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대한 디도스 공격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중요 사실을 숨기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가뜩이나 경찰의 은폐·축소 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불길이 청와대의 외압 의혹으로 더 커진 것이다. 
<한겨레21> 최근호는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경찰은 애초 청와대와 협의를 한 뒤 청와대 행정관 박아무개씨가 선거 전날 디도스 공격 관련자들과 저녁자리를 함께한 사실과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공격 주범들 사이의 돈거래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 수석급 관계자와 경찰 최고 수뇌부 사이에 핫라인이 작동했다고 전했다.
 
사정당국 관계자의 발언 내용은 충격적이다. 청와대가 선관위 공격의 실체 규명에 핵심적인 두 가지 단서를 은폐할 것을 경찰에 종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사안을 경찰이 자체적으로 뒤집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청와대와 조현오 경찰청장은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조 청장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두 차례 통화를 해 수사 상황을 설명한 일은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 조 청장과 통화한 당사자로 알려진 김효재 정무수석 쪽도 “압력을 넣은 일이 없고 넣을 입장도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박희태 국회의장의 의전비서였던 김아무개씨가 범행을 주도한 공아무개씨에게 1000만원을 건넨 사실을 지난 7일 오전 청와대에 보고했고, 그날 오후에는 박 행정관의 저녁자리 동석 사실을 청와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 정무수석이 조 청장과 통화한 시점이 7일과 8일이고, 경찰 수사 결과는 그 직후인 9일 발표됐다. 두 사람의 통화가 발표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는 상황이다.
 
이 사건은 어설픈 해명으로 은근슬쩍 뭉갤 사안이 아니다. 청와대 외압이 사실이라면 디도스 공격 이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도덕성에 스스로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일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외압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몰락한 것은 도청 자체보다 닉슨의 거짓말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검찰도 성역 없는 수사로 진상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