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순국 116주기…이번엔 찾을 수 있을까

1910년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상세 묘사
"뤼순 감옥서 1㎞밖에 마잉푸 산 중턱에 묻어"
"발굴하지 못하도록 지하 2.1m 깊이에 매장해"

전문가들 "유해 발굴 하려면 남북이 대화해야"

 

안중근 의사 서거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2026.3.26. 이규수 전 교수 제공
 

안중근 의사 유해가 중국 다롄(大连)의 뤼순(旅順) 감옥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약 2.1미터(m) 깊이로 매장됐다는 내용을 담은 과거 일본 신문 기사가 발굴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부탁한 가운데, 이번에 나온 사료가 유해 발굴 추진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안 의사는 사형집행 전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116년 동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뤼순 감옥서 1㎞ 떨어진 마잉푸…지하 2.1m 깊이"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안 의사 순국 5개월여 뒤인 1910년 9월 10일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현 마이니치 신문)에서 보도된 '안중근의 묘'라는 제목의 기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전 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2020년쯤 일본에 머물면서 이 자료를 찾았다"고 전했다. 

 

신문에는 당시 현장의 상세한 묘사와 함께, 구리하라 사다키치 전옥(典獄, 뤼순감옥 형무소장)의 설명 등이 담겨 있다. 구리하라는 안 의사를 지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뤼순감옥 보고서에 따르면 구리하라는 안 의사가 형무소에서 '동양평화론'을 완성하도록 사형 집행일을 늦춰달라고 한 바 있다. 또 안 의사가 순국 직전 "어머니가 보내주신 흰 한복을 입고 죽고 싶다"고 한 요청을 흔쾌히 허락하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구리하라가 특별히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감옥에서 약 10정(약 1㎞) 떨어진 묘지로 향했다"면서, 안 의사의 묘가 있는 터에 대해 "울타리도 담도없는 산 중턱, 무성한 잡초 사이에 규칙적으로 두 줄을 이루어 50~60기의 무덤이 서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고개를 들어 보면 정면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에 청나라 통치 시기의 기병영(騎兵營) 터가 거의 완전한 형태의 흙담으로 남아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으로 약 1정(약 109m) 떨어진 남쪽 산기슭과 가깝다"고 설명했다. 마잉푸(옛 둥산포·東山坡) 일대는 안 의사 유해가 매장된 지역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곳 중 하나다. 현재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 서거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2026.3.26. 이규수 전 교수 제공

 

신문에서는 안 의사의 묘 위치도 특정했다. 기자는 "2~3년 전 다롄에서 중국인 환전상을 꾀어내어 2천 엔을 강탈하고 그를 교살한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등을 비롯해 불과 얼마 전 처형된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 등 두 강도의 흙이 마르지 않은 새 무덤과 인접한 지점"이라며 "한 조각의 나무 표식도 세우지 않고, 한 덩어리 돌멩이도 놓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이처럼 표식도 없이 안 의사의 묘를 만든 것은 일제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구리하라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실은 당시 안중근의 형제가 너무나 유해를 원했던 점과 우리 일본인들의 격앙이 심했던 탓에 신중하게 고려했다"며 "겉에는 성명을, 뒤에는 사망 연월일을 기록한 것을 묘표로 세우지 않고, (관과 함께) 묻어서 흙을 덮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방치해 일부러 매장 지점의 형태와 흔적을 완전히 감췄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묘는 발굴되지 못하도록 다른 죄수와 달리 더 깊이 팠다고 한다. 구리하라는 "특별히 들여온 백목(白木, 표면을 가공하지 않은 목재)으로 일본식 침관(寝棺, 시신을 눕히는 관)을 만들었다"면서 "일반 죄수와 같이 지하 4척(약 1.2m) 이내에 묻지 않고 특별히 7척(약 2.1m) 아래로 깊이 묻었다. 매장한 장소는 감옥 부속 수인 묘지 안이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사는 '방외생'(方外生)이라는 인물이 작성했다. 이 교수는 방외생이 고마츠 모토고(小松元吾) 기자의 필명이라고 설명했다. 고마츠 기자는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기자, 도요신문사 통신원 등으로 활동한 언론인이자, 미술가이다. 고마츠는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기 나흘 전 공판을 그림 스케치로 남기기도 했다. 그가 남긴 공판 스케치는 재판 관계인들의 표정이나 분위기 등을 유추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이 교수는 고마츠에 대해 "당시 양심적인 일본 기자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안중근 의사 서거 116주기인 26일 이규수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사진은 기사를 작성한 고마츠 모토고 기자. 2026.3.26. 이규수 전 교수 제공

 

"안 의사 유해발굴, 남북 대화 없이는 어려워"

 

안 의사의 유해 매장 위치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우리보다 앞서 1970년대 김일성 주석 지시로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유해 수습에 실패했다. 남북은 지난 2008년 중국에서 유해 발굴을 공동으로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얻진 못했다. 이후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은 중국 정부가 남북이 합의로 정확한 매장 지점을 특정하면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하면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중국 국빈 방문 중 시진핑 주석에게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달엔 안 의사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식을 엑스(X)에서 전하며 “정부도 안 의사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지난 18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민관 협력단'을 발족하고, 유해발굴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번에 확인된 마잉푸 일대는 중국 측 협조로 현지 답사는 한 적 있지만, 본격적인 발굴 작업으로는 나아가지 못한 곳이다. 정부와 학계 등에선 이곳이 문화재 지역인 점 등을 고려해 지표투과레이더(GPR, Ground Penetrating Radar)를 활용한 비파괴 방식으로 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이를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중근 의사.

 

다만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엔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이 남북 합의로 정확한 매장 위치를 특정하면 협조하겠다고 한 만큼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지만, 최근 한반도 상황을 고려했을 때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과 남북의 외교적인 문제도 얽혀 있다. 또한 매장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일본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들도 필요하지만, 여기에 아직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는 지난 21일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 추모식에서 "남북이 합의하지 않고서는 유해발굴이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면서 "북의 경직된 마음을 바꿔서 우리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선조를 모시고 있다는 부분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교수도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기본적인 대전제인 남북의 대화가 막혀 있다"고 지적하며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해 신뢰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