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구 만평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을 때 국민이 기대했던 것은 선명한 국정 방향과 속도감 있는 행정 능력이었다. 그러나 출범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기대와 현실의 간극은 커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높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국민이 체감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내기보다 정작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는 SNS 정치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모습이다.
정부가 성과보다 논란을 키우고, 국정의 무게감보다 말 한마디가 더 크게 소비되는 사이 야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뜻밖의 ‘잠룡’들이 부상하고 있다. 한동훈, 장동혁, 조희대다.
세 사람의 처지는 제각각이지만, 행보에서는 묘한 공통점이 읽힌다. 한동훈은 국정의 거의 모든 현안에 목소리를 얹으며 자기정치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고, 장동혁은 극우 성향 세력과의 결집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모습을 보인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 재제청을 거부한 데 이어, 국정감사 출석 의사를 밝혔다가 이를 번복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정치인과 사법부 수장을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 사람에게서 묘하게 겹쳐 보이는 한 가지가 있다.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책임지고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보다, 그 자리를 발판 삼아 자신의 존재감과 정치적 입지를 지키는 데 더 민감하다는 점이다.
이들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것은 ‘보수’다. 그러나 국민이 기대하는 보수는 위기 앞에서 자기 안위부터 챙기는 정치가 아니다. 불리한 순간에도 책임을 감당하고, 자신이 선 자리의 무게만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보이는 것은 책임보다 계산이고, 원칙보다 존재감이다. 강성 지지층의 박수에 기대거나 정부와 각을 세우며 정치적 입지를 키우는 데 몰두한다. 보수를 말하면서 정작 보수가 지켜야 할 책임과 품격에서는 멀어지는 역설이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좁쌀 같은 자기정치가 별다른 제동도 받지 않은 채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 틈을 벌려준 것은 역설적으로 속 시원한 해법과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정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이 기대했던 것은 무너진 헌정질서를 분명하게 바로 세우고, 흔들린 국가 시스템을 유능하게 복원하는 일이었다. 책임져야 할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고 국민이 체감할 만한 민생 성과를 만들어냈다면, 지금처럼 이들이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만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야당의 좁쌀 정치를 탓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왜 그들에게 이토록 좋은 무대를 내주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말 많은 정치도, 글로 하는 통치도 아니다. 말보다 결과를 보여주는 정부, 자기정치보다 국정을 앞세우는 정치다. 말로 정치를 할 거라면 평론가들의 그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친다. < 홍순구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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