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동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 보고서 공개성공회 충격적” “부끄럽다사과

1940년대~2018년 성직자 390명 유죄판결 교회권위 지킨다며 모른 체, 고발 안해

 

영국성공회의 총본산인 영국 켄트주 소재 캔터베리 대성당. 캔터베리/로이터 연합뉴스

 

2014년 영국의 젊은 남성 티머시 스토리가 어린 여성을 길들여 성적으로 학대하는 그루밍범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스토리의 추가 범죄가 드러났다. 그가 2002년부터 영국성공회 런던교구의 아동·청년 지도자로 일하면서 교회 신도였던 미성년자들을 성폭행하고 폭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런던교구는 2009년 내부 제보를 통해 그의 아동성폭력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채 무마하려 노력했고 사건은 그대로 묻혔다.

뒤늦은 수사로 스토리는 20163건의 강간 혐의와 1건의 폭행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2건은 그가 교회에서 만난 16·17살 여성에게 저지른 것이었다. 당시 판사는 판결문에 보호 책임을 저버린 (런던교구의) 총체적 실패라고 비판했다.

영국 국교인 영국성공회의 성직자 390명이 지난 70여년간 아동성폭력으로 처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회는 아동성폭행이 드러나도 교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를 은폐하고 가해자를 성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등 아동성폭력을 방조했다.

<BBC><가디언>, <인디펜던트> 등 영국 언론은 6일 영국 아동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IICSA)170쪽 분량의 성공회 심층보고서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위원회는 성공회뿐 아니라 지역당국과 군대, 공공기관 등의 성폭력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2015년 설립됐다.

조사 결과는 참담했다. 1940년대부터 2018년까지 70여년 동안 성공회 성직자와 지도자 등 390명이 아동성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연간 5~6명꼴로 유죄판결을 받은 셈이다. 기소되지 않거나 아예 드러나지 않은 사례를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성직자가 아동성폭력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2018년에만 아동성학대로 우려되는 사건이 449건 보고됐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교회 간부와 관련된 것이었다.

성공회는 아동성학대 사건을 알고도 모른체하거나 조사하고도 경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교회의 권위를 지킨다는 명분이었다. 알렉시스 제이 조사위원장은 수십년간 성공회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가해자는 숨고, 피해자는 극복할 수 없는 공개의 장벽에 부딪히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성공회가 은폐한 아동성학대 사례 몇 건을 더 공개했다. 2002년 한 남성이 어린 시절 빅터 휘치 주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성공회에 신고했지만 교회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14년이 흐른 2016년에야 다시 제기돼 조사가 진행됐고, 다른 피해자들의 신고도 이어졌다.

교회 지도자들의 부적절한 성의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해 9월 은퇴한 피터 포스터 주교는 영국성공회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주교로 덕망이 높다. 그는 2014년 아동포르노 사진 8천장을 다운받아 유죄판결을 받은 이언 휴스 목사 사건과 관련해 휴스를 옹호했다. 포스터 주교는 당시 재판부에 휴스 목사가 포르노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동포르노를 볼 수 있는 것으로 혼동한 것 같다아동포르노를 다운로드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동성학대와는 다르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성공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충격적이며 부끄럽다고 사과했다. 성공회는 사과만으로 희생자들에게 가해진 학대 영향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사과를 필요하게 만든 사건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표현하고 싶다개선을 촉구한 보고서의 권고사항을 전적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