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 전시실 희생자 기리겠다는 약속 뒤집어

좋은 환경서 생활했다내용 가득 일 언론 역사수정주의 조장비판

     

“(하시마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동원돼 가혹한 환경하에서 강제노역했던 일이 있었다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정보센터 설치 등과 같은 조처를 하겠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위치한 산업유산 정보센터’.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졌던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 등이 포함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관련 전시시설인 이곳이 15일 일반 공개된다. 일반 공개를 하루 앞둔 14, 일본 내외신 일부에 공개된 이 시설에 들어서면, 입구에 일본이 2015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까지의 연혁이 적혀 있다. 연혁 맨 아래, 당시 유네스코 회의에서 일본 정부 대표가 했던 이 발언이 적혀 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산업유산 정보센터에선, 이 문구 정도 외에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하면서 약속했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징용 관계 문서 읽기라는 안내판에는 일본이 태평양전쟁 시기 국민징용령을 내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가 명확하게 기술돼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동 인구는 한반도와 일본 본토를 빈번히 왕래(했다)”라는 구절을 넣어서 조선인 노동자가 자유로웠다는 인상을 줄 우려도 있었다.

면적 1078, 65인치 대형 스크린 2대 등 영상 스크린 18대를 동원해 화려하게 꾸민 전시장 내부를 채운 건 대부분 일본의 근대 산업 발전을 과시하는 내용이었다. 조선인에 대한 전시는 하시마에서 좋은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식의 왜곡 전시가 대부분이었다. ‘태평양전쟁 시기 하시마에서 살았다는 재일동포 2세 스즈키 후미오(작고)의 생전 증언 등을 담은 영상과 안내판이 대표적이다. 안내판 등엔 하시마 탄광에서 일한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제목이 붙었다. 그는 영상에서 괴롭힘을 당했느냐’ ‘조선인이 채찍으로 맞았느냐등의 질문에 아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왜 때리느냐고 답한다.

가토 고코 산업유산 정보센터 센터장은 이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심사 당시 일본 정부가 약속한 희생자를 기린다고 할 만한 전시가 없다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희생자는 당시 환경의 희생자’(victim of circumstances)라고만 돼 있다. 여기엔 조선인, 대만인, 일본인 모두가 포함된다학대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가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라고 신청한 시설들은 메이지 시대(1868~1912)에 건설된 탄광·제철소 등으로, 하시마뿐만 아니라 상당수 시설이 조선인 강제동원과 강제노동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일본 정부는 이전부터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등을 기릴 생각이 없다는 조짐을 보여왔다. 2017년 유네스코에 제출한 첫번째 보전상황 보고서에서 한반도 출신자가 일본 산업 현장을 지원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하겠다고 했던 일본 정부는 지난해 두번째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아예 빼버렸다. 게다가 산업유산 정보센터 운영을 위탁받은 재단법인 산업유산 국민회의는 조선인 강제노동을 부인하거나 희석하는 내용의 자체 보고서를 지속 작성해온 단체이기도 하다.

<교도통신>은 익명의 일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본 식민지 지배 당시 하시마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비인도적 대우를 받았다는 그동안의 정설을 자학 사관으로 보고 반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은 과거 사실을 은폐하고 역사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도쿄/조기원 특파원 >

외교부, ‘군함도 역사왜곡시도에 일본 대사 불러 강력 항의

2015년 정부 간 약속 깨고 군함도서 조선인 차별 없었다왜곡

도미타 고지(富田浩司) 주한 일본 대사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뒤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이 담긴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이날 일반에 공개했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가 깃든 군함도(하시마)에 대해 역사 왜곡을 시도하면서, 이 문제가 한-일 사이에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군함도 문제가 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15일 오후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일본 정부가 2015년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며 한국인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일본은 앞선 2015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하시마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 대표의 이런 약속을 받아들여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에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센터 정식 개관을 하루 앞둔 14일 공동취재기자단이 센터에 가보니, 일본 정부가 약속 이행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조선인이 섬에서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는 왜곡된 내용으로 전시물을 구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정부의 이런 대응에 대해선 현지 언론 일부도 문제를 제기했다. <아사히신문>14한반도 출신 징용공과 관련해 학대와 차별이 없었다는 섬 주민의 인터뷰가 소개돼 있어 한국이 문제를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가토 고코 센터장은 문제가 된 전시 내용과 관련해 정치적 의도는 없다. 70여명의 섬 주민을 인터뷰했지만 학대를 받았다는 증언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도통신>14일 익명의 일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 당시 하시마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비인도적 대우를 받았다는 정설을 자학사관으로 보고 반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카다 나오키 관방부장관도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전시 내용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권고를 고려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가며 적절히 판단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항의를 받아들여 내용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실제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자료집을 보면,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여러 저작을 남긴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작고)2010년 펴낸 책 <지쿠호·군함도조선인강제연행 그 뒤>를 보면, 당시 군함도에서 광부로 일했던 강시점 부부의 사연이 나온다. 강씨는 책에서 “(일본인) 노무 담당은 조선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세상에서 가장 하등의 존재라고 생각해 명령만 하고 화만 냈다고 증언했다. 탄광 생활을 견디다 못한 강씨가 남편에게 빨리 나가사키에 나서 다른 노가다(육체노동)라도 하자고 조르자, 남편은 이 섬에서 도망치면 시마누케’(섬을 빠져 나온 사람)라 해서 붙잡혀 살해당한다고 말리기도 했다. < 길윤형 김소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