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영상통화, 철거 협조요청

 

유럽을 방문 중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이 독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독일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산케이신문과 NHK 등에 따르면 모테기 외무상은 1일 오후 프랑스에서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영상통화를 하고 양국 간 현안을 논의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마스 장관에게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부에 최근 설치된 '위안부상'을 거론한 뒤 일본 정부 입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철거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르투갈을 거쳐 프랑스를 찾은 모테기 외무상은 원래 독일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경호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마스 장관이 자가격리에 들어가자 독일 방문을 취소하고 전화회담으로 대체했다.

모테기 외무상의 소녀상 철거 요청은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의 '유감 입장' 표명과 맞물려 주목된다.

지난달 25일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베를린=연합뉴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장관은 독일 수도 베를린 거리에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세워진 것에 대해 지난달 29"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과 양립할 수 없는 것"라며 "일본 정부는 다양한 관계자와 접촉하고 기존 입장을 설명하는 등 계속해서 소녀상 철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베를린 미테구()의 비르켄 거리와 브레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베를린의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주도로 소녀상이 세워져 지난달 28일 제막식이 열렸다.

독일에서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고, 공공장소에 세워진 것은 첫 사례다.

이전에는 2017년 남동부 비젠트의 사유지인 네팔 히말라야 공원, 지난 3월 프랑크푸르트의 한인 교회에 건립됐다.

한편 모테기 외무상은 1일 파리에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유네스코의 비정치화 개혁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조직개혁을 포함하는 유네스코 강화 노력을 지지한다""(일본 정부는) 교육, 문화, 과학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공헌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줄레 사무총장은 "일본과의 협력 관계를 한층 강화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교도통신은 모테기 외무상의 유네스코 지지 발언에 대해 징용 피해자 관련 사실을 왜곡 전시한 문제를 놓고 한국이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취소 검토를 요구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등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산업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설치해 강제노역 피해자를 기억하는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문을 연 정보센터는 징용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를 전시하는 등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후속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등재 취소 가능성 검토를 포함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충실한 후속 조치 이행을 일본에 촉구하는 결정문이 채택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유네스코에 요청했다.


독일 베를린에 첫 소녀상 세워져… “성폭력 피해자들 용기 상징”

독일, 한인 시민단체 연대 결실 일본군 피해자만의 상징 아니다

일본 관방 철거 위해 관계자와 접촉할 것철거 시도에 나설 듯

 

28일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야지디족 인권운동가인 누지안 귀나이가 소녀상의 손을 잡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와 정의에 대한 상징이다. 그 싸움은 오늘 갇혀 있는 3000명 야지디족 여성들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 (베레나 프랑케, '하나 된 세상을 위한 재분배재단' 여성분과 대표)

"소녀상이 세계 도처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는 콩고,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미얀마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 성폭력에 눈을 돌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인자 에쉐바흐, 전 라벤스부르크시 나치강제수용소 기념관장)

28일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제막식에서 세계 전쟁 성폭력 피해 지역이 하나하나 호명됐다. 건립을 주도한 독-한 단체 코리아협의회와 함께 소녀상 건립에 힘을 보탠 베를린 일본 여성 모임회원들, 독일 지역 문화운동 단체, 수단 여성인권단체, 함흥지역 장애인들을 후원하는 추잠멘 함흥등 다양한 여성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제막식 자리를 빌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성폭력들을 폭로하고 해결을 요구했다.

이날 가장 많이 호명된 이들은 이라크 북부 소수민족 야지디족 여성들이다. 야지디족 인권운동가인 누지안 귀나이(40)한국에서 온 소녀상은 야지디 여성들의 모습 그대로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베를린 야지디 여성협회를 만들기도 한 귀나이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2014년 이슬람국가(IS)의 야지디족 인종 말살 공격 뒤 많은 여자들이 성폭력 희생자가 됐다. 아직 3000명은 실종상태다. 이들 대부분은 여자라고 실태를 전했다. 귀나이는 여성들은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소녀상은 과거 아시아 지역 일본군에 의한 피해자 상징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연대로 위험에 처한 다른 여성을 구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28일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독일 여성단체 코라쥬’(용기) 회원들이 소녀상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소녀상 건립 대 철거 싸움은 늘 진행형이다. 비젠트시에 세워진 유럽1소녀상은 비문이 철거되고 라벤스브뤼크 기념관 작은 소녀상이 철거되는 등 소녀상 건립 때마다 일본 정부의 항의가 거셌다. 그럼에도 이번에 다시 베를린시 미테구 공공 부지에 소녀상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지역단체와 여성단체들이 연대의 뜻에 공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독일에서 공공장소 소녀상 건립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연대사를 발표한 메디카 몬디알레의 정치, 홍보담당 사라 프렘베르크(40)는 왜 한국의 소녀상이 독일에 세워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주의, 여성의 신체에 대한 통제, 인종청소 등 형태를 달리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 성폭력의 한 예다. 소녀상은 문화적 기념물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 성 피해에 대한 증거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메디카 몬디알레는 성폭력피해자들에 대한 의료, 심리, 법 지원을 위해 1993년 독일 쾰른에 설립된 여성인권단체다. 사라 프렘베르크는 또 한국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성노예로 끌려갔다. 독일은 전범국가로서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상기하기 위해 소녀상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베를린 소녀상 건립을 위해 일본군위안부문제대책협의회와 코리아협의회에서 힘을 보탠 일본인들도 있었다. 코리아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이시야마 유미코(46)처음엔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독일에선 구체적으로 나치에 대해 가르치고 수많은 영상과 전쟁유산으로 역사를 상기시킨다. 일본도 주도적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일에 나설 수 있지 않았을까. 일본에 살고 있을 땐 이런 생각을 할 기회조차도 갖지 못했다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번 베를린 소녀상도 철거를 요구할 생각을 나타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2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소녀상에 대해서도 극히 유감이다. 철거를 위해 여러 관계자와 접촉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