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선교사로 파견돼 인천 정착, 20여년 산업선교 활동 보급에 진력

1974인혁당 피해자기도 모임박정희 정권 강제 추방으로 출국

미 의회 박 정권 인권 실태증언전미 순회 한국 민주화강연 활동

 

197412월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 당했던 조지 오글(왼쪽) 목사는 20년 만인 1994년 민청학련운동 계승사업회 초청으로 부인 도로시 오글(오른쪽)과 함께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오글 목사의 왼쪽 약지에 추방 직전 인혁당 조작 사건사형수 우홍선의 부인이 여비로 건네준 금반지가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박정희 독재정권의 인혁당 조작사건을 폭로해 강제 추방 당하는 등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조지 오글(한국 이름 오명걸) 목사가 지난 15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별세했다. 향년 9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7일 오글 목사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외국인이자 종교인으로서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오글 목사의 업적과 뜻을 정리하고 기릴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192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여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오글 목사는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서 1954년 부인 도로시와 함께 한국땅을 처음 밟은 뒤 20년간 산업선교 활동을 펼쳤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설립해 노동자의 권리 노동법에 기반한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인권옹호에 앞장섰다. 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미국·캐나다 선교사들 모임인 월요모임에 소속돼 선교사로 활동했다.

조지 오글(뒷줄 오른쪽) 목사는 부인 도로시 오글(뒷줄 왼쪽)과 함께 1954년 한국에 파견되어 12녀를 두고 1974년 강제추방 당할 때까지 20년 동안 산업선교와 민주화 지원 활동을 펼쳤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정희 정권의 감시대상이 된 오글 목사는 197411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양심수들을 위해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사건이 조작된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인혁당 피해자 부인들의 요청을 받아 기도를 했을 뿐이었으나 그는 곧바로 중앙정보부에 붙잡혀가 심문을 당하고 빨갱이라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런 사실이 <뉴욕타임즈>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지자 박 정권은 오글 목사에게 강제 추방 명령을 내렸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인권회복기도회에 가다가 체포된 그는 1214일 아침 출입국관리소로 끌려가 다시한번 조사를 받은 뒤 그날 저녁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졌다.

19741214일 조지 오글 목사가 강제 추방 명령으로 김포공항에서 대한한공 비행기에 오르며 주먹을 높이 들어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과 함께!”를 외치고 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듬해 49일 새벽 박 정권은 인혁당 사건 선고공판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8명을 사형시키는 사법 살인을 감행했고, 그 가족들마저 빨갱이낙인으로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시켰다. 이에 오글 목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운동에 앞장섰다.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 관련 증언을 하고, 한인 민주화단체와 함께 강연 등을 통해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렸다.

197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지 오글 목사 강연회 소식이 사진과 함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기관지 한민신보에 실렸다.

1994년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초청으로 20년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했던 오글 목사는 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는 등 와병 이전까지 여러 차례 더 다녀갔다. 지난 2002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외국 민주인사 초청 행사에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함께 참석한 그는 김포공항에서 강제로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기 직전 한 인혁당 피해자의 부인이 자신의 손가락에 있던 금반지를 빼서 건네줬고, 비행기에 타자 한 승무원이 익명의 한국 젊은이가 쓴 응원의 편지를 전해줘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때까지 30년 가까이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고 다녔다는 그는 민주화의 상징물로 그 반지를 한국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인혁당 유족들은 인터넷도 없고, 언론도 철저히 통제가 된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조지 오글 목사의 이런 희생과 노력은 그야말로 한줄기 구원의 빛이 아닐 수 없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20021015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외국 민주인사초청으로 방문한 조지 오글(맨왼쪽) 목사가 제임스 시노트(왼쪽 둘째) 신부와 함께 인혁당 조작 사건' 유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는 2002년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인권문제연구소로부터 제5회 한국인권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인혁당 사건 등 자신이 겪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20세기 한국의 이야기>(신앙과지성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20184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표단이 미국 콜로라도 라파예트의 한 요양원에 있던 조지 오글(왼쪽 둘째) 목사와 부인 도로시(가운데)를 위문 방문했다. 오글 목사 부부는 유창한 한국말로 여전히 한국의 민주화와 발전을 기원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20184월 정진우 상임부이사장과 기독교민주화운동 상임이사인 김영주 목사 등으로 대표단을 꾸려 노환으로 콜로라도 라파예트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던 오글 목사를 위문 방문했다. 김 목사는 “89살의 고령에도 여전히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시고, 조화순 목사 등 인천에서 산업선교 활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을 기억하며 안부를 전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지난 6월 제33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오글 목사에게 민주주의 발전 유공 포상국민포장을 전달했다. 김경애, 장필수 기자