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남한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비난하는 가운데 각지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항의하는 청년학생들의 시위 행진이 벌어졌다고 <조선중앙통신>9일 보도했다.

                     

[, 남쪽에 강경책 왜?]

작년 10, 올해 3회 대북전단 살포 판문점 선언 위반적대행위 간주

코로나 방역 무력화 의도 강한 경계내부 기강 잡아 경제난 극복 의지

              

남북관계가 20184·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후퇴할 위기에 몰렸다. 북쪽이 9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교류 중단 차원을 넘어 군사 갈등·충돌로 번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북쪽의 추가 조처와 우리 정부의 대응에 따라 남북관계의 변화 폭과 진로가 달라질 여지는 있다.

대북전단을 문제 삼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4일 담화부터 9<노동신문>에 실린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조선중앙통신사 보도’(<중통> 보도)에 이르기까지 북쪽의 행보엔 몇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첫째, 대북전단을 최고존엄과 전체 조선인민에 대한 모독이라 규정했다. 둘째, 최근의 대북전단 살포를 북남관계 파국의 도화선이자 남조선 당국의 은폐된 동족 적대시 정책의 발현으로 규정하며, 그 책임을 남쪽 당국에 물었다. 9보도에선 그렇지 않아도 계산할 것이 많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 누적된 불만이 터졌음을 숨기지 않았다. 대북전단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셋째,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 총괄책임자로 전면에 나섰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리인으로 2018~2019년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깊이 관여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함께했다. 넷째, 4김여정 담화부터 9‘<중통> 보도까지 빠짐없이 <노동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노동신문>은 노동당 중앙위 기관지로 북쪽에서 공식성이 가장 강한 인민 필독 매체. 이번 국면엔 대남 압박·조처뿐만 아니라 내부 수요도 있다는 방증이다.

북쪽이 대남사업 부서들의 사업 총화 회의의 공식 결정을 <노동신문>에 보도한 만큼, ‘을 넘어 실행을 전제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의 상징인 조선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 통신 연락선 완전 차단조처는 남북관계의 마지막 안전판조차 위태롭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다만 아직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는 않아 기회의 창을 완전히 닫은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대응 기조와 방향, 속도가 관건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전에 없던 일은 아니다. 북쪽도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5)에서 지난해에도 10차례, 올해에는 3차례 삐라를 뿌렸는데라고 했다. 그런데 왜 이번엔 이렇게 강하게 문제 삼을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북전단 살포는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를 명시한 4·27 판문점선언 위반이다. 둘째, 코로나19 확산 두려움이다. 북쪽은 128국가비상방역체제로 전환해 국경을 폐쇄하고 정식 수입 물품도 “10일간 자연방치 뒤 24시간 간격 세차례 사흘간 소독방역지침을 시행한다. 대북전단은 수거·방역이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3월 초 일부 탈북민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에 북한 지역 코로나 확산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며 코로나 환자들이 사용하던 물품을 구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삭제된 일이 있다. 남쪽이 4·27 판문점선언 두해가 지나도록 대북전단 문제를 방치한다는 불만에 대북전단을 매개로 한 코로나19 외부 유입 공포까지 겹쳐 불만이 폭발했을 수 있다. 통전부 담화의 남측의 더러운 오물을 계속 수거하며 피로에 시달려온 우리라는 언급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이 대북 전단을 고리로 한 대남 강경 기조를 사회 기강 다잡기와 자력갱생식 정면돌파전독려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조짐도 보인다. “탈북자 쓰레기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판이 내걸린 항의군중집회, 평양종합병원 건설 노동자들이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치열한 철야전을 더욱 드세게펼치고 있다는 <노동신문> 9일치 1면 기사가 한 사례다.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는 북쪽이 9일 남북 사이 모든 통신선 차단에 이어 취할 대남 조처는 사실상 이미 예고된 상태다. 첫 후속 표적은 통전부 담화로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 공언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일 가능성이 높다. ‘김여정 담화에선 개성공업지구 완전 철거“(개성) 북남공동연락사무소 폐쇄“(9·19) 북남군사합의 파기를 열거했다. 북쪽은 남조선 당국과 더는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9<중통> 보도), “남쪽에서 법안이 채택돼 실행될 때까지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 아파할 일판”(5일 통전부 담화)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판문점선언 이행 차원에서 대북전단에 원칙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하며 관련 입법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북 제재에 묶인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높일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는 북쪽의 불만 표출이 남쪽을 넘어 미국을 향해 번질 수 있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시한폭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한 셈이다.

화해 물꼬 튼 김여정·김영철, 이번엔 대남 강경 대응 주도

통전부장배제, 평창·정상회담 등 관여한 둘 전면에

실패규정한 2년 책임 맡긴 듯김영철 통전부장 복귀 가능성도

20184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됐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남쪽의 서훈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장과 북쪽의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북한 <노동신문>“8일 대남사업부서들의 사업총화회의에서 북남 사이 모든 통신연락선 완전 차단조처를 지시한 주체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철 동지와 당중앙위 제1부부장 김여정 동지라고 9일 보도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대북전단 문제를 고리로 한, 최근 북쪽의 대남 몰아붙이기의 기폭제가 된 4일 담화의 주체다. 여기에 1989~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부터 30년 넘게 대남사업에 깊이 관여해온 김영철 부위원장까지 다시 전면에 나선 셈이다.

김여정+김영철 조합은 짚어볼 대목이 많다. ‘조국통일을 국시로 내세운 북한에서 대남사업의 최고책임자는 유일무이한 최고존엄이자 경애하는 최고영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고, 실무 책임자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다. 따라서 대남사업부서 총화회의는 통전부장이 주재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통일부가 9통일전선부장은 장금철이라고 파악하고 있다고 한 장금철<노동신문> 보도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남사업을 총괄”(5일 통전부 대변인 담화)하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실질적으로 대남 대응을 주도하더라도 권력구조상 회의 주재는 통전부장 또는 직책상 그 위 급이 해야 한다는 게 북한 권력구조에 정통한 전직 고위관계자의 지적이다. <노동신문>이 회의 주재자이자 지시자로 김여정 제1부부장 앞에 김영철 부위원장을 거명한 이유로 보인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통전부장으로 복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쪽의 대남 강경 기조 전환의 주도자로 김여정+김영철 조합이 전면에 나선 사실을 다른 맥락에서 짚어볼 수도 있다. ‘김여정+김영철 조합20182월 평창겨울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으로 남쪽에 와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하며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다. 2018427, 526, 918~20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세차례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2018년 이후 남북 화해협력 기류에 깊이 관여한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이다.

북쪽으로선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할 정도로 지난 2년을 실패로 규정한 만큼, 북쪽 체제 특성에 비춰 이 사태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김여정+김영철 조합이 실패의 책임을 지고 전면에 나선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험이 풍부한 한 원로 인사는 김정은 위원장 리더십의 큰 특징은 성과주의라 통상적으론 김여정·김영철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나, 김여정한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김여정+김영철 조합이 남쪽을 향한 강력한 비방과 행동에 나서리라는 어두운 전망으로 이어진다.

다른 해석도 있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김여정이 충성 경쟁을 하려고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결단을 내린다면 길이 열릴 여지가 없지 않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 이제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