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의혹 불거졌을 때 송영길에 집중포화
1심 유죄까지 선고되자 “당에 부담” 더욱 냉랭

2심 무죄에 분위기 급변…“당의 소중한 자산”
정치적 단죄 서두르는 태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동지라는 말 무겁게…유불리에 따른 소비 안 돼
계산이 아닌 신뢰가 중심되는 정치 출발점 되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소나무당 송영길 대표가 13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법원 청사 앞에 서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6.2.13. 연합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3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소나무당 대표)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직접 수수나 공모를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술의 신빙성과 자금 흐름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핵심 이유였다.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 즉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가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사법적 운명을 뒤집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권력의 흐름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태도를 바꾸는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동시에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감정과 진영 논리에 휘둘리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했다.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를 떠올려 보자.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던 순간, 정치권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언론은 연일 속보를 쏟아냈고, 검찰 수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집중 포화를 맞았다. 송영길 전 대표였다.

 

그때 당 안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는 무엇이었는가. “당에 부담을 줘선 안 된다”, “수사에 성실히 임하라”는 원론적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공개적으로 그를 감싸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리스크’가 되었고, ‘거리두기 대상’이 되었으며, 정치적 계산의 저울 위에 올려진 존재가 되었다. 권력의 무게추가 기울어질 때 정치인들의 발걸음은 놀라울 만큼 빠르다. 그들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바람의 방향을 읽는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자 분위기는 더욱 냉혹해졌다. 법원의 판단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1심이었지만,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이미 종결된 사건처럼 다루었다. 유죄는 곧 낙인이 되었고, 낙인은 곧 퇴장을 의미했다. 전화는 줄었고, 만남은 끊겼다.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던 이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사실상의 단절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1심을 뒤집는 판결이 나오자, 정치판의 공기도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를 멀리하던 사람들이 다시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고생 많았다”, “정의가 살아 있다”, “당의 소중한 자산이다”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언론 앞에 서는 의원들의 표정은 밝았고, 마치 처음부터 그를 신뢰하고 있었던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 장면은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지지하는 것은 사람인가, 판결인가. 동지인가, 정치적 자산인가. 정치는 현실이다. 이해관계와 세력 균형, 권력의 흐름 위에서 움직인다. 이상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소한의 도리마저 포기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동료를 ‘정리 대상’으로 분류하고, 무죄가 나오자마자 다시 ‘동지’로 복권시키는 태도는 과연 정치적 현실주의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은 가치 공동체라고 말한다. 같은 노선과 비전,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결사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법정 다툼 속에 있을 때, 최소한 절차적 존중과 신뢰는 보여야 하지 않는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과 사람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은 다르다. 직을 내려놓게 하는 것과 인간적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번 사건은 정치가 얼마나 빠르게 사람을 소비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는 환호가 넘치지만, 위기에 빠지면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힘을 회복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이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훼손되는 것은 신뢰다.

 

국민은 이 장면을 지켜본다. “동지”라는 말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원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지 기억한다. 정치가 신뢰를 잃는 순간 민주주의의 토대도 함께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로 권력을 교체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절차와 원칙에 대한 공동의 신뢰 위에 서 있는 체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더 넓은 문제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최근 정치권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장면들이다. 어떤 이는 특정 인물을 미워한다는 이유로 오랜 정치적 동지였던 세력을 떠나 다른 진영으로 이동한다. 또 어떤 이는 새롭게 권력을 잡은 인물을 옹위한다는 명분 아래, 다른 인물에 대한 혐오를 조직적으로 선동한다. 겉으로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작동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예컨대 이재명을 미워한다는 이유로 등을 돌려 이낙연을 따라간 사람들과, 이제는 이재명 대통령을 옹위한다는 명분 아래 조국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은, 방향만 다를 뿐 감정의 정치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일관된 민주적 원칙이 아니라, ‘좋아함’과 ‘싫어함’이라는 감정의 축이다. 신념보다는 동일성의 위협 여부가 우선한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따르는 체제가 아니라 원칙을 따르는 체제다. 특정 정치인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로 전환되는 순간, 민주주의 토양은 황폐해진다. 특정 정치인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공적 가치와 정책적 논쟁이 아니라 개인적 반감과 감정의 배설에 머문다면, 그것 역시 민주적 태도라 할 수 없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늘 매혹적이다. 나와 같은 편을 무조건 지지하고, 다른 편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단순하고 강렬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법적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정치적 단죄를 서두르는 태도,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에게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의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결국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에게도 되돌아온다.

 

이번 송영길 무죄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법적 판단 이전에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형사재판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절차다. 여론의 크기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입증의 엄격함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동지라는 말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어려울 때 함께 서지 못하는 연대는 유리할 때의 연대와 다르지 않다. 셋째, 사람을 유불리에 따라 소비하는 정치를 반복하지 말라는 경고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에는 ‘민주’와 ‘연대’라는 단어가 담겨 있다. 연대는 이길 가능성이 높을 때만 작동하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패배와 위기의 순간에 시험받는 가치다. 무조건적인 옹호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절차적 존중과 인간적 신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집단 심리는 냉혹하다. 한 사람의 정치적 생명이 흔들릴 때 많은 이들은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와 가까이 서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 따진다. 그러나 정치가 계산의 기술에만 머무를 때, 국민은 등을 돌린다. 정치가 신뢰의 예술이 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바람은 언제든 바뀐다. 오늘의 무죄가 내일의 위기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늘의 권력이 영원하지 않듯, 오늘의 고립도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원칙이 필요하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태도가 아니라,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이 단지 한 사람의 정치적 복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 정치의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감정과 진영 논리를 넘어, 절차와 원칙을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동지를 쉽게 버리지 않고, 적을 쉽게 악마화하지 않는 정치. 유불리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법적 추정을 지키는 정치. 그럴 때에야 비로소 국민은 정치의 말을 다시 들을 것이다. 바람이 아니라 원칙이 기준이 되는 정치. 계산이 아니라 신뢰가 중심이 되는 정치. 이번 판결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박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