탄도미사일 4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핵전쟁 억제력 고도화를 위해 "갱신형 대구경 방사포탄 4발"을 시험 사격했고, 현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했다.

 

물론 고인이 전면에 나서 남북 관계 역사를 써 내려가진 않았지만, 주요 변곡점마다 평양을 방문해 주요 역할을 해온 인물이란 점에서 북한이 '조의'까진 아니어도 '미사일'로 답하는 모양새를 취한 건 매우 초현실적이다. '남북 단절'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 전 총리는 역사적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2007년 3월엔 노무현 대통령의 정무 특보 자격으로 비공식으로 평양을 방문해 그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을 물밑에서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찾아 당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남북 국회 회담 등을 제안했고, 그해 10월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 때는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약 150명의 민관 방북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으로선 꽤 친숙한 인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성능을 개량한 대구경 방사포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시험사격을 참관했다. 2026.1.28 연합
 

김일성 작고 때 남한 '조문 파동' 흑역사
김대중 정부 때부터 '상호 조문' 정착해

 

미사일까진 아니어도 이 전 총리의 타계에 북한이 조의를 표하진 않을 거란 짐작은 가능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타계 소식을 전한 작년 11월 4일 이재명 정부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공식 조의문을 통해 고인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지만, 북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조문' 문제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타계 당시 남북정상회담 추진 중이었는데도 김영삼 정부가 조문단을 보내는 대신, 되레 최고의 대북 군사 경계 태세를 취하면서 남북 관계를 다시 적대적으로 몰아갔지만,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6‧15 정상회담 이후론 '상호 조문'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화해와 관계 회복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소떼 방북'으로 남북 경제 협력의 물꼬를 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001년 3월 21일 작고하자, 북측은 김정일 위원장의 조전에 이어, 사흘 뒤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조문단을 보내 애도했고, 이들 편에 대형조화도 함께 보냈다. 2년 후인 2003년 8월 4일 아들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충격적 소식이 전해진 그날, 김정일 위원장은 조전을 보내 깊은 애도를 표하고 남북 화해‧협력에 기울인 고인의 노력을 평가했으며, 북한 금강산 온정각에 분향소를 세우는 한편 대형조화를 보내오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00.6.13. 연합
 

김정일, 첫 정상회담 김대중 작고에 조문단
"민족의 화해ㆍ단합ㆍ통일 염원 실현 공적"

 

그 후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2년) 체결의 북측 주인공인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이 2005년 10월 22일 타계했을 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정부' 명의로 공식 조전을 보내 깊은 애도를 표했다.

 

2009년은 한국 민주주의와 남북 관계의 역사에선 매우 비극적인 해였다.

한 해 전인 2008년 이명박 수구보수 정권이 출범하고 그해 7월 박왕자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남북관계는 다시 급속히 악화하는 상황에서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등진데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8월 18일 유명을 달리했다.

 

악화된 남북관계 와중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은 2007년 10‧4 평양 정상회담의 파트너였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틀 후 "로무현 전 대통령이 불상사하게 서거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여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본인 명의의 조전을 보냈다.

 

석 달 후 첫 남북정상회담 파트너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고위급 조문단을 서울로 보내 8월 21일 국회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여, 김정일"이란 글귀가 새겨진 대형조화도 보냈다. 앞서 19일엔 공식 조전을 통해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이희호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당시 김기남 비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해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조문'을 통한 남북 관계 복원 희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7.10.3. 연합
 

김정일, 노무현 타계에 "깊은 애도" 조전
'남북경협 상징' 정주영ㆍ정몽헌에도 예우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개했을 때 정부 차원의 조문단은 보내지 않았고, 다만 류우익 통일부 장관 담화문 형식으로 "정부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란 뜻을 밝혔다. 유가족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겨냥한 냄새가 짙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민간 조문단은 방북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6월 10일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을 때도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던 시기였다. 한 해 전인 2018년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 재개를 약속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네오콘의 눈치를 보며 끝내 재개 결단을 내리지 못한데다, 그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도 결렬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별세 이틀 후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 부부장을 직접 판문점 통일각까지 내려보내 조전과 조화를 전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성능을 개량한 대구경 방사포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시험사격을 참관했다. 2026.1.28
 

이명박, 김정일 타계 때 "북 주민 애도"
날로 깊어만 가는 '남북 단절'의 풍경

 

거기까지였다.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남북 화해협력과 대화의 상징이었던 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을 폭파하고, 2022년 4월 금강산 내 남측 시설들을 철거했다. 그리곤 반북 대결과 흡수통일에 매진한 윤석열 수구 보수 정권 때인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그리고 통일 및 대남 관련 기구를 모두 없앴다.

 

급기야 2024년 10월 15일 민족의 혈맥인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와 철로 북측 구간을 폭파하고 대전차 방벽 구축 등 요새화에 주력했다. 윤석열 내란을 제압하고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평화공존과 남북 공동 성장'을 내세우며 대화 재개와 화해의 손짓을 하고 있지만, 이젠 군사분계선(MDL)을 '국경'이라고 주장하면서 3중 철조망 설치로 대답하고 있다.

 

남쪽에선 이해찬 전 총리 빈소에서 상실의 눈물을 흘리고, 북쪽에선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지금의 현실이야말로 날로 깊어만 가는 남북 단절의 풍경을 보여준다. 

                                                                                           <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