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 정보력이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김관진 국방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북쪽 방송을 보고서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처음 알게 되었음을 인정했다. 김 위원장이 숨진 것도 모른 채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한다고 나라를 비웠다. 그동안 북쪽 사정을 훤히 들여다보는 척하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 관련 정보를 슬며시 흘리곤 하던 정부기관들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더욱 문제는 정부가 구체적인 정보를 놓친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개된 정보조차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북은 그제 정오에 ‘특별방송’을 할 것임을 아침부터 예고했다. 특별방송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한차례 한 게 전부임을 근거로 일부 민간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유고 가능성을 예견했다.
반면에 통일부 당국자들은 우라늄 농축 중단 발표 아니겠느냐고 헛짚고 있다가 허둥댔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는 특별방송을 앞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고깔모자를 쓴 청와대 직원들한테 둘러싸여 자신의 생일축하 잔치를 벌이는 웃지 못할 희극을 연출한 것은 이런 외교안보라인의 무능 탓이다. 정부의 상황파악 능력이 이 정도이니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상황은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선 다양한 남북 교류와 인적 접촉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정보가 비교적 활발히 소통되었다. 아울러 한-중 외교 경로를 통해 핵심적인 정보가 교환됐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미국 편중 외교를 벌이고 대중국 외교를 소홀히 한 결과 비상 상황에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동안 정탐활동을 강화한다며 막대한 정보예산을 쏟아부은 게 무색할 지경이다.
한반도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북 지원이든 뭐든 하려 해도 돌아가는 걸 알아야 판단을 하는 법이다. 북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곧 상황 관리를 위한 지렛대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북한 상황과 관련한 국제 협의 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정보력이 없다면 주도적인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대북 정보력의 허점은 정세관리 능력의 부재로 직결된다. 국정원장은 허점을 드러낸 일차 책임자로 당연히 문책해야 한다. 아울러 문제의 근원이 범정부 차원의 그릇된 대북정책 기조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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