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선들의 서해 불법조업은 단지 폭력적 약탈행위여서만이 아니라 치어까지 쓸어가는, 미래가 없는 공멸적 자살행위라는 점에서도 위험하다.
멧돼지들이 인가에까지 출몰하며 말썽을 피우자 사람들이 생각해낸 대책은 고작 사냥개와 엽사들을 늘려 더 철저히 멧돼지들을 때려잡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비명과 선혈 낭자하게 쓰러져 가는 그들의 최후를 자랑스런 노획물이라도 전시하듯 의기양양 텔레비전 화면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보기 딱하다. 아직도 야생동물을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지.
어떤 글을 보니 독일의 멧돼지 퇴치법은 우리와 달랐다. 독일에서도 늘어난 멧돼지들이 인가를 휘젓는 통에 골머리를 앓다가 묘안을 찾아냈다. 그들은 사냥꾼과 개들을 늘려 때려잡는 대신 인가와 숲 사이에 완충지대를 설치했다. 사람과 멧돼지 세상이 직접 충돌하지 않도록 그들 사이 일정 폭의 땅에 멧돼지가 먹고 쉴 수 있는 여러 야생식물이 자랄 공간을 조성했다. 그 뒤 사람을 보면 공격하던 멧돼지들은 공원의 사슴처럼 온순해졌고 인가 출몰도 급감했다.
요컨대, 멧돼지의 인가 출몰은 먹이 부족 및 서식공간 파괴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야생동물도 먹이가 없고 사는 곳이 불편하면 다른 영역을 넘볼 수밖에 없다. 이는 멧돼지 개체수가 증가한 탓도 있지만 인간이 자신들의 편익을 위해 야생 영역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옥죄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모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은 바로 그로 인한 인간과 야생의 갈등과 화해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한 수작들이다. 멧돼지가 농사를 망치니 죽이는 건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면 해결 방법이 없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자연은 어느 한쪽이 죽어야 다른 쪽이 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저쪽이 살아야 이쪽도 사는 공생의 장이다. 멧돼지의 습격은 인간의 농사 영역 확장이 멧돼지 일가의 삶터를 망가뜨린 탓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독일은 이미 거기까지 갔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과 야생동물의 습격은 물론 전혀 다른 문제다. 불법조업도 세계의 불평등 구조와 무관하진 않지만, 그로 인한 피해를 우리 어민들이나 해경,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발상 전환이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을 대응 물리력 강화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로 인한 희생은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 몫이다. 중국 어부들이 밀려오는 것은 중국 연해에 잡을 물고기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당연히 남획과 오염을 방치하는 중국의 연근해 어업과 부의 편중, 불합리한 법체계 등 중국 내부 문제다. 그럼에도 적어도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문제에 대해서는 신속한 협의와 조정을 요구해서 따질 건 따지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 필요하면 개입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 정부와 외교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단속 강화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그것은 정부의 무능과 외교부의 직무유기를 자인하는 변명과 같다. ‘조용한 외교’가 ‘아무것도 안 하는’ 또는 ‘못하는’ 외교여선 안 된다. 중국도 이대론 21세기를 이끌 수 없다. 공존방식을 찾아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대안 부재의 강경대응 일변도는 정부와 통일·외교부의 무능과 직무유기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뼛속까지 친미·친일적’인 단순사고야말로 중국 및 북한과의 접촉통로를 차단해서 문제를 키운 건 아닌가. 통로가 좁아지면 유사시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외교전략의 포괄적 재조정이 필요하다.
선거방해라는 만행까지 저지른 자들의 치매증상도 한쪽만 보는 병든 외곬 탓이다. 생각을 바꿔야 산다.
< 한겨레신문 한승동 논설위원 >
< 한겨레신문 한승동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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