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에 국민참여재판 희망 여부 묻지 않아

질문 하나 빼먹어 1년반 걸린 재판 도돌이표

 

이른바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졌던 이희진(34)씨 부모를 죽이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아무개(35)씨 재판이 1심 재판부의 잘못으로 처음부터 다시 열리게 됐다.

수원고법 형사1(재판장 노경필)6일 강도살인, 사체유기, 강도음모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1심에서 병합 사건과 관련해 국민참여재판 희망 의사를 묻는 절차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항소심은 이런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했으나,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한다는 뜻이 명확해 대법원 입장대로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잘못으로 다시 재판하게 된 점에 대해 이 자리에 계신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소영)는 지난해 4월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같은 해 9월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검찰이 김씨가 이씨의 동생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운 혐의(강도음모)로 추가 기소하면서, 이들 두 사건을 병합해 재판을 속행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강도음모 혐의 사건 병합 과정에서 김씨에게 국민참여재판 희망 의사를 묻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서 법원은 피고인에게 각각의 사건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확인 절차를 빠뜨린 채 재판을 진행해 지난 3월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달 10일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의견서를 내어 국민참여재판 희망 의사를 밝혔고,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가 질문 하나를 빠뜨린 바람에 16개월에 걸쳐 진행된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된 셈이다.

김씨는 지난해 225일 오후 46분께 안양시 한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현금 5억원과 고급 외제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고용한 박아무개씨 등 중국 교포 3명과 함께 범행을 저지른 뒤 이씨 아버지 주검을 냉장고에 넣어 평택의 한 창고로 옮긴 혐의도 받는다. 김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