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 개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살리길
동학농민혁명의 '폐정개혁안' 헌법에 버금

2차 동학농민혁명은 항일독립운동의 출발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우금티 농민군 9명이나

동학 정신은 25년 뒤 3·1 만세운동으로 이어져
민족자주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뿌리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 196쪽에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구국투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성환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반제국주의 운동이다. 이 선언은 역사학계 정설로 한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다. 1894년 3월 1차 동학농민혁명이 봉건 질서에 반대한 운동이라면 같은 해 9월 2차 동학농민혁명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맞선 항일 구국 투쟁이다.

 

'폐정개혁안'으로 상징되는 1차 동학농민혁명은 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노비문서를 불태우며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용하는 등 기본권 보장과 인간 존엄성을 숙고한 대목이 담겨 있다. 더불어 탐관오리와 횡포한 부호를 엄징하고 무명잡세를 폐지하며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토지의 평균 분작을 추구하는 등 국민주권 원리를 실현하려는 정신이 적잖이 담겨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 해 5월 전주화약 당시 동학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은 원시 헌법 문서를 인정하는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학농민혁명이 원시 헌법 문서로 인정될 기준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계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1919년 4월 11일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건립된 역사 속 실체임을 헌법 전문에 명기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천도교 대표가 15명이고 2차 동학농민혁명의 상징인 우금티 전투에 참전한 농민군이 손병희를 비롯해 무려 9명에 이른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원시 헌법 문서로서 요건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다시 말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근대 입헌주의 헌법의 맹아로서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의 기원이자 정신적 뿌리로 볼 수 있다.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독립투쟁으로 규정하며 전봉준, 최시형을 비롯해 2차 동학농민군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할 것을 논증한 박용규 박사의 책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표지(인간과 자연사, 2021)
 

불행하게도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군들 가운데 전봉준, 최시형을 비롯해 아직 단 한 명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 받지 못하고 있다. 우금티 전투에 참전한 뒤 일본군에 체포돼 화형을 당한 동학농민군 이승원이나, 홍주성 전투, 해미읍성 전투에 참전한 뒤 일본군에 피검 당해 목이 잘리는 작두형을 당한 동학농민군 강운재 그 누구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현실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담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실제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은 조선 관군을 지휘하는 위치였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농촌을 초토화했고 농민군을 교수형, 총살형은 물론이고 불에 태워죽이는 화형과 작두로 목을 베는 작두형을 서슴지 않고 만행을 자행했다.

 

동학 접주는 체포 대상이자 즉결 처형 대상이었다. 동학혁명에 참여한 농민군을 체포하는 즉시 목을 베는 참형, 장작불에 태워죽이는 화형, 총살형, 교수형 등 잔혹하게 집단 학살한 학살 주체 미나미 고시로 대대장(동학서훈국민연대 제공)
 

그러나 피로 쓴 역사는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2차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에 출병해 동학농민군을 잔혹하게 진압, 학살한 학살 주체 미나미 고시로 소좌가 전남 나주 초토영에서 전봉준 장군을 문초한 대목이 그렇다. 이것은 2차 동학농민혁명이 항일 구국 투쟁이자 항일독립운동의 출발임을 명징하게 말해 주고 있다. 전봉준 장군은 “경복궁을 침탈한 일본군 축출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1894년 2차 동학농민혁명과 이듬해 을미의병의 독립유공 서훈을 비교한 학술세미나가 2023년 8월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 박용규 박사가 발제하는 모습인데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전봉준 장군 독립유공 서훈에 헌신한 자'라고 적히길 희구할 만큼 동학농민혁명군 독립유공 서훈에 열정을 쏟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하성환 시민기자
 

청일전쟁 연구의 대가인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교수도 19년 전에 2차 동학농민혁명을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이자 동아시아 독립운동의 선구”라고 규정했다.

 

해방된 지 80년이 흐른 지금도 1895년 을미의병을 항일독립운동의 시작으로 본다는 국가 보훈부 내부 심사 규칙을 고수하는 것은 명백한 시대착오다. 더구나 보훈 심사 내부 규칙을 만든 자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 사학자 이병도, 신석호라고 한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치권이 혼란스러워 개헌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오는 6·3 지방선거를 치를 때 동시에 개헌의 찬반 여부를 묻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뿌리로 하는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2016 촛불시민혁명, 2024 응원봉과 빛의 혁명을 헌법 전문에라도 담아 개헌하기를 열망한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는 반민족 매국노들이란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8년 총선까지 개헌을 기다리기엔 늦어도 너무 늦다.

 

 

2025년 10월 31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한 동학혁명정신 헌법 전문 명시 토론회 펼침막. 하성환 시민기자
 

인간 존중을 표현한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 사상을 비롯해 민권을 강조한 억강부약 정신과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정신은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핵심이다. 노비문서를 불태움으로써 신분제 철폐를 통해 평등 세상을 열망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본정신과도 궤를 같이한다.

 

다시 말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인 인간 존중 사상, 인간 평등 사상,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이 25년 뒤 고스란히 3·1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민주주의 사상은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2016 촛불시민혁명, 2024 응원봉과 빛의 혁명으로 계승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국민주권 정부를 자처한 이재명 정부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군에 대해 독립 유공 서훈을 단행하길 기대한다. 더불어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을 것을 역사상 책무로 받아 안을 것을 호소한다.                     < 하성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