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 토론과반 수사 중단을검찰, 의견서 검토 뒤 결정 방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논의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의견을 26일 검찰 수사팀에 권고했다. 검찰은 수사심의위 의견서를 검토한 뒤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법조계에서는 수사심의위를 요청한 삼성의 의도와 예상대로 불기소 권고가 나왔다며, 명백한 불법 무리한 수사라면 모르되, 법원에서도 이재용 부회장 구속심사에서 증거가 확보됐다고 밝힌 검찰의 수사와 그에 따른 기소행위 자체를 아예 무위로 돌리게 된다면 자칫 검찰권의 희화화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터져나오고 있다.

대검은 26일 오전 1030분부터 수사심의위 현안위원회를 열어 저녁 730분까지 9시간가량 토론을 벌인 끝에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 김종중 전 사장에 대해 불기소가 타당하고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했다.

이날 수사심의위 회부 안건은 지난 4일 이 부회장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관련해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 제기 여부였다. 심의위에는 최 전 부회장(옛 삼성 미래전략실장)과의 친분을 이유로 위원장 자리를 회피한 양창수 위원장을 제외한 14명의 위원이 참여했다. 표결은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선출된 1명을 제외한 13명이 참여했다. 법조계에서는 애초 기소 의견이 많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 표결에서는 상당수 위원들이 불기소에 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어디까지 보고 판단할 것인지를 두고 검찰과 삼성 쪽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 중 상당수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이라 검찰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검찰은 2018년 이 제도 시행 이후 열린 8차례 심의위의 권고를 모두 따랐기 때문에 이번 권고에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심의위의 결정을 존중한다. 삼성과 이 부회장에게 기업활동에 전념하여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기회를 준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쪽은 지난 2일 기소의 타당성을 심의해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재용 수사중단·불기소수사심의위 권고, 수긍 어렵다 [사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에 대해 검찰 외부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26일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내놨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 심사 당시 법원이 내린 판단과 어긋나는 결론인데다 엄정한 법적 잣대로 심의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도 있다. 여러모로 수긍하기 힘든 결정이다.

검찰은 내부 문건 등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과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을 이 부회장이 직접 주도한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법원도 지난 9일 구속영장 심사 때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되었고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가 확보되었다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범죄 사실의 존재와 재판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 이날 심의위원 다수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었다고 전해진다. 더구나 수사심의위는 수사 중단까지 권고했다. 수사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한 것이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다르지 않았을 텐데 전문 법관의 판단과 수사심의위의 결론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 정도로 정반대 결론을 내리려면 명확한 이유가 필요한데, 수사심의위는 과반수 찬성으로 표결했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검찰권의 부당한 행사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인 수사심의위가 막강한 경제권력인 재벌 총수에 의해 활용된 것은 애초부터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삼성의 여론전이 결론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심의 과정에서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과 삼성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도 고려됐다고 전해지는데, 법적 판단을 넘어선 고려가 이뤄졌다면 제도의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심의위원 다수를 설득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수긍하기 힘든 측면이 여럿 존재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검찰은 그동안 8차례 이뤄진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존중해왔지만 규정상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이 제도의 성격이다. 검찰은 수사에서 부족한 점을 살펴 보강하고 다시 한번 불편부당한 기준에 따라 기소 여부를 판단하길 바란다.

삼성쪽 불기소 수용을공식반응 자제

시민단체 증거 토대로 이재용 기소해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이 26일 오전 회의 참석을 위해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양 위원장은 최지성 전 삼성 미전실장과의 친분을 이유로 위원장 직무를 회피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및 수사 중단 권고에 삼성그룹은 공식 반응을 내지 않았다. 그 대신 수사심의위 권고에도 검찰이 공소 제기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최근 수개월간 해온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행보 프로그램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와 전문가그룹은 검찰이 확보한 증거 등을 토대로 기소해야 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삼성그룹 고위 임원은 26일 심의위 권고가 나온 직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개인 의견을 전제로 불기소 권고를 넘어 수사 중단까지 심의위가 요구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심의위가 검찰의 수사가 무리한 측면이 많았으며 혐의 입증도 부실했다고 본 것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심의위는 검찰 스스로 만든 제도이니만큼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삼성그룹은 삼성 변호인단이 내놓은 입장 외에 별도의 공식 반응은 내지 않았다. 삼성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재판 관련 사안에 대해 회사는 공식 반응을 내지 않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대외적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자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더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본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최근 두달 새 삼성전자 내 여러 사업장을 찾는 등 현장 경영 행보를 부쩍 늘려왔다. 한 예로 심의위 회의가 열리기 사흘 전인 지난 23일 이 부회장은 경기도 수원 생활가전(CE)사업부를 찾았으며,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이 드럼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아 제품을 살펴보며 주요 경영진과 대화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등을 언론에 제공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그룹들은 검찰이 심의위 권고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창민 경제개혁연대 부소장(한양대 교수)<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사건은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고 복잡성이 커서 (심의위에 참여한) 일반인들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힘없고 빽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만들어진 심의위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 있고 빽 많은 재벌그룹 총수가 이용하는 모양새라며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와 엄정한 법리를 토대로 이 부회장을 기소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경제학)이런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재벌 총수 범죄의 기소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재판 과정에서 (수사에서 확보한) 증거가 공개돼야 하고 법이 만인에게 공정하게 집행된다는 사실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 김경락 송채경화 기자 >

암초 만난 검찰 헛수고?’ 당혹이재용 기소고민

법원서도 범죄 소명 인정했는데불기소 땐 검찰권 남용 비판 딜레마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26일 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반대수사 중단의결 내용을 발표하자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날 수사심의위의 불기소·수사 중단 의견 권고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9일 이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이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구속 필요성을 판단하는 영장심사였지만, 이 부회장의 범죄 소명을 법원이 어느 정도 인정한 상황이라서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반대와 수사 중단을 권고할 거라는 예측은 많지 않았다.

수사심의위가 검찰은 물론 법원 영장 판단과도 배치되는 의견을 냄에 따라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로서는 입지가 상당히 좁아지게 됐다. 실제 검찰은 이 제도를 시행한 뒤 열린 8차례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모두 따랐다. 수사심의위 결정으로 여론전에서 이 부회장 쪽에 밀리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당장 이 부회장 기소라는 강공 카드를 꺼내들기에는 수사팀도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사팀은 2018년 말부터 17개월가량 수사를 진행하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과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에 이 부회장이 단순히 관여한 것을 넘어 직접 주도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을 불기소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삼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수사를 진행해놓고도 기소를 하지 않는다면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는 7월 인사를 앞두고 6월 말에는 이 부회장 기소 여부 등을 결정해 사건을 정리할 계획이었던 검찰로서는 수사 막바지에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셈이다.

이날 회의 진행은 검찰과 이 부회장 변호인 쪽에서 수사심의위원들에게 각각 A4 50쪽 분량의 의견서를 배부한 뒤 오전에는 검찰이, 오후에는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각각 구두의견을 진술했다. 검찰 쪽에선 주임검사인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의 이복현(48·사법연수원 32) 부장검사와 최재훈(45·35) 부부장 검사, 김영철(47·33)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등이 참석해 공소 제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 부회장 변호인으로는 김기동(56·21) 전 부산지검장과 이동열(54·22) 전 서울서부지검장이 직접 나서 방어 논리를 펼쳤다.

회의에서는 이 부회장의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혐의를 두고 집중적인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 중 상당수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삼성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판단도 고려 대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김정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